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9

2008.11.04

경제와 행복지수 그 묘한 관계

  • 서강대 법학부 교수·‘TV 책을 말하다’ 진행자 shwang@sogang.ac.kr

    입력2008-10-27 1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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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와 행복지수 그 묘한 관계

    <b>센코노믹스: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b> 아마티아 센 지음/ 원용찬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4쪽/ 9800원

    신문과 TV 뉴스 헤드라인의 대부분을 ‘경제’ 소식이 차지한 지 오래다. 사람들의 입에서는 ‘경제’라는 말이 끊이질 않는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경제’를 걱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하지만 임금 격차의 심화, 빈곤층의 확대 같은 사회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경제 지표와 수치를 되돌리려는 시도 속에서 정작 서민의 문제는 소외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이런 시대상황에서 눈에 띄는 책이 있다. 바로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이다.

    생소한 용어 ‘센코노믹스’는 인도 출신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의 사상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마티아 센은 누구인가. 일반 대중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세계 경제학계에서는 유명인이다. 그는 행복과 인간의 존엄성을 경제학이 끌어안게 한 공로로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를 ‘경제학계의 양심’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은 센의 강연문 5편을 옮기고 있다. 1997년 뉴욕에서 한 제16차 모겐소(Morgenthau) 기념 강연부터 2002년 인도에서 열린 ‘기초교육과 인간의 안전보장’ 워크숍 기조 논문까지, 그는 아시아 경제발전과 위기 과정에서 나타난 성취 및 문제점을 상세히 분석하면서 진정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고 또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센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 개발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발전이다. 센은 아시아, 특히 일본을 비롯한 한국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 뒤에는 ‘인간 개발’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다. 기초교육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과 누구나 쉽게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 이 둘이 곧 삶의 질적 향상과 경제발전을 촉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공업생산에서 ‘품질관리’ ‘규격생산’은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감안할 때 문자해독과 계산능력은 세계 무역의 기회를 활용할 결정적 요건이라고 말한다. 문맹률이 낮은 동북아 3국의 빠른 경제발전을 되돌아봤을 때 충분히 공감 가는 말이다.

    하지만 센은 경제 쇠퇴기에 더욱 주목한다. 이러한 인간의 안전 보장은 고도성장 시기에는 성장의 기쁨에 잠시 묻힐 수 있지만 경기 쇠퇴기에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어서 센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그는 기근문제는 오직 민주주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대표 사례라고 단언한다. 절대적 기아나 식량난은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극심한 기아문제가 북한과 아프리카의 독재국가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시민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서로의 의견을 소통하는 것이 결국 경제의 외적 성장보다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 의견대로라면 수치로 보이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빈곤층의 희생을 눈감아버리는 것은 결국 민주주의 부재의 증거라 할 수 있다. 과연 우리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돌이켜볼 때,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쯤에 서 있을까? 놀라운 것은 이런 주장이 모두 감정에 근거한 발상이 아니라 통계와 풍부한 자료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는 ‘한국’이 꽤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뼈아프다. 우리의 아픈 기억을 찌르기 때문이다. 빈곤 극복과 인간 존엄의 측면에서 한국은 여전히 행복한 경제 부국이 아니다. 센은 모든 아시아의 위기였으며 한국 경제의 큰 위기였던 1990년대 후반기를 짚어낸다. 그는 의문을 표한다. 당시 국민총생산 등의 통계수치로 본다면 한국 경제는 분명 파국 상황이 아니었다고 꼬집는다. 그러나 우리는 파국과도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게다가 부유층보다 빈곤층이 더 큰 위기를 경험했으며, 이 점을 제대로 호소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는 이것을 “악마는 제일 뒤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는 식으로 사회에서 최하층 사람부터 희생시킨다”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그러나 직업을 잃고 파산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호소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 정경 유착을 비롯해 정부 바깥의 의견은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민주주의의 부재, 사회적 희생자들의 소외와 빈곤층의 확대 등은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의 문제다.

    경제와 행복지수 그 묘한 관계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한 나라의 경제지표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그 숫자들에는 빈곤과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삶이 제대로 반영돼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과연 우리나라는 몇 번째 경제 부국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기초적 안전은 보장돼 있는가. 또 인간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빈곤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치세력을 압박할 장치, 즉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고 경제지표는 내려가는 시기. 고민해야 할 많은 문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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