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2

2008.02.05

포를 뜬 배추 센 불로 볶아 얼얼하고 개운한 맛 일품

  • 허시명 여행작가 twojobs@empal.com

    입력2008-01-30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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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를 뜬 배추 센 불로 볶아 얼얼하고 개운한 맛 일품

    쓰촨식 배추볶음.

    중국요리 조리장들의 모임으로 ‘F·D’라는 게 있다. 회원은 27명인데 모두 한국 사람이다. 박한호(38) F·D 회장은 “화교들이 주도한 모임에 한국 사람이 끼는 경우는 있어도 한국 사람만으로 이뤄진 중국요리 조리장 모임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박 회장은 인천에서 중국요리를 한 아버지의 가업을 잇고 있다. 인천은 차이나타운도 있고 해서 중국요리가 센 동네다. 중국음식점 자녀들이 그렇듯 박 회장도 청소년기엔 학교까지 묻어가는 춘장 냄새가 싫었고, 자장면은 더욱 싫었다. 중국요리 말고 다른 것을 해보려 두어 군데 직장을 다녔지만, 주방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일하지 않으면 용돈을 주지 않았다. 용돈을 받기 위해 아버지를 돕다가 자연스럽게 주방 일을 배웠다. 하지만 아직도 따라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가 내는 짬뽕 맛이다. 아버지의 짬뽕 맛은 화력(火力)과 프라이팬에서 나왔다. 한 아궁이에 연탄을 9장씩 넣어 화력을 키웠다. 연탄은 세 구멍에 세 장씩 들어갔다. 프라이팬은 판이 두꺼워 손목이 아플 정도로 무거웠다. 그 때문에 아버지는 손목 통증을 평생 달고 살았다. 그런 아버지가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간혹 아버지 친구들이 박 회장의 음식을 맛보고 “아들이라 다르긴 하다. 하지만 너희 아버지는 정말 대단했어, 임마”라고 말한다.

    대 이은 중국요리 솜씨…단골손님에게 서비스로 제공

    박 회장이 내놓은 음식은 ‘쓰촨(四川)식 배추볶음’이었다. 이 요리는 보기엔 간단할 것 같지만 만들기는 까다롭다. 주재료는 배추와 청경채다. 배추 흰 속대 한 장을 포 뜨는데 얇게 7겹을 낸다. 미역 두께쯤 될까? 너무 얇아도 안 되고 너무 두꺼워도 안 된다. 물에 젖어도 돌돌 말리지 않고 찢어지지 않아야 한다. 포 뜬 배추를 프라이팬에 담아 제트버너에 순간적으로 볶아낸다. 제트버너는 화력이 좋아 10초 이상 머물면 어떤 재료든지 타버린다. 중국요리의 맛과 경쟁력은 이 화력과 속도에서 나온다.



    양념은 태운 소금, 간장 한 방울, 쓰촨 고추, 통후추 간 것이 전부다. 통후추를 쓰면 적게 넣고도 향을 살릴 수 있다. 배추볶음을 한 장 먹으니 입 안이 얼얼하다. 쓰촨식 요리는 매운 게 특징이다. 매운맛은 쓰촨 고추로 낸다. 볶은 배추를 두 장째 먹으니 입천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 매웠지만 입 안이 맑아진다. 다행히 볶은 배추 둘레에 놓인 청경채는 싱겁다. 매운맛을 씻어내는 데 쓰라는 것이다. 볶은 배추에 청경채를 짝 맞춰 네 젓가락쯤 먹고 나니 이제 매운맛이 위장을 찌른다. 이때 물만두가 생각나는데 만두보다 더 좋은 게 배갈이다. 이 매운맛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좋아한다.

    박 회장은 쓰촨식 배추볶음을 팔지 않는다. 오로지 단골에게 서비스로 내놓는다. 그의 솜씨와 정성을 한칼에 보여줄 수 있는 요리다. 그가 일하는 중화요리집 밍(02-761-4242, 서울 여의도우체국 인근)은 예약해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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