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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

‘영웅본색’의 카리스마와 ‘첩혈쌍웅’의 의리 ‘짬뽕’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영웅본색’의 카리스마와 ‘첩혈쌍웅’의 의리 ‘짬뽕’

‘영웅본색’의 카리스마와 ‘첩혈쌍웅’의 의리 ‘짬뽕’

‘적벽대전’은 삼국지의 전통적 주인공인 유비 관우 장비 대신 손권 주유 제갈량 등을 전면에 부각한다. 손권 역을 맡은 배우 장진.

오우삼이 ‘삼국지’를 만든다. 그것도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桃園結義)부터 시작했던 삼국지의 허리 한가운데를 뚝 끊어,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구했던 장판교의 전투부터 시작한단다. 제작비 800억원, 엑스트라 2000명, 우리나라의 쇼박스를 포함한 아시아 5개국이 참여한 거대 프로젝트다.

일단 오우삼에게 ‘적벽대전’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인지부터 생각해보자. 오우삼은 홍콩 누아르로 이름을 떨치고 할리우드에 새로운 액션의 피를 수혈하기 전 까마득한 옛날, 홍콩 무협의 지존 장철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와 오빠들이 소싯적에 보았던 ‘돌아온 외팔이’라든지 ‘복수’ ‘대자객’ 등을 만든 그 장철 감독 말이다. 장철 감독의 오른팔과 왼팔이 바로 강대위와 적룡이라는 배우였는데…. 철석같이 믿었던 적룡이 그만 이인항 감독의 ‘삼국지 : 용의 부활’에서 관우 역으로 캐스팅돼버린 게 아닌가. 유덕화마저 주인공인 조자룡에 낙점된 상태에서 그는 할리우드에서 16년 만에 홍콩으로, 이제는 중국의 일부분이 된 홍콩으로 귀환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우삼은 달라야 했다. 할리우드에서 만든 ‘페이스 오프’나 ‘브로큰 애로’와도 달라야 했고, 이인항 감독의 ‘삼국지 : 용의 부활’과도 달라야 했으며, 중국형 블록버스터의 원조격인 장예모의 ‘영웅’과도 달라야 했을 것이다.

새로운 오우삼식 은유들 등장 … 가장 중요한 상징은 ‘새’와 ‘깃발’

새로 나온 오우삼의 ‘적벽대전’을 보니, 눈을 감고 봐도 이건 오우삼의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삼국지를 ‘영웅본색’의 영웅 기운에다 ‘첩혈쌍웅’의 의리와 우정 코드로 재해석한다. 촉(蜀)이라는 이너서클 안에서 군신의 의리로 똘똘 뭉친 ‘유비’ ‘관우’ ‘장비’보다 적국의 장수로 배신과 음모의 씨줄과 날줄 위에 선 오(吳)나라의 장수 주유와 촉나라의 책사 제갈량을 선택한 것이다.



제갈량과 주유는 음악으로 마음을 소통한다. 유비가 조조에게 패한 뒤 제갈량은 그 유명한 천하삼분 계책을 내놓으면서 유비에게 손권과의 동맹을 권유한다. 그는 자신의 세 치 혀로 손권을 뒤흔든 뒤, 손권의 으뜸 신하인 주유를 방문하게 된다. 여기서 제갈량과 주유는 서로에게서 냉정과 열정의 자질을 꿰뚫어보고 거문고 합주로 마음을 떠보는데, 네 번의 정지 화면으로 서로 마음을 건네는 양조위(주유)와 금성무(제갈량)의 눈빛 연기는 ‘적벽대전’의 백미다.

이쯤 되면 우리는 모두 알 수 있다. 오우삼은 극렬한 재즈 애호가로, 만드는 영화마다 말이 아닌 마음속 저 밑바닥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내의 이야기(나바호 인디언과 미군의 교감을 다룬 ‘윈드 토커’를 생각해보라)에 심취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오우삼의 트레이드마크뿐 아니라, ‘적벽대전’에는 새로운 오우삼식 은유들이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은 ‘새’와 ‘깃발’이다. 어쩌면 ‘깃발’조차 또 다른 새의 날개가 아니던가. 영화에서 제갈량과 주유는 공통적으로 새의 깃털을 들고 군대를 지휘한다. 조조가 한(漢)의 마지막 황제를 위협할 때, 황제가 매혹된 것도 여린 울음의 아름다운 새 한 마리였다. 손권의 동생인 손상향조차 새를 바라보며, 궁궐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면서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고 말한다.

즉 이 영화에서 전형적 인물인 유비 관우 장비를 뺀, 새롭게 재해석되는 오우삼의 영웅들은 모두 날개를 가진 새로 은유된다. 이에 반해 ‘욕망 때문에 젊어진다’는 실리주의자 조조는 이들을 낚으려는 한 마리의 호랑이다(손권이 사냥하면서 담력을 얻은 것도 호랑이를 사냥했기 때문이었다). 실제 제갈량은 조조의 적국을 염탐하러 비둘기 한 마리를 날려 보낸다. 그러나 호랑이 조조도 제갈량의 책략에 넘어가 대패하고 만다.

그러니까 전통적인 삼국지 텍스트의 촉과 위(魏)의 대결보다 이편이 훨씬 오우삼식이다. 형과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에 휩싸인 손권의 손에 칼이 들리고 그 칼의 음영이 손권의 눈에서 빛날 때, 자상하게도 아이의 피리에 친히 구멍을 뚫어주던 손권이 소도둑을 감싸안을 때, 난산을 거듭하는 말의 출산을 제갈량이 또한 해결할 때, 캐릭터의 균형성은 거대한 전투의 스펙터클과 함께 빛을 발한다. 그것은 전 중국인이 흠모하는 중국적인 너그러움, 아량, 대인의 풍모나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바라 마지않는 모토인 ‘단결’ 등의 복잡다단한 중국의 심리적 지층이 오우삼의 손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중국의 중화주의나 매스게임 같은 집체주의적 이미지 탈피 못해

그래서 아쉽다. 어쩔 수 없이 오우삼조차도 중국의 중화주의나 매스게임 같은 집체주의적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적벽대전’ 역시 모든 중국형 블록버스터의 맹점을 거듭해 반복한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국 인민의 삶에 천착했던 5세대 감독들이 ‘영웅’이니 ‘연인’이니 ‘무극’이니를 만들었을 때 들던 배신감과 5세대 감독의 몰락을 보는 씁쓸함보다야 더할까.

중국형 블록버스터의 끝은 어디일까. 일단 2부작으로 나눠 완성된 ‘적벽대전’의 말미를 보아야 이 영화가 과연 중국판 ‘반지의 제왕’이 될지, 또 다른 평범한 ‘영웅’의 화사한 아류작이 될지 알 법하다. 적벽의 한판승부도 이제 머지않았다.



주간동아 2008.07.29 646호 (p68~70)

심영섭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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