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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종갓집과 코미디가 만났을 때

  •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종갓집과 코미디가 만났을 때

종갓집과 코미디가 만났을 때
굽은 허리에 가는귀먹은 노인이 힙합 음악이 나오자 허리를 곧추세우며 비보이 춤을 춘다. 서로를 싫어하는 형제가 어쩔 수 없이 만난 자리에서 증오의 마음을 푸는 장면은 익숙한 가요의 한 구절을 패러디했다. S라인을 선보이며 엉뚱하게 등장한 묘령의 여인은 극 후반부에 눈물샘을 자극하는 애틋한 캐릭터로 변신한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등 소극장 스테디셀러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온 장유정의 새 창작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작/연출 장유정)가 많은 관심 속에 드디어 막을 올렸다. 작업 기간만 4년이 걸렸고, 실제로 안동에 시댁을 둔 며느리라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 투여된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전통적인 소재와 뮤지컬 코미디를 결합했다는 데 있다. 안동 종갓집을 배경으로 하되 주인공은 현대의 젊은이들로 설정함으로써 전통과 현대 가치의 충돌을 갈등구조로 보여줄 수 있는 틀을 짰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우선 소재의 선택에서 독창적이고 성공적인 출발을 보여준 셈이다.

무대는 우리나라 종갓집의 80%가 몰려 있다는 안동의 이씨 종갓집 빈소에서 시작된다. 집안 어른들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두 아들, ‘썩을놈’ 석봉과 ‘죽일놈’ 주봉 형제를 타박한다. 석봉과 주봉은 뼈대 있는 양반 가문 자제지만 어머니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접하고 지난 3년간 부자의 연을 끊은 상태다. 이들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버지 춘배의 무관심 때문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다.

형제의 갈등과 화해하는 과정 흥미롭게 그려

각각 사업 실패와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백수가 된 석봉과 주봉은 연락을 끊고 지내다 아버지의 상가에서 조우한다. 다시 만나서도 해묵은 감정이 드러나 말다툼을 벌이는 두 사람, 이때 홀연히 나타난 법률사무소 직원인 오로라는 아버지가 ‘당첨된 로또’를 숨겨두고 있었다는 말을 전한다. 두 형제는 로또와 오로라의 사랑 모두를 얻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결국 뒤늦게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발견하면서 오해는 풀리고 가족 간의 화해도 이뤄진다.



두 형제가 과연 화해할 것인가라는 메인 플롯에 로또의 실재 여부, 오로라의 정체 등 서브 플롯들로 흥미롭게 펼쳐진 전반의 이야기는 아쉽게도 후반에 이르러 가벼운 반전을 맞으며 몇 가지 불명료한 인과관계를 남기고 끝맺는다. 예컨대 아들들은 아버지의 무관심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믿지만, 사실은 종갓집 맏며느리로서 전통을 무리하게 지키려 했던 그녀의 의지 때문이었다는 점이 극중극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정작 아들들이 인지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또 신비한 여인 오로라의 캐릭터가 큰 웃음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간단한 복선으로 인해 그녀의 정체가 어머니의 귀신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보사노바, 탱고,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 음악 선보여

종갓집과 코미디가 만났을 때
전반이 보드빌 스타일의 깜짝쇼를 선보이는 앙상블 댄스에 비중을 두었다면, 후반에서는 사자(死者)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겨진 이야기를 멜로 라인으로 풀어가는 극중극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정작 형제는 이 극중극에서 소외돼 있고 오로라와의 사랑에만 빠져 있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식의 수동적인 결말을 보여준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무대는 도르래를 이용한 ‘미닫이문’ 스타일의 좌우 전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상부 전환이 불가능한 자유극장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장면 전환은 소음이 많고 고정된 구간 안에서만 이동이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솟을대문과 대청마루의 세트 디자인은 전통을 상징하는 동시에, 현대성을 대표하는 두 형제와의 대비를 통해 갈등의 또 다른 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극 초반부에 종갓집 어른들이 앙상블 구실을 하면서 작품의 컨셉트인 퓨전적 요소를 선점해버렸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이 때문에 두 형제가 비주얼로만 현대성을 대표하기는 다소 약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형제를 통해서만 부각할 수 있는 모던한 오브제를 더 많이 등장시켰다면 작품이 추구하는 갈등과 화합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싱글즈’의 작곡가 장소영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있다. 오로라와 며느리 같은 여성 캐릭터에는 보사노바, 탱고 등 서구적인 음악을 부여했고 두 형제와 아버지의 경우는 끈끈하고 친숙한 대중가요와 발라드로 설정해 귀를 즐겁게 한다. 석봉과 주봉을 맡은 박정환과 정동현/송용진(더블캐스팅)의 연기는 능청스럽고 훌륭하다. 오로라 역의 이주원은 배우의 재발견이라고 할 정도로 존재감이 뛰어났다. 추정화를 비롯한 안정된 조역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6월8일, PMC 대학로 자유극장. 문의 02-738-8289



주간동아 2008.04.15 631호 (p78~79)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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