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

우향 앞으로 가는 GT 킹이냐 킹 메이커냐

열린우리당 김근태 號 악조건 속 출항 … ‘위기와 기회’ 어느 것이 먼저 다가올까

  • 조인직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cij1999@donga.com

    입력2006-06-21 14:5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향 앞으로 가는 GT 킹이냐 킹 메이커냐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일주일 뒤, 열린우리당 비상집행체제는 신임 당의장으로 ‘김근태’를 택했다. 취임 직후 김 의장은 전략적으로 우향우 노선을 선보였다. 그는 6·10 민주항쟁 기념식장에서 “민주화운동 경력을 더 이상 훈장으로 삼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11일 취임 기자회견에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복지 혜택을 늘리려면 경제성장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절대 기조는 흔들 수 없다’는 청와대의 사인을 접고 부동산 정책에서도 보완을 시사했다. 복지·통일 정책 등도 재원 마련이 먼저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모든 것을 변화시켜 국민의 평가를 받겠다는 김 의장의 의지는 굳건해 보였다.

    그러나 변화를 지켜보는 당내 시각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일부 강경 개혁파들은 이미 그를 ‘변절한’ 신자유주의자로 몰아붙였다. 김 의장은 이런 반대에도 우리당의 색깔을 ‘중도 시장주의’로 바꾸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김근태 호’는 과연 우리당을 둘러싸고 있는 난제를 뚫고 순항할 수 있을까.

    지방선거 패배 후 우리당의 비상집행위원회가 꾸려지기 전인 6월7일, 우리당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국회의원과 중앙위원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김근태가 과연 대안이냐’는 논란이 벌어졌다.

    ‘경제 살리기’ 박정희 벤치마킹

    부동산·세제 정책을 비롯해 과거사법 처리 강행 등 ‘어설픈 개혁 정책’이 지방선거 참패에 결정적 기여를 했는데, 개혁의 상징과도 같은 김 의원을 당의장으로 다시 앉힐 수 있느냐는 게 이유였다. 또 그가 정동영 전 의장 다음가는 당시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동반책임론을 면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장복심 의원은 “김근태 의원의 좌파 이미지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런 논란은 김근태 호의 출항과 더불어 자취를 감췄다.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 한계뿐만 아니라 내부의 이념논쟁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김 의장도 어지간한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서민과 경제에 당력을 집중시켰다. 김 의장은 첫 작품으로 의장 직속 기구로 ‘서민경제회복추진본부’를 만들었다. 서민경제본부의 모델은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수출 목표 달성을 독려했던 청와대 수출진흥회의. ‘경제 살리기’라는 목표를 위해 이른바 민주세력의 대척점이었던 박 전 대통령을 과감하게 벤치마킹한 것이다.

    김 의장은 2004년에만 해도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를 주장했다. 대통령에게 “계급장을 떼고 토론하자”고 요구할 정도로 공공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경제단체 연설 때는 “성장하지 못하면 분배를 개선할 수 없다. 그러나 성장한다고 해서 분배가 저절로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며 성장을 통한 양극화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김 의장의 성장논리는 구호로 끝나지 않고 대안을 모색한다.

    김근태 호의 첫 번째 정책은 ‘기업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확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연 5% 이상 성장’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우향 앞으로 가는 GT 킹이냐 킹 메이커냐

    노무현 대통령이 4월19일 수유리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참배한 후 김근태 의원(현 당의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이계안 의장 비서실장은 “경제가 1% 성장할 때마다 5만~6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해마다 30만 명의 취업 희망자가 나오므로, 역산하면 최소한 매년 5%의 성장은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고성장이 계속 이어져야 서민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의장은 요즘 참모그룹을 통해 경제강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란 책을 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도 김 의장이 정책 조언을 청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카드 회장을 지낸 이계안 비서실장 역시 실물경제에선 여당 내에서 첫손에 꼽히는 전문가로, 김 의장을 밀착보좌하고 있다.

    김 의장의 이런 급격한 우회전은 당내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김 의장이 어설픈 신자유주의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박용진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김 의장의 신자유주의자 변신 선언은 민심을 거슬러 가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고, 당내 이목희 의원도 “정책 라인에 신자유주의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반대 입장도 있다. 우상호 우리당 대변인은 “(김 의장이) 신자유주의 쪽으로 기운 것처럼 비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금은 비상 깜박이를 켜고 직진하고 있고, 속도도 반 발짝 앞서는 정도”라고 했다.

    이 같은 견제에도 부동산·세제 정책 손질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김 의장 측의 관측이다. 송영길 정책위부의장이 6월14일 밝혔듯, “선의의 1가구 1주택자에게 거래세와 양도세를 인하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게 김 의장의 속내다. ‘기조 변화는 없다’고 누차 강조해온 청와대와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다.

    경제 및 민생 문제 이상으로 김 의장 측이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향후 다가올 정계개편 문제. 특히 이 지각변동 속에 김 의장의 역할과 가능성을 어느 선까지 확대할 것인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 역할에 따라 대선정국에서의 역할과 위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선구도는 고건 전 총리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등 ‘빅3’가 일합을 겨루는 모양새다. 그 가운데 고 전 총리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진다. 지지율이 앞서는 고 전 총리는 정계개편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고 전 총리의 주도로 희망국민연대(가칭)가 7월 발족될 예정이다. 고 전 총리가 중심이 돼 우리당과 민주당의 중도 세력을 흡수하는 시나리오도 갈수록 힘을 얻는다. 우리당 내 일부 의원들은 고 전 총리의 비공식 대변인을 자임하고 나설 정도여서, 판만 벌어지면 줄서기는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아직까진 ‘빅3’ 경쟁 체제

    김 의장 측은 이런 흐름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다른 분석을 내놓는다. 고 전 총리 중심의 정계개편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김 의장이 ‘킹메이커’ 역할로 보직 변경을 하고 나설 경우를 가정하면 상황은 달라진다는 입장이다. ‘GT(김근태 의장)식 개편’으로 무게중심이 기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김 의장이 ‘민주당을 버린 주범’은 아니다. 더욱이 김 의장은 오래전부터 통합론을 주창해왔다. 이 때문에 김근태 의장의 ‘콜’에는 민주당도 자연스럽게 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당내에서는 김 의장이 각종 시장주의 경제정책을 통해 개인 브랜드를 높인 뒤, 정기국회를 마무리하고 연말쯤 정계개편 시동을 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요컨대 김 의장이 ‘킹메이커’로 포지셔닝을 확립할 경우 통합과 경선체제까지 김 의장을 대신할 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의미다.

    물론 김 의장의 지지율 상승 여부에 따라 판은 다소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6월4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김근태 의장의 지지도는 1.1%에 불과했으나 중앙일보 15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2.9%까지 올랐다. 같은 조사에서 정동영 전 의장은 2.6%에서 3.6%로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만 해도 ‘반올림하면 0%’라던 김 의장의 지지율이 3%대로 치달은 것은 그의 ‘시장중시형 민생제일주의’가 메아리를 받았다는 결론이다.

    그가 안정형 국회 운영을 주도하면서 연말까지 5~10%대 지지율을 유지할 경우 다시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9회 말 구원투수로 발탁된 김 의장 앞에는 위기와 기회의 바다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김 의장의 승부수는 과연 통할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