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1

2006.06.27

토고가 佛 끄지 말란 법 있나

우승 후보들 첫 경기 이기고 1R 순항 … 유럽 빅6 “이번만은 브라질 제압” 남다른 각오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입력2006-06-21 14: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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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년 동안 17차례 치러진 역대 월드컵에서 이변은 대부분 초반에 일어났다. 축구 강국들이 첫 경기를 망쳤기 때문이다. 1982년 스페인월드컵 개막전의 아르헨티나(벨기에에 0대 1 패), 90년 이탈리아월드컵 개막전의 아르헨티나(카메룬에 0대 1 패),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전의 프랑스(세네갈에 0대 1 패) 잉글랜드(스웨덴과 1대 1 무승부) 포르투갈(미국에 2대 3 패)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강팀이 첫 경기에서 고전하는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우승 후보들이 팀 컨디션을 16강 이후에 최고조에 이르도록 조절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상대팀은 패해도 본전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하면서 자신이 갖고 있는 실력을 모두 발휘해 예상보다 좋은 결과를 낳곤 했다.

    독일월드컵에선 우승 후보국들이 이전 대회처럼 첫 경기에서 최악의 상황을 맞지는 않았다. 유럽 강호들의 공통 목표는 유럽 땅에서만큼은 브라질을 제치고 우승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20세기에 브라질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개최국 독일을 비롯해 잉글랜드, 이탈리아, 스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 ‘빅6’는 브라질과의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을 꿈꾸고 있다.

    역대 월드컵 대부분 초반에 이변 벌어져

    한일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한 독일은 코스타리카와의 개막전에서 4대 2로 이겼지만 코스타리카의 영웅 파울로 완초페에게 2골을 허용하는 등 경기 내용 측면에서는 미흡한 점이 적지 않았다. 독일은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때처럼 득점을 한 뒤 5~6분 안에 곧바로 실점하는 버릇을 되풀이했다.



    독일은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1대 0으로 이겨 사실상 16강 진출을 결정지었지만, 앞으로도 발 빠른 공격수를 만나면 실점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독일의 우승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력은 떨어지는 것 같은데도 월드컵에서 ‘꾸역꾸역’ 승리를 거듭해온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초 브라질과 함께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된 잉글랜드는 파라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1대 0으로 이겼지만 부담감 때문인지 플레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각각 출전한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의 조합은 조금 어색했다. 소속팀(램파드는 첼시, 제라드는 리버풀)에서 같은 포지션을 맡고 있는 두 슈퍼스타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의 고민이기도 하다. 트리니다드토바고를 물리치고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었지만, 부상에서 회복한 웨인 루니가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잉글랜드의 우승은 어렵다는 섣부른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에릭손 감독은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잉글랜드가 우승하기 위해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웨덴을 제압하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르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에릭손의 조국이면서 1968년 5월 이후 37년간 11차례 대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스웨덴을 제압한다면 잉글랜드는 상승세를 탈 것이다.

    독일월드컵을 마카로니웨스턴으로 마감짓겠다고 나선 ‘아주리군단’ 이탈리아는 E조 첫 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마이클 에시엔이 버틴 아프리카 최강 가나를 2대 0으로 물리쳤다. 가나는 6월6일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한국을 3대 1로 무너뜨렸으며, 자메이카를 4대 1로 제압하는 등 상승세를 타던 팀이었는데, 이탈리아는 경기 내용 면에서도 가나에 완승을 거뒀다.

    이탈리아는 물샐틈없는 수비에 빠른 원터치 패스를 통한 공격력으로 만만치 않은 전력을 과시했다. 축구 전술에 관한 한 세계 최고로 꼽히는 마르첼로 리피가 사령탑을 맡고 있는 만큼 이번 대회에선 수비 위주 축구에서 벗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탈리아가 의외의 우승을 일궈냈던 1982년 스페인월드컵을 재현할 가능성은 지난 대회보다 높아 보인다.

    늘 우승 후보로 꼽히면서도 단 한 번도 월드컵 우승컵에 키스하지 못했던 네덜란드와 스페인. 그런 이유 때문에 이들 국가의 독일월드컵 도전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네덜란드는 초호화 스타군단이면서도 매번 결정적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비운의 강호다. 아르옌 로번의 원맨쇼로 세르비아몬테네그로를 제압했지만, 첫 경기는 네덜란드인들이 만족스러워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들이 42세의 젊은 감독에게 거는 기대는 1974년과 78년에 아깝게 놓친 월드컵 우승의 꿈을 이뤄달라는 것이다.

    젊은 피(다비드 비야, 페르난도 토레스,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를 대거 수혈한 스페인의 화력은 첫 경기에서만큼은 우승 후보 1순위였다. 특히 사비알론소, 샤비 등이 보여준 절정의 기량은 “스페인이 이제야 이름값을 한다. 무서운 팀으로 변모했다”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스페인은 월드컵에 첫 출전한 우크라이나에 4대 0 대승을 거뒀는데, 우크라이나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공격수 안드리 셰ㅂ첸코는 후방으로부터 볼 공급을 전혀 받지 못한 데다 스페인의 강력한 수비진에 막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브라질과 자웅을 겨룰 것으로 예상됐던 잉글랜드가 대회 초반 당초 기대보다는 저조한 활약을 보인 반면,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브라질의 아성에 도전할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것이다. 이번에는 과연 ‘에스파냐의 힘찬 비상’이 이뤄질 수 있을까?

    유럽의 ‘빅6’가 브라질을 넘어설 수 없다면? 주목해서 봐야 할 팀은 체코다.

    체코는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창을 갖고 있다. 유로2004에서 우승을 거둬야 마땅했던 팀도 그리스가 아니라 체코였다. 체코는 스리백과 포백을 넘나드는 전술적인 유연성과 순식간에 골을 터뜨리는 폭발력, 좌우 측면과 중앙의 부드러운 소통 등 화려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조별리그 끝날 때까지는 안심하기 일러

    한편 ‘우승 후보들의 공적’ 브라질은 크로아티아와의 첫 경기에선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1대 0으로 승리했지만 경기를 압도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각국의 언론은 브라질의 졸전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팀 전체 컨디션을 16강 이후로 맞춰놓고 있어, 경기를 거듭할수록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미의 영원한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는 거스 히딩크 호주 감독이 브라질과 함께 우승 후보로 지목한 팀이다. 아르헨티나는 죽음의 조인 C조 첫 경기에서 아프리카 최강을 자부하는 코트디부아르를 2대 1로 제압함으로써 우승 후보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 후보국들은 하나같이 첫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러나 조별리그가 마무리되는 6월24일까지 비운의 우승 후보가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4년 전 아르헨티나의 킬러 바티스투타의 눈물을 기억하는가. 당시 누구도 아르헨티나가 16강 진출에 실패할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G조의 프랑스는 6월24일 새벽 4시 토고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웃을 수 있을까? 토고가 프랑스를 잡지 못할 이유도 없다. 축구 공은 둥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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