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의 갈치조림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를 휩쓸지만 한두 회사가 세계를 제패할 수 없는 것이 음식 분야다. 베트남이나 태국 기업이 한국에 안착하기 어려워도 이들 나라의 음식은 한국에서 먹힌다. 음식의 다원주의에서 한국음식의 세계화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한식의 세계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울의 17개 특1급 호텔 중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다섯 곳에 불과하다. 내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면 밖에 나가서도 귀한 대접을 못 받는 법이다.
요리사 박경심 씨는 신라호텔 한식당에서 9년 근무하고 프리마호텔을 거쳐 사랑채에서 일하고 있다. 박씨는 호텔에서 한식당이 사라져가는 원인을 잔손질이 많이 가고 조리과정이 길고 복잡한 점을 꼽았다. 그리고 식단의 변화가 적은 것도 약점으로 들었다. 외국인들은 대체로 반응이 좋은 편인데 한국인들은 호텔 한식을 비싸게 여겨 꺼리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박씨가 소개한 요리는 갈치조림이다. 우리 상차림에서 조림은 확실하게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3첩 반상에는 구이 아니면 조림이 올랐고, 5첩 반상부터는 반드시 조림이 올랐다. 궁중에서는 조림을 조리개라 불렀다. 육류 어패류 채소류 모두를 조림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 밥상의 확실한 주인공 …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반찬
박씨가 내놓은 갈치조림은 갈치 두세 토막에 무 한 쪽, 애호박 두 쪽이 들어간다. 흰 살 생선이나 간장으로 양념하는데, 고춧가루는 간장의 반의 반 분량만 넣는다. 조림 양념장은 양파와 청고추를 같은 양으로 넣어 갈고 된장으로 농도를 맞추는데, 육수는 멸치와 대파와 무를 넣고 우려내서 사용한다.
사랑채에서 사용하는 갈치는 낚시로 잡아 올린 제주도 직송 은갈치다. 박씨는 요리할 때 혹 낚시바늘이 끼었을까 눌러보고 뒤집어본다. 갈치의 매력은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다. 수저로 살을 긁어먹을 수 있는 드문 생선이다. 이런 부드러움 때문에 이제 갓 밥을 먹기 시작한 돌잡이 아이도 잇몸이 훤히 드러난 노인도 먹을 수 있는, 한식에서 안티가 가장 적은 반찬이다.
갈치는 한반도 서남해안 제주도 근해에서 사철 잡혀 한국인이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생선이다. 게다가 갈치조림은 찌개류와 더불어 한식의 짭짤한 맛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갈치조림은 한식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멋진 요리다.
사랑채 갈치조림 정식은 2만5000원으로 일품요리로도 주문할 수 있다. 일품요리는 술과 짝짓기 좋은데, 지난 4월 서울세계음식박람회에서 한국음식 민속주 부문에서 금상을 받은 박경심 씨는 요즘 술 빚기에도 정성을 들이고 있다. 원래 사랑손님이 찾아오면 먼저 내놓던 상차림이 주안상이 아니던가. 사랑채만의 주안상을 모색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