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말에 속아줄 수 있다는 건 정말 위대한 능력과 힘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미덕이자 배려고, 불교에서 말하는 법력입니다. 흔히 부처님을 ‘대자대비’하다고 말하죠. 부처님은 중생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그 말이 혹 거짓이라 해도 눈감아주고 오히려 자애를 베풀었습니다. 중생과 마음을 맞춘 겁니다. 이는 곧 ‘합일’ ‘일치’의 경지입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정신이 정치·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할 때가 아닐까요?”
개성 영통사에서 남북 불자 정례 접촉
절경 중 절경이라는 단양의 한 외지고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대한불교천태종 총무부장 무원스님(51·인천 황룡사 주지·사진)은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기자에게 나지막이 반문했다.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장기화된 시점, 더욱이 종교계까지 대열에 동참하고 나선 상황에서 스님의 ‘화법’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 기자의 아리송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스님은 손사래를 치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본인 말의 의도와 기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제스처였던 것. “정치적으로 누구를 탓하려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던진 자성의 목소리였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내 마음을, 내 주변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진정한 부처의 마음입니다. ‘역지사지’ 마음으로, 작은 부처의 손길로 국민의 아픔과 고충을 함께 느끼고 살피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다 보니 부처님의 ‘대자대비’ 정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 얘기를 이어가면서 무원스님은 자신은 아직 법력이 만족스러운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연신 몸을 낮췄다.
무원스님은 지난 몇 년간 ‘시중의 부처’ ‘중생의 부처’가 되길 몸소 실천했다고 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첫 번째가 북한의 불자들을 끌어안은 일로, 2005년 10월 개성 영통사를 복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영통사는 고려 제11대 문종의 넷째 왕자인 의천 대각국사가 출가한 뒤 입적한 천태종의 개창성지다.
무원스님은 북한 불교계에서도 대표적인 사찰로 꼽히는 영통사를 복원함으로써 남북 불교문화 교류와 북한 주민들의 종교 활성화에 앞장섰다. 이후 영통사에서는 남측 불자들의 성지순례 방문과 법회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무원스님은 남북한 불자, 주민들이 정례적으로 접촉하는 기회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 주민들은 종교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얼마 안 되는 신도들조차 닫힌 마음을 열 기회를 갖기도 전에 당장 여비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죠. 국토 통일 이전에 마음의 통일, 통합이 필요한 만큼 남측 불교계가 좀더 힘을 쓴다면 남북한 불자들과 주민들이 사고의 간극을 좁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
무원스님은 이를 위해 또 하나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본부의 종교인 공동대표로 새터민(탈북자)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 무원스님은 2004년부터 주지로 있는 인천 황룡사에서 새터민을 위한 템플 스테이를 열고, 남한 사회 적응에 고충을 토로하는 탈북자들의 안전한 정착을 돕고 있다. 무원스님은 “예상외로 탈북자들의 심리적 고통이 심하다”고 전했다.
“탈북자 대부분은 북한에서의 삶과 가족을 버리고 탈출한 일을 마음에 죄로 담아두고 있습니다. 이런 혼란이 마음의 병으로 연결된 경우가 많죠.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여기에 오기까지 어떠한 일을 했든 다 용서하실 거라고, 지금부터 순결을 꽃피우라’고 말입니다. ‘순결의 중요성을 인식하면 그동안 멍들었던 일은 다 잊을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제 얘기가 도움이 됐는지, 한층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한 사회에 적응하려는 그들을 볼 때면 저 스스로도 수행의 진맛을 느낍니다.”
활발한 국제 교류도 빼놓을 수 없다. 무원스님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에 거주하는 고려인 돕기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적도 없는 이들과의 동질감 형성을 위해 한국 문화 전파사업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 동티모르 유소년축구단 지원사업도 해마다 거르지 않는다. 최근엔 중국 대지진, 미얀마 사이클론 참사 피해 복구지원 성금도 모았다.
보람은 곧 또 다른 의지 발현의 원동력이다. 무원스님에게서 그 의지는 바로 종교, 좁혀 말하면 천태종이 시대에 맞는 가치를 추구하고 국내에서 나눔과 기부문화 확산을 통해 큰 통일을 이뤄가는 것이다.
“종교가 언제까지 사람들이 찾아주길 바란다면 이는 진정한 포교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현실 속으로 들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가와 국민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종교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국가·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 종교의 소명
무원스님에게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언젠가 단양에 찾아온 공무원들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어디 좋은 데 없느냐”고 묻기에 스님은 말없이 그들을 어디론가 이끌고 갔다. 무원스님이 찾은 곳은 충북 제천 금수산 기슭에 자리잡은 선녀탕이라는 폭포였다. 주나라 왕이 세수를 하다 대야에 비친 폭포를 보고 신하들에게 동쪽으로 가게 해 찾아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저녁에 그들을 폭포로 데려가니까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래서 제가 먼저 옷을 벗고 폭포 밑으로 들어가니 하나 둘씩 옷을 벗고 따라 들어오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별을 보면서 똑같은 표정을 짓고 같은 심정을 얘기하더군요. 그때 이 사람들이 ‘마음의 통일을 이뤘고, 마음의 부자가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원스님이 진정 바라는 것은 바로 모든 세상과의 소통이자 통합인 것이다.
