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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를 구걸했다니” 在日 민단 부글부글

총련과 ‘남북 톱 회담’ 밀약 추진 파문 … 하병옥 단장 사상 첫 불명예 퇴진 위기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화해를 구걸했다니” 在日 민단 부글부글

“화해를 구걸했다니” 在日 민단 부글부글

5월17일 민단 하병옥 단장(왼쪽)과 총련 서만술 의장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50만 순수 한국인 조직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엄청난 파열음을 내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2월24일 선거에서 제45대 단장에 당선된 하병옥(71) 씨를 불신임하려는 강력한 움직임 때문이다. 불신임은 탄핵과 동의어이므로 불신임이 가결되면 하 씨는 민단 사상 최초로 불명예 퇴진하는 단장이 된다.

올해 10월3일 민단은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어느 해보다 뜻 깊은 시기에 민단이 감당하기 힘든 내분을 겪게 된 이유는 하 단장이 추진했던 ‘일본판 남북 톱(top) 회담’에 있다. 하 단장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17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를 방문해 서만술 총련 의장과 톱 회담을 갖고 “민단과 총련은 6·15 민족통일대축전에 일본지역위원회 성원으로 참가한다” 등 6개 항을 담은 ‘5·17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6·15 행사 참여 독단적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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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단 하 단장이 곽동의 씨 측에 보낸 ‘6·15 민족공동행사 참여제의서’.

반세기 넘게 반목을 거듭해온 두 단체 수장의 만남은 신선했으므로 한국과 일본 언론은 이를 큼지막하게 소개했다. 그런데 톱 회담 직후 ‘민단이 일본 내의 탈북자 지원 센터 운영을 중단하기로 총련 측에 약속했다’ ‘민단이 총련에 톱 회담을 구걸했다’ 등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민단이 총련에 톱 회담을 구걸했다’는 것은 한국에서 발행되는 인터넷 신문인 ‘통일뉴스’ 4월27일자에 실린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과거의 한민통) 상임의장이자 6·15 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6·15 해외위) 공동위원장인 곽동의(76) 씨의 인터뷰를 근거로 한 것(이 기사는 http://www.tongilnews.com/article.asp?menuid=109000·articleid=64617에서 볼 수 있다).



이 인터뷰에서 곽 씨는 4월24일 하 단장이 “6·15 남북공동선언실천 행사를 추진하고 계신 일본지역위원회와 사무국에 주체적으로 적극 참여하고자 한다. 재일동포를 대표하는 민단과 한통련, 조총련이 평등하게 실행위원회에 참여 협력함으로써 행사를 성과 있게 진행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우리 입장을 이해해주시고 선처해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행사 참여 제의서를 보냈다며 이를 공개했다.

이를 확인한 민단 회원들은 하 단장이 6·15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한 것은 민단 전체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독단적인 결정이며 “민단 대표로서 한통련 세력에‘선처’라는 표현을 쓴 것은 굴욕적 행동”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하 단장이 구성한 민단 새 집행부에는 한통련 출신 인사가 많이 진출해 있었으므로 이러한 문제 제기는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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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방한한

민단 주류세력과 한통련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곽 씨 사이에는 뿌리 깊은 원한이 있다. 원래 민단 회원이었던 곽 씨는 한국에서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난 뒤인 1973년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을 만들어 한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차인 그해 8월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일본에 있던 김대중 씨를 한국으로 납치해가자, 곽 씨는 박정희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를 더욱 높였다.

당시 민단은 한국 정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한민통은 그런 민단 지도부에 대해서도 공격을 퍼부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조직활동을 하는 재일 한국인 중에는 야쿠자와 관계된 사람도 적지 않다. 따라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영화에서나 볼 법한 폭력 대결을 벌이는 경우도 있는데, 당시 한민통과 민단이 이러한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을 계기로 민단은 한민통을 제명했다. 제명되긴 했지만 한민통 소속원은 민단에서 갈려 나왔으므로 모두 ‘한국’ 국적자다. 이후 한민통은 ‘조선’ 국적자로 구성된 총련과 접촉을 강화했는데, 1978년 한국 대법원은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해 이 단체 소속원의 한국 방문을 금지시켰다.

