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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코드 비빔밥 딱 내 취향인걸!

‘거침없이 하이킥’ 인기 비결 … 친근한 캐릭터·이미지 전복 통해 현실 반영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문화 코드 비빔밥 딱 내 취향인걸!

문화 코드 비빔밥 딱 내 취향인걸!
여기, 볼수록 정이 드는 한 가족이 있다. 권위를 내세우지만 허점 많은 아버지, 기죽어 살지만 할 말은 다 하는 어머니, 실직의 설움을 간직한 40대 아들, 집안의 실권을 쥔 똑똑한 며느리, 애 딸린 20대 이혼남…. MBC 일일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등장하는 친근한 주인공들은 매일 좌충우돌하며 우리를 웃기고 울린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이 최근 ‘열혈 마니아’를 형성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14%라는 본방송 시청률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터넷 드라마 검색 순위에서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 누리꾼(네티즌)은 각 회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영상을 따로 편집해 ‘거침없이…’의 콘텐츠를 새롭게 재생산한다.

이 작품은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김병욱 PD, 송재정 작가 콤비가 내놓은 회심의 역작으로 시작부터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SBS), ‘똑바로 살아라’(SBS), ‘귀엽거나 미치거나’(SBS)를 잇따라 내놓으며 한국 시트콤의 원형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거침없이…’는 김 PD와 송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일상에서 갓 건져올린 듯한 에피소드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 한 대중문화 전문 웹진은 이들의 시트콤에 대해 “한반도 남쪽에 서식하는 어느 지구인들의 문화인류학적 보고서”라고 말한 바 있다. 웃기고도 슬픈 우리네 초상을 담은 ‘거침없이…’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캐릭터의 승리



야동순재, 괴물준하, 사육해미….

이들은 동방신기 아류 그룹의 멤버 이름이 아니다. ‘거침없이…’에 등장하는 배우들에게 누리꾼이 붙여준 애칭이다. 이름 앞에 붙은 두 자의 성은 캐릭터의 특징을 그대로 표현한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강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을 구축해 독특한 발상의 에피소드를 끌어낸 것이 ‘거침없이…’의 가장 큰 성공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권위적인 아버지상을, ‘허준’에서는 명의 유의태를 연기한 이순재는 ‘거침없이…’에서 ‘야동(야한 동영상)’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로 전락했다. 그는 극중 가족에게 가장으로서 권위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잘난 며느리에게 기가 눌려 산다. 또 컴퓨터나 휴대전화 사용에는 깜깜해 손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다. 특히 혼자 ‘야동’을 보다가 식구들에게 들켜 집을 나가는 모습은 ‘거침없이…’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송 작가는 “이순재 씨가 갖고 있는 기존 이미지를 비틀어 희극적인 부분을 극대화했다”고 말한다.

40대 실직자 이준하(정준하 분)는 괴력과 식탐의 소유자다. ‘식신(食神)’ 준하는 건강종합검진을 받기 위해 9시간 금식하는 것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괴로운 사람이다. 술에 취한 그는 먹을 것을 보면 눈이 뒤집히는 ‘괴물’이 된다.

그는 사회에서 밀려나고 아내에게 순종해야 하는 40대 남성의 설움을 대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백수생활 5년 만에 증권사에 취업한 그가 회사의 인수·합병으로 다시 실업자가 되는 에피소드는 특히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늘 “오케이!”를 외치는 당당한 며느리 박해미는 술 취하면 괴물이 되는 남편을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노련한 조련사가 맹수를 다루듯 술 취한 준하를 평정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누리꾼은 ‘사육해미’라는 별명을 달아줬다. 그는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지닌 30, 40대 여성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참한 이미지와 달리 매일 넘어지기 일쑤여서 ‘몸 개그’의 일인자로 떠오른 서민정, 공부는 잘하지만 작은 키가 콤플렉스인 고등학생 민호, 잘생긴 외모와 카리스마로 여학생에게 인기가 많지만 집안에서는 늘 구박받는 윤호…. 모두 어느 한 곳은 비어 있어서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이다.

권력을 전복하라!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가족의 실질적 권력자는 며느리 박해미다. 40대 중반의 한의사인 그는 망해가던 이순재 한의원을 부흥한 구세주이기 때문. 그는 병원 경영이나 침술에서도 시아버지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갖고 있다. 그의 절대권력은 돈과 능력에서 나온다. 시어머니 나문희는 그를 “싹퉁 바가지”라고 욕하지만, 정작 며느리의 말에는 순종한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달라진 가족 간 권력관계를 상징한다. ‘순풍산부인과’에서 가장인 오지명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면, 이제 그 주도권이 며느리에게 넘어온 것. 송 작가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니, 시어머니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시댁을 이용하더라”며 “세월이 흘러 달라진 현실을 시트콤에 반영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가장으로 군림하려 들지 않는 준하, 교사의 권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학생들에게 항상 놀림감이 되는 서민정…. ‘거침없이…’의 등장인물들은 권위의 상징이던 ‘시아버지, 아버지, 교사’의 이미지를 거침없이 전복한다.

멜로, 스릴러, 패러디 넘나들다

‘거침없이…’에서 캐릭터들의 애정전선을 따라가는 것도 커다란 재미다. 이혼했지만 여전히 사랑의 불씨가 남아 있는 이민용(최민용 분)과 신지, 그리고 민용을 짝사랑하는 서민정의 처절한 구애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몸뻬’를 입은 채 봉을 타고 내려오다 민용의 목말(무동)을 탄 상태에서 사랑을 고백한 서민정의 ‘굴욕신’은 누리꾼이 꼽은 명장면 중 하나다.

교사 서민정과 제자 윤호의 ‘러브라인’을 지지하는 팬들도 늘고 있다. 사제지간에 형성되는 야릇한 애정구도를 보며 ‘연하 꽃미남과의 로맨스’를 꿈꾸는 누나 부대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송 작가는 “4각 멜로라인이 앞으로 더욱 요동칠 예정”이라며 “등장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상처도 받지만 더욱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침없이…’는 멜로, 코믹을 넘어 스릴러, 미스터리까지 접목했다. 개성댁(이수나 분)이 실종되고, 또 살인용의자로 검거되는 플롯이 에피소드 사이마다 배치됐다. 뿐만 아니라 연출진은 드라마 ‘주몽’과 ‘대장금’, 영화 ‘괴물’ 등을 패러디하며 맥락 없이 봐도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을 숱하게 등장시켰다. 대중문화평론가 강명석 씨는 “가족 시트콤 형식을 취하면서도 10, 20대가 열광할 수 있는 문화 코드를 곳곳에 배치한 것이 ‘거침없이…’가 살아남은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주간동아 570호 (p60~61)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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