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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재발견|⑤ 방갈루루

IT 두뇌 총집합 ‘인도의 실리콘밸리’

소프트웨어 분야 등 1600여개 업체 운집 … 다국적기업 빌딩 즐비, 영어 일상화

  • 글·사진=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IT 두뇌 총집합 ‘인도의 실리콘밸리’

IT 두뇌 총집합 ‘인도의 실리콘밸리’

토요일 이른 아침 방갈루루 중심가인 마하트마 간디 거리엔 차량 통행이 뜸하다. 사무실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인도가 세계인의 화두로 등장했다. 중국과 함께 떠오르는 샛별이라며, ‘친디아’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경제전문가들이 2035년엔 ‘제3의 축’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올해 1월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도 경제를 주제로 다루기까지 했다. 인도는 이 포럼에 30여 명의 정치·경제·문화계 인사들을 파견해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경제를 가진 민주주의국가”라고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 과연 인도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또 연평균 8% 내외의 성장을 지속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 기착지 뭄바이에서 인도중앙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를 만나 그 이유부터 물어보았다. 그는 25세 이하 인구가 전체(11억6000만 명)의 54%를 차지한다며 인도가 젊다는 점을 가장 먼저 들었다(평균연령은 24.7세). 젊은이가 많다 보니 한 해 대학 졸업자 수가 360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이공계 출신만 45만 명에 달하고 회계학 전공자는 7만 명, 경영대학원에서도 8만9000명의 MBA를 배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이공계 교육이라면 인도공과대학(IIT)을 빼놓을 수 없다. 설립 이후 지금까지 입시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다음 날 IIT의 7개 캠퍼스 가운데 하나인 뭄바이 캠퍼스를 찾았다. 물이 맑고 주위 풍광이 아름다운 포와이 호수를 끼고 있는 그곳에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은 “재학 중에도 경쟁은 치열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9명이 한 조가 돼 진행되는 교수와의 토론은 밤을 새워 준비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경쟁이 결국 최고의 경쟁력을 낳은 셈이다.

IT 두뇌 총집합 ‘인도의 실리콘밸리’

방갈루루 시내에 있는 HP(휴렛패커드) 사옥 입구. 정원처럼 꾸며놓았다.

자다브 박사는 인도인은 개념화하는 능력이 뛰어나 소프트웨어 산업에 적합하다는 점을 두 번째 이유로 꼽았다. 그는 인도에서 종교가 발달한 것 역시 그런 능력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개념화의 장점은 상상력과 지구력만 있으면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인도 경제성장의 힘은 경제 외적 요소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21세기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이런 것이라면 인도의 미래는 밝다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는 또 중국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오퍼레이션 능력이 뛰어나 제조업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인도와 비교된다고 했다.

뭄바이 캠퍼스에서 만난 학생들은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방갈루루(옛 방갈로르)에 몰려 있는 소프트웨어 회사에 취업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고 했다. 콜카타 여행을 마치자마자 이곳으로 날아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인도에는 방갈루루 외에도 하이데라바드와 첸나이, 퓨네 등의 IT 도시가 있다). 공항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다국적기업의 빌딩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공사 중인 곳도 많아 교통체증이 심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긴 하나 북부 도시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고, 거리의 녹색 가로수가 시원함을 선사했다.



인도 대학생들 방갈루루의 소프트웨어 회사 취업 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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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는 이제 인도 젊은이들에게도 필수품이 됐다(왼쪽 사진). 공원에 자리잡은 빅토리아 양식의 방갈루루 박물관 정면.

가장 번화하다는, 곧게 뻗은 2.5km의 마하트마 간디 거리에선 벤츠 등 최고급 승용차들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그렇다고 릭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는 여느 도시에 비해 훨씬 적었다. 다국적기업 빌딩들이 줄을 이은 거리에는 고급 쇼핑센터와 레스토랑, 호텔도 들어서 있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장인들은 인도어가 아닌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순간, 이곳이 과연 인도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인도 남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방갈루루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900m 지점의 고원지대라 기후가 쾌적해 IT 산업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인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인포시스(Infosys)와 위프로(Wipro) 등을 비롯해 1600개가 넘는 IT 업체가 자리잡고 있어 IT 인재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고 있으며 △컴퓨터와 공학 일반에 관한 전문지식과 함께 영어에 능통한 고급인력이 풍부하고 △연간 소프트웨어 수출액이 12억 달러쯤 되고, IT 분야 고용인원만도 24만 명에 이른다는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방갈루루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보스턴, 런던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큰 테크놀로지 시티로 통한다. 미국을 제외한 지역 가운데 이곳처럼 과학자와 연구자, 엔지니어 등 광범위한 과학연구진을 가진 도시는 없다는 것이다.

