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9

2008.11.04

외로운 사람들 상처 따뜻이 보듬기

  •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입력2008-10-27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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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운 사람들 상처 따뜻이 보듬기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의 한 장면. 주인공은 고양이를 세상의 유일한 소통자로 대한다.

    고양이나 개를 기르며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혼잣말을 한다는 점이다. ‘구구는 고양이다’의 주인공 아사코(고이즈미 교코)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는 새로 들인 고양이 구구를 병원에 데려가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너무 늦었다는 둥, 머리에 밥풀이 묻었다는 둥, 어린애처럼 이게 뭐냐는 둥….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고양이 구구는 들은 척 만 척 창밖의 암코양이를 쫓아 집을 나가버린다.

    그렇다면 아무리 애지중지한들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은 주인의 말을 결국 알아들을 수 없다는 얘기일까. 나아가 주인의 마음을 알아줄 수 없다는 얘기일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건 하나의 기우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보다도 고양이가 주인 아사코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고양이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모두 스스로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할수록 사람다워진다. 고양이가 아니라.

    혹시 폐가 될까 두려워 사람들은 타인들과의 사이에 벽을 치지만 그럴수록 세상은 황폐해진다. 스스로가 약함을 인정하라. 그리하여 인생은 여전히 즐길 만한 구석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라. ‘구구는 고양이다’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세 가지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면 단박에 극장으로 달려갈 만한 작품이다. 첫째 유형은 ‘이누도 잇신 영화라면 무조건’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잇신 감독은 특히 한국에서 유명세를 얻고 있는데 그가 만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비(非)상업영화치고 국내에서 대박 흥행을 했으며 ‘메종 드 히미코’도 인기를 모았다.

    타인과 거리 두면 둘수록 세상은 더욱 황폐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감독의 한 명으로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우리 개 이야기’가 좋았으며, 이 영화를 통해 이누도 잇신은 스스로가 매우 ‘동물친화적’인 감독임을 입증한 바 있다. 자고로 동물을 사랑하는 자, 인간성이 안 좋은 인간이 없다고 했다. 이누도 잇신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개나 고양이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인내가 필요하겠는가. 그걸 참아낸 감독이라면 배우든 스태프든, 관객들에게든 선한 마음을 지닌 인간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누도 잇신 하면 ‘우리 개 이야기’의 강아지 ‘포치’가 생각나고 이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의 ‘사바’나 ‘구구’가 연상된다.

    ‘구구는 고양이다’를 아무런 조건 없이 보려는 사람의 두 번째 유형은 이 영화에 나오는 우에노 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우에노 주리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TV드라마 ‘노다메 칸다빌레’ 등으로 국내에 ‘왕팬’을 거느린 일본의 청춘스타다. 영화광들에게는 그 작품들보다는 ‘스윙 걸즈’로 더 큰 인기를 모았다.

    외로운 사람들 상처 따뜻이 보듬기

    스스로가 약함을 인정하라. 그리하여 인생은 여전히 즐길 만한 구석이 남아 있음을 발견하라. ‘구구는 고양이다’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이 우에노 주리가 아니라는 점을 팬들은 미리 알고 가시길 바란다. 공연히 화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구구는 고양이다’는 주인공이 딱히 누구라고 규정할 수 없는 영화다. 고양이를 기르고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는 아사코 역의 고이즈미 교코가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이야기의 화자(話者)는 나오미 역의 우에노 주리다. 거기에 아일랜드 출신이라고 하는 이상한 외국인이 중간에 툭툭 나와 카메라를 보고 이야기를 건네기도 하는 데다(이 이상한 외국인은 마치 한때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색소폰 연주자 케니 G와 팝가수 마이클 볼턴을 닮았다. 한마디로 우습다), 아사코를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파파라치형 스토커도 나와 영화는 이야기의 시점(視點)을 의도적으로 흔든다.

    또 고양이 ‘사바’와 ‘구구’의 시점까지도 겹쳐질 때쯤에는 이 영화의 이야기가 도통 누구의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런데 아마도 그것은 이누도 잇신이 의도한 것인바, 세상은 다중의 시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된다. 하지만 종종 그게 좀 지나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과유불급이다.

    ‘구구는 고양이다’를 무조건 보겠다는 사람의 세 번째 유형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쇼트헤어’종의 새끼 고양이 모습을 포스터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간다’는 인상을 준다. 누가 이 앙증맞은 고양이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영화는 고양이의 여러 가지 귀여운 모습을 앞뒤로 배치하며 관객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특히 극 초반에 나오는 새끼 때의 구구 모습을 통해 여성관객들의 모성애를 자극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아주 교묘한 상업영화라는 생각도 갖게 한다.

    고양이의 예쁜 모습, 팬시형 드라마로서의 외형, 거부할 수 없는 신파형 드라마라는 점에도 ‘구구는 고양이다’는 알고 보면 다소 슬픈 구석을 지닌 작품이다. 이 영화의 기조는 기본적으로 도시 현대인이 생래적으로 지니고 있는 외로움이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쉽게 극복될 수 없다는, 약간은 비관적인 시선에 있다. 실제로 극중 인물들은 모두들 헤어짐을 겪는다.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서는 서로 좌충우돌 얽히고설키며 그래서 사는 맛과 웃음이 끊이지 않지만, 결국 자신들의 섬에서 탈출하지는 못한다. 인생은 섬과 같은 것이다. 홀로 살아가는 삶을 어쩌지는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로운 사람들 상처 따뜻이 보듬기
    그런데 그게 바로 고양이와 같은 삶이 아닐까. 이누도 잇신이 고양이의 모습에서 착안했던 건 바로 그 점일 것이다. 그런데 구구가 과연 무슨 뜻이냐고? 영화에서도 계속 나오는 질문이다. 감독은 영화 맨 마지막에 그 답을 준다. 따라서 방법이 없다. 여러분이 끝까지 영화를 본 뒤 확인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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