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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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지름신’ 죽지 않고 또 왔네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2-16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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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 ‘지름신’ 죽지 않고 또 왔네

    ‘지름신’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Sugar Rush’전이 열린 라스베이거스 전시장.

    이젠 한국의 젊은 현대미술 작가들이 세계 각지에서 전시를 갖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 미국 네바다 주의 사막에 불야성을 이룬 그곳에서도 한국 여성작가 박윤숙, 윤정미, 최은영 세 명이 ‘Sugar Rush’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설탕과 같은 단 음식을 섭취하고 내는 일시적인 에너지 충전효과’를 의미하는 제목이 암시하듯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팝’이다.

    ‘팝’, 즉 대중문화 혹은 상업 소비문화는 일시적인 유행을 통해 식욕·물욕·성욕 등 인간의 일차적인 욕구를 줄기차게 만족시켜주는 방식 또는 문화다. 이러한 팝의 속성은 그 이미지들에 알게 모르게 빠져들어 우리의 수많은 욕구를 만족시키고, 동시에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수없이 넘쳐 흘러나오는 상품들을 어떻게 하면 좀더 많이 모으고 업데이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특히 미국 같은 상품 소비문화의 천국에서, 그것도 라스베이거스처럼 인간의 소비욕구를 부추기는 도시에서 팝의 ‘일시성’을 주제로 한 전시는 여러모로 암시하는 바가 많다. 과연 소비문화의 욕구에 부응하는 우리 삶에서 팝은 어떤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일까.

    ‘Sugar Rush’ 전시의 기획자이기도 한 작가 박윤숙은 팝아트가 현대문화의 복합적인 성격, 즉 소비문화에 대한 중독성을 비판하는 것일 수도, 그 생기발랄함을 찬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우선 지적한다. 실제 우리는 수많은 상업광고들에 현혹돼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소비하고 수집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소비광, 수집광일 수 있다. 작가들은 소비문화 속의 다양한 우리의 초상을 보여준다. 윤정미는 분홍색과 파란색 수집 중독처럼 보이는 여자 아이들과 남자 아이들의 모습을 마치 초상사진처럼 소개한다. 최은영은 무수히 많은 스티커를 모아 경쾌하고 유희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설치작업을 한다. 박윤숙은 일확천금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복권을 소재로 사용해 새로운 팝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작품들에 나타난 광적인 수집욕은 후기산업사회의 소비문화에 완전히 종속돼 있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과도함은 그런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저항 혹은 불만족의 알레고리이기도 하다. 도저히 만족을 모르는 어떤 욕망, 오히려 우리는 그 욕망의 지극히 소비적이고 광적인 모습에서 역설적으로 현대 소비문화에 대한 절대적인 불만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럼에도 그 절대적인 불만족으로 인해 우리 삶은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 4월8일까지, 리드위플 센터 갤러리(Reed Whipple Cultural Center Gallery),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 1-2-702-229-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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