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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SERIES|원더풀 상하이 ①

중국 경제 심장부 ‘관광 천국’ 꿈 이루다

역사와 첨단 어우러진 제2의 ‘동방명주’ 볼거리·놀거리·먹을거리 가득 “여행 일정 모자라요”

  • 조창완 작가· ‘차이나 소프트’ 저자 jochangwan69@hanmail.net,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사진·자료/ 상하이관광청 www.shanghaitrip.net

중국 경제 심장부 ‘관광 천국’ 꿈 이루다

중국 경제 심장부 ‘관광 천국’ 꿈 이루다

상하이가 자랑하는 푸둥신구의 야경.

베이징(北京)이 중국 정치와 문화의 수도라면 상하이(上海)는 경제 수도라 할 수 있다.

먹을거리에서 입고 쓰는 물건의 대다수가 중국에서 건너오는 지금, 우리에게 중국은 한시바삐 이해해야 할 나라다. 그중 상하이는 중국 경제의 바로미터가 되는 도시다. 베이징보다 많은 항공 편수가 말해주듯, 상하이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것과 실핏줄처럼 연결된 땅이기도 하다. 또한 상하이는 아시아 대표도시 자리를 놓고 우리나라 도시들과 경쟁하고 있다. 물론 상하이 뒤에는 13억 인구의 중국이 버티고 있는 만큼 시작부터 다른 게임이지만 당대에 국가 간, 지역 간 장벽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점에서 긴장감을 갖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상하이 사람들에겐 정치밖에 모르는 베이징 사람들보다 자신들만큼이나 세련된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상하이는 숙박, 교통, 관광지 등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인프라를 갖춘 아시아의 대표적 여행도시다. 해외여행을 계획한다면 한 번쯤 상하이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여행의 즐거움뿐 아니라 아시아의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상하이 여행의 이모저모를 네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160년 전 그곳은 작은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도 상하이를 부르는 한마디 단어는 그때 쓰던 어구(漁具)의 이름에서 유래한 후(?)다. 1842년 아편전쟁은 중국인들에게 피를 불러왔지만, 상하이에는 발전의 신호탄이었다.



리안 감독의 영화 ‘색, 계’에서 볼 수 있듯 1930년대 상하이는 동양문화의 화려한 표지였다. 하지만 1949년 중국 공산화와 더불어 상하이는 그 화려한 겉옷을 벗고 인민복으로 갈아입었다. 개혁개방 이후 홍콩과 맞닿은 광저우(廣州)나 신흥도시 선전(深 )은 하루가 다르게 새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상하이는 인민복 같은 낡은 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야사처럼 들리지만, 주룽지(朱鎔基)는 상하이 당서기 시절 중앙회의에서 읍소로 상하이의 재기를 주창했다. 그의 의지도 있었지만 장쩌민(江澤民)의 등극은 상하이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줬다.

1990년대 초반 푸둥(浦東) 개발을 기치로 상하이는 급속히 발전했다. 화려한 불빛의 푸둥 사무실이 다 차기도 전 황푸강 서쪽의 낡은 집들이 헐리고 재개발 열기에 불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는 대규모 주상복합단지의 중간에 있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철거 이야기가 나왔다.

지난해 상하이인들의 국민소득은 이미 광저우를 제쳤다. ‘중궈런(中國人)’으로 불리기보다는 ‘상하이런(上海人)’으로 불리길 원하는 상하이 사람들은 중국을 먹여 살린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수년 전 상하이 아가씨가 여행길에 반한 황산 농촌 총각과 결혼한 게 신선한 화제가 됐다. 중국 여성들의 경우 상하이를 ‘천국’처럼 여기고 있어 지방으로 시집가는 일은 상식 밖의 일로 통하기 때문이다.

150년 전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들던 동양의 도시는 몇이나 될까. 홍콩이 누려온 ‘둥팡밍주(東方明珠·아시아의 진주)’ 지위를 그대로 이어받은 상하이는 지금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임이 틀림없다. 베이징올림픽으로 상하이의 빛이 베이징으로 옮겨가리라 믿는 이들은 없다. 오히려 상하이인들은 2010년 엑스포를 바라본다. F1이나 상하이오픈 테니스를 만들어 세계 유명인사를 끌어모으고 있다. 현대 도시발전의 기초인 금융과 컨벤션, 전시에서 상하이는 이미 절대적 위치를 선점했다.

베이징이 6개월 만에 눈을 비비게 하는 도시라면, 상하이는 두세 달이면 도시 전체가 바뀌는 곳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둥팡밍주 방송탑과 진마오따샤(金茂大厦)가 연출해내는 스카이라인을 기대하고 푸둥을 찾은 이들은 이제 진마오따샤 바로 옆에 만들어진 ‘모리빌딩’으로 인해 주변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음에 실망(?)해야 한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상하이도시계획박물관엔 이 모습이 전시돼 있었다. 아무리 상전벽해(桑田碧海)하는 상하이지만 완벽한 계획도시의 위용을 자랑한다.

