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0

2008.01.22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도 기가 막혀?

옴부즈맨 성격의 ‘삼지모’ 여전히 활동 중… “삼성, 비자금 거짓 해명 우리까지도 기만”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01-16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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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도 기가 막혀?

    지난해 11월26일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오른쪽)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이덕우 변호사가 기자회견 중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불법 미술품 구입, 분식회계 작성, 시민단체 인사관리 등과 관련된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이하 삼지모)을 아십니까?”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특검을 받고 있는 삼성그룹에는 옴부즈맨 성격의 외곽 비판그룹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삼지모’. 2006년 2월 에버랜드 전환사채 증여 문제, X파일 문제 등으로 벼랑 끝에 몰렸던 삼성그룹이 꺼낸 회생카드 ‘국민들께 드리는 말씀’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다. 당시 삼성 측은 “우리 사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에 따라 삼성 경영에 쓴소리를 해줄 사회 각계 인사들을 모셔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을 운영, 자문을 구하고 비판적인 여론을 수용해나갈 계획”이라며 삼지모 운영의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같은 해 6월, 언론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삼지모는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 여론이 “여론 무마를 위한 바람막이 아니냐” “삼성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모두 불참해 구성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비난을 쏟아냈지만, 구성원들의 화려한 면면이 공개되자 이런 주장은 쑥 들어갔다. 총 8명으로 구성된 삼지모 참여인사는 다음과 같았다.

    지난해 11월 긴급간담회 4명 참석

    김형기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국가균형발전위원, 좋은정책포럼 공동대표),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안병영 연세대 교수(전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이정자 녹색미래 대표(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 최열 환경재단 대표, 방용석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전 노동부 장관), 최학래 한겨레신문 고문(모임의 간사는 최열 대표).



    그러나 지난해 10월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폭로 이후 삼지모는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간간이 이름을 들을 수 있었던 이 모임이 무슨 까닭에선지 아예 모습을 감춘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인가, 아니면 ‘삼성을 지켜주는 모임’인가”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삼지모는 과연 사라진 것일까.

    확인 결과 삼지모는 여전히 운영되고 있었다. 다만 지난해 2월 안병영 교수가 일신상 이유로 위원직을 사퇴했고, 지난 가을 이정자 대표가 정치활동을 시작(창조한국당 공동대표)한다는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뒤 위원 수는 6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삼지모 위원들과 삼성 측에 따르면, 삼지모는 통상 분기마다 한 번씩 모이며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지금까지 열린 정기 모임은 총 다섯 번. 지난해 12월로 예정됐던 여섯 번째 모임은 김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폭로 이후 취소됐다. 모임의 운영과 연락은 여전히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이하 구조본)가 담당하고 있다. 삼지모 운영과 관련, 방 이사장은 “보통 삼성 측이 그간의 경과에 대해 설명하고 질의 응답이 오가는 식이었다. 집중적으로 토론할 필요가 있으면 간사(최열)가 위원들의 생각을 묻기도 했다. 삼성 구조본 이학수 부회장은 거의 모든 회의에 나왔지만 결정권이 있는 모임이 아니어선지 분위기는 무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 이사장은 다음 모임 일정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특검이 끝나야 하지 않겠냐”며 말끝을 흐렸다. 삼지모 운영에 대해 삼성 측은 “주제와 안건을 정하지 않고 진행되는, 가볍고 자유로운 토론 모임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삼지모 “조만간 의견 도출 입장 발표”

    취재 결과, 삼성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삼지모가 아무런 구실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이후인 지난해 11월 말, 삼지모 간사인 최열 대표는 삼성 측에 비자금 문제와 관련한 간담회를 요구했다. 비자금 사건에 대한 삼성 측의 설명을 듣고 위원들도 ‘한마디’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이 모임에는 6명의 위원 가운데 4명이 참석했다. 최 대표와 방 이사장, 김 교수, 황 총장이었다. 김 교수의 설명이다.

    “우리가 모임을 요청했고 삼성에서는 이 부회장을 포함해 세 사람이 나왔다. 이번 사건에 대해 주로 삼성 측 견해를 듣는 분위기였다. 삼성이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이 오갔고, 삼성 측 관계자들의 해명과 설명이 이어졌다. 삼성 측도 우리 말을 한번 들어본다는 생각을 갖고 나온 것 같았다. 다른 때와 달리 분위기가 다소 무거웠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와 관련해 한 위원은 “삼성 측은 삼지모 위원들을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김 변호사의 폭로 내용은 과거에 벌어진 사건일 뿐, 삼지모가 만들어진 이후엔 그런 일이 전혀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위원들에게 거짓으로 설명했다”는 것. 이 위원의 설명이다.

    “간담회 직후인 지난해 11월30일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삼성이 최근까지도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 관리해왔고 이 돈을 잘못된 곳에 쓰고 있음이 드러나지 않았나. 이는 결과적으로 삼성이 우리(삼지모 위원들)를 기만한 것이다. 삼지모를 만들어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겠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구태의연한 기업 경영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번 비자금 사건의 핵심은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국가기관을 매수하려 시도했고,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닌가. 법적 처리와는 별도로 지배구조상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날 참석한 삼지모 위원들과 삼성 측 관계자들 간에는 날카로운 질문과 대답도 오갔다. 다음은 한 위원이 소개한 대화 내용의 일부.

    위원 :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나.

    삼성측 : 이건희, 이재용 부자를 경영에서 손떼게 만드는 게 목적이라고 본다.

    위원 : 그렇다면 이건희, 이재용이 없는 삼성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인가.

    삼성 측 : 생각할 수 없다.

    위원 : 오너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문제라고 본다. 삼성은 그렇게 자신이 없나. 노조 있는 기업 경영이 필요하다. 이제는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가 필요하다. 가신들의 욕심이 기업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대화 내용에 대해 대다수 참석 위원들은 자세한 언급을 회피했다. “아직 입장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는 게 이유였다. 모임 간사인 최 대표는 “삼성에 대한 성토 자리였다기보다 ‘투명 경영을 해야 한다’는 정도의 조언이 있었다. 별로 해줄 말이 없다”며 언급을 피했다. 황 위원 측도 “비공개 모임에서 오간 대화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한 위원은 “대화 과정에서 삼성 측 사람들의 인식구조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놀랐다”고 말해 당시 분위기를 짐작게 했다. 이 위원은 “대화를 하고 나니 ‘(삼성에) 정말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 대한 삼지모 위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혹시 삼지모 차원의 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김 교수는 삼지모의 계획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삼지모 위원으로 참여한 이유가 분명히 있으니 (비자금 사건과 관련한) 적절한 구실을 할 생각이다. 나름의 견해를 표명하는 일도 필요하다. 삼지모 회원들의 공통된 견해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1월 말, 늦어도 2월 안에는 삼지모 위원들의 견해를 모아 발표할 생각이다. 양심의 소리를 얘기하겠다. 분명 쓴소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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