1989년 한민통은 한통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재외민주인사의 고국 방문이 허용됨으로써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이때 곽 씨는 과로로 인한 입원을 이유로 오지 않았고 이듬해 10월 방한했다. 그 후 한통련은 활동 폭을 넓혀나가다가 지난해 전성기를 맞았다.

6·15 남북정상회담 5주년을 맞은 지난해 여름, 남북은 ‘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의 6·15 공동선언 제4항을 실천한다는 명목으로 평양에서 6·15 민족통일대축전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남측과 북측, 해외측 대표들이 참여했다. 해외측 대표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과 일본, 중국 동포다.

일본 동포 중 최대 세력은 민단계다. 그런데 주최 측은 교묘한 술수를 써 조선 국적자 대표로는 총련을, 한국 국적자 대표로는 한통련을 선발하고, 재일한국인 전체 대표자로 곽 씨를 뽑았다. 곽 씨는 평양 행사에서 해외측 대표로 공동위원장을 맡는 영예를 누렸다. 재외한국인 단체 중 가장 크다고 자부해온 민단은 행사에 참여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건만, 노무현 정부와 주일 한국대사관은 이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화해를 구걸했다니” 在日 민단 부글부글

민단 사태에 대해 전혀 다른 보도를

그리고 해가 바뀌어 실시된 단장 선거에서 하 씨가 당선됐다. 4월 초 하 단장은 ‘요로(要路) 방문’이라는 이름으로 7박8일간 서울에 들어와 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실력자 여럿을 만나고 돌아갔다(노 대통령과는 4월11일 만났다). 그리고 4월24일 측근을 곽 씨 사무실로 보내 ‘6·15 민족통일대축전 행사에 민단을 참여시켜 달라’는 제안서를 전달한 것이다.

4월27일자 ‘통일뉴스’에 실린 곽 씨의 인터뷰는 일본 내에서 읽은 사람이 적었던 것 같다. 기사가 나온 직후 하 단장에 대해 큰 반발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5·17 톱 회담이 성사되고 ‘민단과 총련이 6·15 민족통일대축전에 참여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하 단장을 대신해 곽 씨 측에게 제안서를 전달한 사람들은 과거 한통련에 있다가 민단으로 전향해온 사람이어서 의심의 정도는 더욱 컸다.

내부 반발 견디다 못해 “없었던 일로”

5·17 톱 회담 바로 다음 날, 일본 야마나시(山梨)현에서 ‘민단 관동(關東)지구협의회’ 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서 부글거리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지에서 참가한 단원들이 “톱 회담 밀약에 실망해 민단을 탈퇴하겠다는 단원들의 전화가 폭증하고 있다”는 등의 목소리가 나온 것.

여론이 갑자기 악화하자 하 단장은 민단 기관지인 ‘민단신문’을 통해 진화에 나섰다. ‘민단이 재일 탈북자에 대한 지원을 중단키로 했다’는 의혹에 대해 ‘민단신문’은 “탈북자 지원 민단센터는 (중략) 더욱 유효한 방책을 요구하면서 일단 보류된 상태로 담당국(局)이 예의 검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은 하 단장 측이 재일 탈북자에 대한 지원 중단을 약속해줬음을 간접 시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톱 회담 닷새 후인 5월22일, 악화하는 여론을 견디다 못한 하 단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단장에 당선된 직후(2월25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련과 화합하겠다’고 밝히고, 4월 (총련 측에) 방문 의향을 전하자 5월14일 (총련 측에서) 답변이 와서 5월15일 서면으로 톱 회담에 합의했다. 그리고 17일 (총련을 방문해) 톱 회담을 열었다”라고 밝혔다. 이 해명은 그간 제의된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해준 것이었으므로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이 무렵 남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시범운행에 합의했다가 북측이 갑작스레 거부(5월24일)하는 사건을 겪었다. 경의선 시범운행이 합의됐을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차를 타고 평양에 갈 것’이라는 희망적인 논의가 쏟아졌으나, 북한의 갑작스런 거부로 분위기가 썰렁해진 것. 그리고 5·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했다. 여기에 6월 초 북한이 대포동 2호 발사 준비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오자 북한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하 단장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은 셈이 됐다.

