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70

2007.01.23

‘꿩 대신 닭’ 용병, 알고 보니 ‘봉황’

대한항공 레안드로 놓친 뒤 영입한 보비가 ‘펄펄’ … 삼성·현대 격파 선봉장

  •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uni@donga.com

    입력2007-01-17 10: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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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니가 도대체 뭐 하는 놈인데?”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브라질 출신 외국인 선수 레안드로 다 실바(24)가 시즌 전 미디어데이에서 했던 말이다. 자신감 넘치면서도 일견 건방지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이었다.

    루니가 누구인가. ‘꽃미남’ 외모에 빼어난 실력을 갖춘 현대캐피탈의 숀 루니(25)는 지난 시즌의 최고 스타가 아니었던가. 오픈 공격 1위, 서브 득점 2위, 득점 4위 등 공격 전 부문에서 맹활약을 펼친 루니는 삼성화재의 10연패를 저지한 일등 공신이었다. 현대캐피탈은 통합 우승을 차지했고, 루니는 정규 시즌과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지난해 12월23일, 레안드로의 삼성화재와 루니의 현대캐피탈이 맞붙었다. 삼성화재가 루니를 꺾기 위해 데려온 레안드로는 이날 한 마디로 펄펄 날았다. 레프트 루니의 맞은편 자리에 선 라이트 레안드로는 이날 역대 프로배구 한 경기 최다득점인 49점을 쏟아부었다. 반면 루니가 올린 득점은 22점에 불과했다.

    지난해 MVP 루니는 상대적 부진



    루니(206cm)보다 큰 키(208cm)에 고무공 탄력을 자랑하는 레안드로는 이날 종회무진 코트를 누볐다. 프로배구의 ‘최고 용병’ 루니를 압도한 ‘아마존 괴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레안드로는 “맞붙어 보니 루니는 분명 좋은 선수였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통할 만큼 대단한 선수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레안드로를 뽑아 온 삼성화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반면 현대캐피탈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현대캐피탈만큼 가슴 아픈 팀이 있었으니, 바로 지난 시즌 프로 네 팀 가운데 최하위였던 대한항공이다. 일찌감치 외국인 선수 영입에 나선 대한항공이 2006년 8월 브라질 현지에 날아가 점찍은 선수가 바로 그해 브라질 슈퍼리그 득점왕 레안드로였던 것.

    대한항공은 레안드로와 계약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런데 23세 이하 선수는 해외에 진출할 수 없다는 브라질 배구협회 규정에 발목이 잡혔다. 레안드로는 1983년 12월17일생이라 약 4개월이 모자랐던 것.

    한편 뒤늦게 레안드로 영입전에 뛰어든 삼성화재는 2006~2007리그가 12월23일에 시작되니 아무 문제가 없다며 협회를 설득해 계약에 성공했다. 레안드로를 놓친 대한항공은 대신 화지오 호비손 타데오(28·등록명 보비)를 선택했다. 파워는 레안드로보다 떨어지지만 키가 208cm로 똑같은 데다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 그런데 ‘꿩 대신 닭’으로 데려온 보비가 사고(?)를 쳤다.

    지난해 12월31일 열린 현대캐피탈과의 경기에서 41득점을 올리며 대한항공의 현대캐피탈전 16연패의 사슬을 끊은 것은 전초전에 불과했다. 1월3일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보비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괴력을 발휘했다. 레안드로와의 맞대결에서 전혀 뒤지지 않았던 것. 둘은 이날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펼쳤는데 삼성화재에선 레안드로가, 대한항공에선 보비가 공격의 선봉에 섰다. 이날 레안드로는 41점, 보비는 37득점을 올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집중력 면에선 보비의 완승이었다. 화려한 액션을 자랑하는 보비는 공격에 성공할 때마다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팀 분위기를 이끌었다. 팀 동료가 실수할 때면 곁으로 다가가 격려하면서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했다.

    이날 대한항공은 세트스코어 3대 2로 승리해 2000년 이후 7년 만에 삼성화재를 꺾는 감격을 누렸다. 26연패 끝.

    3강체제 구축으로 배구팬들 열기 후끈

    경기 후 보비는 “레안드로와는 브라질리그에서 같이 뛰었는데, 우승팀에 있던 나는 여러 차례 레안드로를 이겼다”고 말했다. 새로운 ‘괴물 용병’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대한항공이 급부상하면서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양강체제로 단조로울 뻔했던 한국 프로배구는 한층 재미있어졌다.

    그렇다면 ‘최고 용병’이었던 루니는 가만히 있을까. 언제까지 밀리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캐피탈 관계자들의 말이다.

    루니는 “말싸움은 하기 싫다”면서도 “일대일 비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어차피 배구는 팀 대결이고 우리는 우승할 수 있는 팀이다”라고 말했다.

    루니의 일시적인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루니가 비시즌 동안 미국에서 비치발리볼 선수로 계속 뛰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몸 상태도 완전치 않고 인도어 배구에 대한 적응력도 떨어져 있는 것.

    김호철 현대캐피탈 감독은 “루니가 살아야 팀이 살 수 있다. 초반 몇 경기를 포기하더라도 루니에게 기술훈련보다는 체력훈련을 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대캐피탈은 이탈리아인 체력 담당 코치 안드레아 도토를 루니 전담 체력 트레이너로 1월27일 한국에 데려올 예정이다.

    LIG의 외국인 선수 프레디 윈터스(25)는 아직 에이스급 활약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토종 거포 이경수보다 많은 득점을 올리고 있다. 윈터스는 루니와 미국 페퍼다인대 동문으로 2년간 룸메이트로 지낸 인연을 갖고 있다. 키는 194cm로 다소 작은 편이지만 서전트 점프가 1m나 될 만큼 탄력이 좋아 남은 시즌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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