개성 영통사에서 남북 불자 정례 접촉
절경 중 절경이라는 단양의 한 외지고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대한불교천태종 총무부장 무원스님(51·인천 황룡사 주지·사진)은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기자에게 나지막이 반문했다.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장기화된 시점, 더욱이 종교계까지 대열에 동참하고 나선 상황에서 스님의 ‘화법’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순간 기자의 아리송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스님은 손사래를 치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본인 말의 의도와 기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제스처였던 것. “정치적으로 누구를 탓하려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던진 자성의 목소리였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내 마음을, 내 주변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진정한 부처의 마음입니다. ‘역지사지’ 마음으로, 작은 부처의 손길로 국민의 아픔과 고충을 함께 느끼고 살피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다 보니 부처님의 ‘대자대비’ 정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 얘기를 이어가면서 무원스님은 자신은 아직 법력이 만족스러운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며 연신 몸을 낮췄다.
무원스님은 지난 몇 년간 ‘시중의 부처’ ‘중생의 부처’가 되길 몸소 실천했다고 할 만큼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첫 번째가 북한의 불자들을 끌어안은 일로, 2005년 10월 개성 영통사를 복원한 것이 대표적이다. 영통사는 고려 제11대 문종의 넷째 왕자인 의천 대각국사가 출가한 뒤 입적한 천태종의 개창성지다.
무원스님은 북한 불교계에서도 대표적인 사찰로 꼽히는 영통사를 복원함으로써 남북 불교문화 교류와 북한 주민들의 종교 활성화에 앞장섰다. 이후 영통사에서는 남측 불자들의 성지순례 방문과 법회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무원스님은 남북한 불자, 주민들이 정례적으로 접촉하는 기회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북한 주민들은 종교의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얼마 안 되는 신도들조차 닫힌 마음을 열 기회를 갖기도 전에 당장 여비부터 걱정해야 할 처지죠. 국토 통일 이전에 마음의 통일, 통합이 필요한 만큼 남측 불교계가 좀더 힘을 쓴다면 남북한 불자들과 주민들이 사고의 간극을 좁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
무원스님은 이를 위해 또 하나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본부의 종교인 공동대표로 새터민(탈북자)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 무원스님은 2004년부터 주지로 있는 인천 황룡사에서 새터민을 위한 템플 스테이를 열고, 남한 사회 적응에 고충을 토로하는 탈북자들의 안전한 정착을 돕고 있다. 무원스님은 “예상외로 탈북자들의 심리적 고통이 심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대한불교천태종 스님들이 개성 영통사를 둘러보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무원스님.
활발한 국제 교류도 빼놓을 수 없다. 무원스님은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에 거주하는 고려인 돕기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적도 없는 이들과의 동질감 형성을 위해 한국 문화 전파사업을 꾸준히 추진 중이다. 동티모르 유소년축구단 지원사업도 해마다 거르지 않는다. 최근엔 중국 대지진, 미얀마 사이클론 참사 피해 복구지원 성금도 모았다.
보람은 곧 또 다른 의지 발현의 원동력이다. 무원스님에게서 그 의지는 바로 종교, 좁혀 말하면 천태종이 시대에 맞는 가치를 추구하고 국내에서 나눔과 기부문화 확산을 통해 큰 통일을 이뤄가는 것이다.
“종교가 언제까지 사람들이 찾아주길 바란다면 이는 진정한 포교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현실 속으로 들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가와 국민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것이 이 시대에 맞는 종교의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국가·국민과 함께 하는 것이 종교의 소명
무원스님에게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언젠가 단양에 찾아온 공무원들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어디 좋은 데 없느냐”고 묻기에 스님은 말없이 그들을 어디론가 이끌고 갔다. 무원스님이 찾은 곳은 충북 제천 금수산 기슭에 자리잡은 선녀탕이라는 폭포였다. 주나라 왕이 세수를 하다 대야에 비친 폭포를 보고 신하들에게 동쪽으로 가게 해 찾아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저녁에 그들을 폭포로 데려가니까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군요. 그래서 제가 먼저 옷을 벗고 폭포 밑으로 들어가니 하나 둘씩 옷을 벗고 따라 들어오는 겁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의 별을 보면서 똑같은 표정을 짓고 같은 심정을 얘기하더군요. 그때 이 사람들이 ‘마음의 통일을 이뤘고, 마음의 부자가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원스님이 진정 바라는 것은 바로 모든 세상과의 소통이자 통합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