상하이에 들른 이들은 상하이가 홍콩에 비해 규모만 크지 관광과 쇼핑 인프라가 약간 부족한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하지만 상하이를 제대로 둘러보면 홍콩의 좁다란 침샤추이 골목이나 란콰이펑에서 보낸 시간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난징루의 길다란 명품거리는 세계 최대 규모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톈산(天山)이나 다닝(大寧) 국제 차(茶)시장에 가면 중국 명차를 가장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 중국 전 지역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즐기기에 상하이만한 도시도 많지 않다. 딩타이펑 같은 비싼 음식 체인이 아니더라도 상하이 어디서나 샤오롱바오라고 하는 작은 만두로 아침을 즐길 수 있다.

이젠 너무 비싸져버린 신톈디(新天地)가 싫다면 타이캉루(泰康路)나 헝산루(衡山路)의 바 거리를 찾아도 된다. 도심이 싫다면 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고 저우주왕(周庄)이나 통리(同里) 등의 수향(水鄕)을 찾으면 된다. 약간 멀지만 ‘미션 임파서블 3’에서 톰 크루즈가 뛰어다니던 우전(烏鎭)이나 시탕(西塘)을 찾아도 좋다. 유채꽃 피는 3월에 강남의 수향가에서 책을 읽노라면 세상의 시름도 사라진다.

한국과 접근성 좋은 데다 임시정부 등 역사 유적도 많아

하지만 상하이를 다니면서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기억해야 할 것도 많다. 여행자들이 들르는 보경리 4호 임시정부 청사나 윤봉길 의사가 의거한 루쉰공원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일반인이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역사의 접점들도 적지 않다(상자 기사 참조).

상하이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편리한 교통이다. 인천공항을 비롯해 부산 대구 광주 청주 제주 등 우리나라 전 공항이 상하이와 노선이 개통돼 있다. 또 김포공항과 홍치아오공항은 셔틀 항공편이 개설돼 접근성이 좋다. 보통 국제선이 뜨는 푸둥공항은 와이탄과 45km 정도 떨어져 멀게 느껴지지만,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자기부상열차가 공항과 지하철 2호선 롱양루(龍陽路)까지 연결돼 있다. 시내에도 이미 5개 지하철이 완공돼 주요 여행지는 물론 주변으로 갈 수 있는 주요 교통 거점들과 연결된다.

상하이는 중국 최대 도시다. 1041k㎡ 면적에 1800만여 명이 살고,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2000만명을 휠씬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개인소득은 다른 대도시의 2배에 이른다. 상하이에서 베이징 말을 쓰면 상하이 사람들은 알아듣고도 못 알아들은 척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상하이를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날씨다. 상하이의 여름은 기온 35~40℃에 습도가 80~90%를 오르내릴 정도로 후텁지근하다. 이 때문에 ‘찜통더위’라는 표현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더위로 전기 소모량이 많을 때는 상하이 여행의 절정인 와이탄 야경을 보는 데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상하이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는 3월에서 5월까지다. 이때는 날씨도 좋고 농촌지역에 유채꽃 등이 피어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4월이 넘어가면 여러 가지 꽃이 피어 여행객을 즐겁게 한다. 물론 이 기간에 우기가 닥칠 가능성도 높다. 5월 중순 이후면 더워지기 시작한다.

날씨 좋은 3`~5월 여행 최적기 … 10~11월은 게 요리 절정

가을도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상하이는 남방지역이라 가을 느낌이 드는 것은 10월이 넘어서다. 10~11월은 상하이 게 요리의 절정기다. 이 시기는 양징후(陽澄湖) 등에서 나오는 상하이 게의 물이 오르는 때이므로 미식가들은 꼭 시식해보길 권한다. 11월이 되면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추위가 찾아와 몸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4성급 이상 호텔이라면 난방이 들어오지만 자칫 평상 기온을 생각해 옷을 얇게 입을 경우 몸을 상하기 쉽다.

상하이는 도시 전체가 관광지라 할 만큼 방대하므로 여행하기 전 ‘여행 주제’를 적절히 잡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사진을 좋아한다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를 중심으로, 음식을 좋아한다면 점심 저녁에 미식을 맛볼 수 있는 장소 위주로 스케줄을 짜는 게 좋다. 쇼핑 마니아라면 난징루나 뚜어룬루, 둥타이루 골동품 가게 등을 이동경로에 추가해야 한다.

