주간동아 664

2008.12.09

“태안반도 사는 고란초에게 말을 걸었지요”

태안 근흥중학교 최기학 교장

  • 태안=이기진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doyoce@donga.com

    입력2008-12-01 1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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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반도 사는 고란초에게 말을 걸었지요”
    모두가 남보다 앞서가려고 하죠. 언젠가는 ‘되돌아가!’라는 엄중한 명령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천천히 뒤에서 가던 사람이 앞서는 거지요. 자연에 순응하며 뒤따라가던 사람들이….”

    말로만 ‘고향사랑’ ‘자연사랑’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부엌에서도 세상이 보인다’는 말, 아마 그런 말은 충남 태안군 근흥중학교 최기학(48·사진) 교장한테 어울릴 듯하다.

    그는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한 2007년 12월7일, 당시 재직 중이던 태안중 교무실에 있었다.

    TV가 자막으로 알린 ‘태안 앞바다, 예인선 충돌, 기름 유출’이라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고 다음 날 새벽 만리포해수욕장으로 달려갔다. 푸른 바다는 먹물처럼 변했다. 기름 냄새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꺼이~ 꺼이~.”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린 그는 통곡하기 시작했다. 평생 그토록 사랑한 바다였는데, 풀과 꽃과 나무와 새…. 아내만큼이나 자식만큼이나 사랑한 태안의 자연이었는데….

    최 교장의 눈물은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어민과는 또 달랐다.

    그는 2006년 3월 한반도의 서쪽 허리춤인 태안 일대의 바다와 맑은 하늘을 벗삼아 뿌리내린 식물의 이야기를 담은 ‘태안반도의 식물’이라는 책을 냈다.

    ‘푸른 태안 21’ 자연생태분과위원장도 맡고 있는 최 교장은 이 책을 내기 위해 530.8km에 이르는 태안반도 해안을 10여 년에 걸쳐 수차례나 돌았다.

    “교직에 있다 보니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만 해안에 나갈 수 있었어요. 어린 자녀들과 아내에게 미안했지요. 가정을 포기했으니까요. 그래서 아예 데리고 다녔습니다.”

    도감 형식의 이 책에는 최 교장이 수집한 자료 861종 가운데 희귀식물인 고란초, 매화마름, 통발, 흰초종용 등 469종의 사진 1350장이 실렸다. 1996년 당시 과학교사이던 최 교장이 태안반도가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과 다양한 생물종을 자랑하지만 정작 이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할 자료가 없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조사에 들어가면서 이 책은 태동을 예고했다.

    최 교장은 아이들한테 식물을 설명하면서 그냥 ‘들풀’이니 ‘들꽃’이라고 하는 게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산천을 찾아다니며 사진 찍고, 도감을 찾아 대조하고, 천리포수목원에서 식물 생태를 배우면서 폭과 깊이를 넓혀갔다. 책이 나오자 전국에서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책은 동격렬비열도 조사 당시 암벽에서 떨어져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일, 물이 빠졌을 때 섬에 들어갔다 조사에 정신 팔려 고립됐던 일 등도 소개한다. 미처 발길이 닿지 않는 절벽 등은 배를 타고 바다 쪽에서 접근했다고 한다. 태안 신두리사구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귀화식물인 겹달맞이꽃을 제거하려고 밤낮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공주사대 물리교육과 출신인 그는 교원대에서 석사를, 공주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기름유출 사고 때 학생들과 흘린 눈물이 닦아낸 기름만큼이나 많다는 그는 한국의 식물도감을 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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