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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부수기? ‘매시업’ 예술 속으로

사전적 의미와 달리 콘텐츠 섞어 새것 창조 … 미술· 소설· 음악 분야 등에 폭넓게 확산

엉망진창 부수기? ‘매시업’ 예술 속으로

Mash up : 1. 충분히 으깨다. 2. 엉망진창으로 부수다.

영한사전에서 ‘매시업(mash up)’이란 부수고 으깨는 일을 의미한다.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행위와는 거리가 먼 단어다. 그러나 최근 젊은 세대의 문화를 ‘매시업’보다 더 적절하게 설명할 만한 개념이 있을까 싶다.

인터넷에서는 누구나 ‘매시업’으로 여러 웹사이트에서 필요한 서비스와 콘텐츠만 모아 자신만의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지도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와 범죄율을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섞어서 ‘우리 동네의 상세한 범죄사항’을 보여주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올해의 화두가 된 ‘웹투족’(웹2.0 시대를 구현하는 인터넷 사용자들. 이들은 데이터의 가공, 활용, 변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에게 ‘매시업’이란 일상이다. ‘매시업’이 콘텐츠를 완전히 새롭고 창조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를 새로운 ‘철학’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아이디어로서 ‘매시업’은 인터넷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중이다. 사전적인 의미를 확장한다면 ‘매시업’이란 두 가지 이상의 콘텐츠를 뒤죽박죽 으깨고 섞는 것이다. 그러면 원 재료들은 화학적 변화를 통해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음식-콘텐츠가 탄생한다.



아주 거칠게 보면, ‘개그콘서트’에서 여자 연예인과 못생긴 개그맨의 얼굴을 ‘제니퍼 맘대로’ 섞는 것도 일종의 ‘매시업’이다.

엉망진창 부수기? ‘매시업’     예술 속으로

1. 이지현, 'Parthenon+Pic_jenga'(2006).
2. 정연두, '로케이션'.
3. 미국에서 열린 '매시업' 비디오페스티벌 포스터.
4. 월드컵 기간 중 독일에서 열린 패션 프로젝트. 축구 유니폼의 매시업.
6. 정상현, 'YAHOO! 자연과 도시'(2005).

명소와 일상, 자연과 도시 뒤섞어

최근 ‘매시업’ 아이디어가 가장 흥미롭게 나타난 예로 젊은 작가 이지현의 개인전 ‘매시업’을 들 수 있다. 이지현 씨는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이나 파르테논 신전, 뉴욕 현대미술관 등 유명한 장소와 자신의 화장대나 옷장 등 일상적인 장면을 교묘하게 섞는 회화를 보여준다. 캔버스, 물감과 붓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날로그적이지만, 웹을 뒤죽박죽 섞는 일에 익숙한 ‘윈도 세대’의 회화인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적 유적에 자신의 줄무늬 스커트나 액세서리를 섞어놓은 이 씨의 ‘매시업’은 마치 수많은 링크로 이어진 웹사이트 같다.

“‘매시업’을 먼저 생각한 건 아니고, 내 머릿속에 동시에 떠 있는 공간들을 그린 거죠. 한참 뒤 웹 서핑을 하다가 ‘매시업’이란 개념을 알게 됐고, 바로 내가 하는 일이 ‘매시업’임을 깨달았어요. 자주 여행을 떠나기 때문에 제 방도 ‘매시업’이에요. 전 그 상태가 익숙하고 편안해요. 물건도 빨리 찾고.”

이 씨는 콜로세움이나 뉴욕 현대미술관을 직접 방문했을 때, 문명이나 현대미술의 성소라는 거창한 의미를 느낀 것이 아니라 먼지 나는 돌조각, 패키지 관광지를 봤을 뿐이라고 했다. 이 씨는 화면에 유적과 같은 크기로 여동생과 탑 쌓기 보드게임을 하는 자신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이 씨는 현재 서울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천안과 베이징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소설 속에선 축구와 부부 갈등 교차

2005년 말 ‘또 다른 공간’전을 연 정상현의 작품에서도 현실과 환상, 웹과 현실의 공간은 섞이고 서로 침투한다. 그의 ‘YAHOO! 자연과 도시’는 ‘야후’에서 작가가 ‘자연’과 ‘도시’로 검색해 나온 이미지를 프린트한 뒤 옷걸이에 건 설치 오브제다. 마치 인터넷의 윈도를 클릭하면 새 윈도(공간)가 나타나고 또 다른 윈도가 뜨는 것처럼 층층이 쌓인 공간들을 아날로그로 풀어냈다. 정 작가는 “내가 접하는 공간들은 주변 장소들이 아니라 웹 서핑을 통해 도달하는 공간들이다. 디지털 기계 ‘눈’이 본 이런 세계를 나는 아날로그로 재구성한다”고 말한다.