여행에 지칠 때는 홍치아오공항 인근에 형성된 한국인 중심의 오락타운도 들러볼 만하다. 이곳엔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음식이 있고, 우리 돈 1만원 정도면 전신 및 발 안마가 결합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즐비하다. 이 밖에도 오락, 건축, 미술 등 다양한 기호를 바탕으로 코스를 잡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하이를 이틀 이상 여행한다면 주변 여행지인 쑤저우(蘇州)나 항저우(杭州) 중 한 곳을 선택하도록 한다. 상하이를 집중 여행하고 싶다 해도 하루 정도는 저우주왕이나 통리 같은 수향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운 여행의 추억을 들면, 황푸강 서쪽 빈지앙따다오(濱江大道)에 있는 바에서 와이탄의 조명이 켜지는 모습 지켜보기, 따닝궈지차청에서 보이차 맛을 보고 흥정하기, 헝산루 바 거리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청승 떨기, 지아싱과 하이옌 등에 있는 임시정부 유적 찾아다니기, 저우주왕 선지아지우로우(沈家酒樓)에서 완산티(萬三蹄)에 중국 술 마시기, 항저우 시후가에서 달 보기 등을 꼽을 수 있을 듯하다.

상하이 여행코스



중국 경제 심장부 ‘관광 천국’ 꿈 이루다

상하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황푸강 유람선.

①상하이 동서 여행로

롱양루(자기부상열차 종점) →상하이커지관 → 둥팡밍주(진마오따샤, 황푸강 동쪽 빈지앙따다오) →와이탄(유람선) → 난징루 보행거리(상하이 명동) →런민광창(상하이박물관) →신톈디(임시정부청사, 중국 공산당 1차 회의지) →헝산루 바 거리(국제기독교예배당, 쑹칭링 옛집) →쉬지아후이(천주교당, 전문상가)

②상하이 남북 여행로

마시청(서커스) →훙커우축구장(루쉰공원, 매원, 뚜어룬루) →다닝 국제차시장 →상하이역 → 위푸스 →위위안(상하이라오지에, 청황먀오) →원먀오(문묘)

③상하이 교외 여행선

상하이는 상하이티위관이나 훙커우주치아장 등에서 매일 아침 교외여행선이 출발한다. 이곳에 가면 저우주왕 등 수향으로 가는 1일 여행과 주변으로 가는 1박2일 상품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면 상하이역에서 출발하는 쑤저우, 우시(無錫), 난징(南京)행 기차를 탈 수 있고, 상하이난짠에서는 지아싱(嘉興), 항저우, 샤오싱(紹興)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상하이 역사와 한국의 인연

수많은 임시정부 인사들 활동 김옥균 거주하다 피살당한 곳


중국 경제 심장부 ‘관광 천국’ 꿈 이루다

1920~30년대 상하이 옛 거리를 재현한 뚜어룬루(多倫路).

상하이는 춘추전국시대에 오(吳)나라에 속했으며, 바다와 가까워 해적의 약탈이 심한 어촌이었다. 하지만 아편전쟁 이후 서양인들은 상하이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열강에 의해 조차지역으로 승계된 상하이는 오늘날 한 나라의 문화와 교육 중심지로뿐 아니라 과학, 무역, 산업, 기술의 중심지로 발달했다. 중국의 다른 주요 도시들에 비해 상하이의 역사는 짧은 편이다. 하지만 2001년 10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치렀고, 2010년 엑스포를 유치함으로써 더욱 빠른 부상을 꿈꾸고 있다. 거기에다 이미 동아시아 전시 및 컨벤션의 중심도시로도 떠올랐다.

우리 역사 인물 가운데 상하이와 인연을 맺은 첫 번째 인물은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이다. 그는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홍종우에게 피살당해 조선으로 이송되기 전까지 상하이에서 살았다. 신경숙의 소설 ‘리진’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사건이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이후 상하이는 우리 혁명가들에게도 중요한 근거지가 됐다. 한국인 최초로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 한락연(韓樂然) 선생도 1919년 상하이로 건너가 상하이미술대학에 다니면서 혁명활동에 참가했다. 훗날 프랑스에도 유학하고 ‘중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그의 인생은 상하이만큼이나 복잡했다.

임시정부의 수많은 인사들도 상하이를 경험했다. 1930년대엔 중국 유일의 영화 황제로 불리는 ‘김염’이 상하이에서 최고 남자배우로 등극했다. 항상 란링위(阮玲玉)와 짝을 이룬 그는 한국 최초의 양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김필순의 아들로,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사촌동생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김산 박헌영 등 많은 이들이 상하이를 방문했다. 그런데 상하이를 찾는 한국 사람들의 발길은 1949년 중국 공산화와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초목이 우거져도 길은 길. 1992년 한중수교로 상하이엔 다시 한국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본인이 주로 거주하던 구베이(古北)나 롱바이(龍栢) 지역은 한국인 거주지로 급속히 대체됐고, 지금은 한국 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주간동아 2008.02.05 622호 (p36~39)

조창완 작가· ‘차이나 소프트’ 저자 jochangwan69@hanmail.net,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사진·자료/ 상하이관광청 www.shanghaitri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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