견디다 못한 하 단장은 6월5일 총련 서만술 의장에게 “6·15 공동행사와 관련하여 시간적 여유가 없고, 제반 사정으로 인해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단념할 수밖에 없게 된 점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담은 6·15 행사 불참 통보 공개 제의서를 보내고, 민단원을 상대로는 ‘화해와 공생의 길을 목표로’라는 제목의 해명성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한통련과 연대 의혹을 받아온 강모 기획실장을 해임했다.

일본에는 일본어로 발행되는 두 종류의 한국계 신문이 있다. 하나는 민단 기관지 ‘민단신문’이고, 다른 하나는 강창만 씨가 발행하는 ‘통일일보’다. ‘민단신문’은 하 단장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통일일보’는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에 따르면 총련은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민단과의 톱 회담에 임했다”고 폭로하는 등 하 단장을 난처하게 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렇게 되자 오사카(大阪), 아이치(愛知), 후쿠오카(福岡) 등에 있는 민단 지방본부들이 연속해서 하 단장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하 단장이 지방 민단장과 대립한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6월12일 열린 민단전국단장회의가 꼽힌다. 이 회의에서 북한 선박인 만경봉호가 입항하는 니가타(新潟)현 이종해 단장 등이 하 단장과 벌인 논전이 화제가 됐다.

하병옥 “이후 지방이 지금 이상으로 민단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면 감찰기관을 동원해 처벌할 수도 있다.”

양동일 아이치 단장 “그렇게 강권적인 발언을 해도 되는가?”

이종해 니가타 단장 “하병옥 단장이 지방단장 처분을 말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한다면(처분을 한다면) 내 목을 치겠다는 것인가?”

하병옥 “니가타 단장의 목은 몇 개인가?”

이종해 “(책상을 쾅 치면서) 한 개다!”

2월24일 단장 선거에서 ‘개혁 민단’을 기치로 내걸고 도전했던 하 단장은 경쟁자인 정진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이기고 당선됐다. 이때 그를 지지했던 세력이 상공인들과 통일교 세력, 부인회 등이었다. 그런데 하 단장이 한통련, 총련과 비밀리에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자 상공인들과 통일교 측이 등을 돌리고, 부인회도 지지를 철회했다.

민단은 중요한 일은 중앙위원회를 열어 결정한다. 중앙위원회 위원은 600여 명으로 구성되는데, 절반 이상이 회의 소집을 요구하면 임시중앙위를 열 수 있다. 6월24일 민단은 하 단장 반대세력의 요구로 임시 중앙위원회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하 단장은 한민통 출신 측근들의 퇴임을 약속했으나 자신은 퇴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단장 선출은 3년마다 여는 중앙대회에서 결정한다. 이렇게 되자 하 단장 반대세력은 하 단장 불신임을 묻는 임시중앙대회를 소집하자며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하 단장으로서는 심각한 퇴진 압력에 직면하게 된 것.

일본 정부 입김도 작용한 듯

민단원들의 반발에는 일본 정부의 입김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단원들은 한국 국적자이지만 일본에서 생활하므로 일본 법체계 내에서 살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민단을 공익기관으로 인정해 민단 소유 건물에 대해 면세 혜택을 제공해왔다. 그러나 5·17 톱 회담이 열린 후 ‘일본인 납치에 가담한 총련과 가깝게 지내는 민단은 공익기관으로 볼 수 없으므로 면세 혜택을 없앨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은근히 압박을 가했다.

민단 핵심 요원 중에는 파친코 사업자가 많은데, 그중에는 탈세를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일본 정부는 파친코 업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이러한 압력 때문에 하 단장을 지지했던 상공인들은 재빨리 반대쪽으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 한 소식통은 “하 단장이 추진한 톱 회담은 성사되기도 전 곽동의 씨에 의해 밀약이 드러남으로써 하 단장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하 단장은 ‘민단호(號)’의 선장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창립 60주년의 경사스러운 해에 거센 내분에 휩싸인 민단을 향해 불어오는 안팎의 폭풍은 거세기만 하다.



주간동아 543호 (p12~14)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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