국제화랑에서 전시 중인 정연두의 사진은 사막에 나이트클럽의 사이키 조명을 합성하는 식으로 두 개의 현실을 섞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찢어 붙인’ 두 개의 세계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아주 완벽하게 봉합돼 있다. 마치 어딘가에 그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패션 프로젝트 ‘Fanshop of the globalization’도 흥미진진한 ‘매시업’이다. 디자인전문 웹매거진 ‘정글’의 김민선 기자는 이 프로젝트가 “세계를 하나로 연결한 월드컵을 통해 세계화를 조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유니폼을 한곳에 모아 각각 5조각으로 잘라내고 이것을 다섯 명(팀)의 패션 디자이너에게 보내서 다른 부분들과 뒤섞어 새로운 옷으로 완성한 뒤 다시 모아 순회전시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검은색 줄무늬 심판복이 커리어 우먼의 원피스로 바뀌고, 각국의 독특한 봉제법을 더한 ‘매시업’으로 현대와 전통, 글로벌과 지역성을 강조한다.

‘매시업’은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도 유행 중이다. 축구 다큐멘터리와 부부 간의 사적인 갈등을 교차시킨 ‘아내가 결혼했다’가 그렇고, 낯선 스타일의 김중혁 소설집 ‘펭귄뉴스’가 그렇다. 김 씨는 자신이 ‘레고 블록’으로 이뤄져 있으며 블록의 이름은 ‘이하 절대 무순’으로 도스토예프스키, 미국 프로야구, 휴렛패커드, 구글과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이라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구글, 휴렛패커드가 ‘절대 무순’의 가치로 놓일 수 있는 곳은 웹 사이트뿐이다. 이 모든 것들을 ‘매시업’한 것이 김 작가이고, 소설 ‘펭귄뉴스’다.

‘매시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건 인터넷이 아니라 음악일 수도 있다. 이미 수년 전 ‘디제이 리셋’이란 디제이는 ‘데브라’란 곡에 뮤지션 제이Z의 목소리를 더해 새로운 곡을 만들어 인기를 얻었다.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와 그룹 U2의 곡을 ‘매시업’한 ‘I Wanna Dance with Some Bono’(휘트니 휴스톤의 곡명과 U2멤버 이름을 ‘매시업’한 재치만점 제목)나 재즈 스탠더드인 ‘What a Wonderful World’와 ‘Over the Rainbow’ 를 섞어 새로운 노래로 부른 ‘이스라엘 까마 카위 올레’의 ‘매시업’은 꽤 유명하다. 사실 ‘매시업’이 본능이 된 ‘클러버’들과 인터넷 ‘블로거’들은 아무 때나, 아무 곳에나 머물다 아무 때나, 아무 곳으로나 떠난다는 점에서도 많이 닮았다.

‘매시업’을 ‘철학’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어떤 내적 성찰도 갖지 않겠다는 태도다. 기승전결이 없고, 더 가치 있거나 덜 가치 있는 것도 없다. 마음대로 검색한 웹 페이지들, 표면에 떠도는 것들, 늘 주변에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상품들을 뒤죽박죽 섞는 것이다. 하지현 박사(정신과)의 설명이다.

“웹 세대 문화의 특징은 허공을 떠도는 것들을 이리저리 부딪혀보면서 발생하는 우연한 효과에 열광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는 자폐적이다. 어떤 자폐아들은 책에 몰두하는데, 사람들은 책 내용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책을 넘기는 소리와 촉감을 좋아한다. 책을 ‘보는’ 데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니까.”

‘매시업’을 무조건 경박하다고 비난하거나 디지털이 곧 아킬레스건인 탓에 일단 찬사부터 바치고 보는 건, 태생적으로 디지털 시대와 불화(不和)하면서 이를 인정하기 싫은 기성세대의 기성세대다운 반응이다. 그냥 ‘쉬크’(chic)한 표면을 즐기면 될 일이다. ‘매시드 포테이토’(으깬 감자)는 맛있다. 특히 몸을 움직이기도 귀찮고, 소화력도 좋지 않은 사람에겐 말이다. 잠시 그 속의 나트륨과 콜레스테롤, 방부제만 잊으면 그만이다.



주간동아 543호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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