방갈루루가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1985년 미국의 반도체 업체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가 다국적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하이테크 개발센터를 설립한 것이 계기였다. 그 후 콜센터를 운영하는 미국 기업들이 이곳에서 자국보다 훨씬 싼 임금의 인력을 충원한 데다, 1999년 말 Y2K 작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면서 크게 부상했다. 이제는 이곳 산업의 중심이 자동제어, 칩 설계, 통신 소프트웨어, 금융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 중이다. 초대 총리 네루가 “방갈로르는 인도의 미래를 책임질 도시”라고 한 말이 그대로 적중하고 있는 셈이다.

인도를 여행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인도의 물가나 임금 수준은 턱없이 낮다. 우리의 5분의 1 수준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고, 미국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도 채 안 된다. 인도를 배낭여행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 달 동안 먹고 자고 이동하고(장·단거리 포함), 인도인보다 10배 내지 20배 비싼 입장권을 사서 유적지를 둘러보고 몇 가지 선물을 사도 500달러 정도밖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인도인 대부분은 하루 30루피(약 5000원)로 산다는 점을 고려하면 IIT를 졸업한 신입사원이 받는 월 500달러 급여는 결코 낮은 수준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낮은 급여에도 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1985년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입성이 IT 도시 발돋움 계기

인도 3위의 소프트웨어 업체 위프로와 약속이 돼 있어 시내에서 10km 정도 외곽에 위치한 호스르 가(街) 사무실을 찾았다. 홍보담당 아라빈드 씨는 먼저 위프로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지난해에 17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직원은 4만2000명에 이르며, 비즈니스 아웃소싱이 주 사업이라고 했다. 기초가 아주 탄탄하고, 가치를 지향하며, 직원의 능력과 창의력을 믿고 일을 맡기고, 원 스톱 솔루션으로 소비자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위프로의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 위크’지도 지난해 인도·중국 특집에서 위프로를 인도의 정보산업 혁명의 주인공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의 선두주자일 뿐 아니라 비즈니스 아웃소싱의 개척자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IT 두뇌 총집합 ‘인도의 실리콘밸리’

① 지상낙원과 같은 위프로 본사 사옥. ② 위프로 아짐 프렘지 회장.
③ 방갈루루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릴 정도로 최첨단 도시이나 코끼리가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④ 커피 브레이크를 즐기는 위프로 본사 직원들.

신규인력 채용 방식에 대해 묻자 먼저 업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응모자를 받아 기술 적격 여부와 팀원들과의 조화, 의사소통·문제해결 능력, 그리고 과거 경력 등 세 가지 분야를 면밀하게 검토해 선발한다고 대답했다. 신분이나 출신 지역 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인도의 IT 산업은 이제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으므로 앞으로의 성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방갈루루 외곽에만 열 곳이 넘는 위프로 사무소가 있다면서 이 가운데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당연히 본사라고 답하자, 그는 택시(회사 소유 업무차량은 없고 모두 아웃소싱으로 조달한다고 했다)를 불러 6km 정도의 시골길을 달려 본사로 안내했다. 좁고 꼬불꼬불한 길은 곳곳이 파헤쳐져 있었고 먼지도 시도 때도 없이 날렸다. 그 위로 소달구지도 지나가고 헐벗은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길 주변에는 고층빌딩과 아파트 등이 들어서느라 복잡한데 전선줄마저 엉켜 있어 보기 사나웠다.

그러다 담이 쳐진 본사에 들어서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별세계가 펼쳐졌다. 꽃과 수목이 자라는 정원을 가운데 두고 몇 개의 건물이 그 주위를 감싸고 있었는데, 건물은 3층 정도라 편안하게 느껴졌다. 아라빈드 씨는 아짐 프렘지 회장이 설립 당시부터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우리는 직원카페에 들러 차를 한잔 하고 커피 브레이크를 즐기는 직원들과 만난 뒤 수영장과 체력단련장, 휴게실도 둘러보았다. 그러나 사무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보안상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모습은 8km 정도 떨어진 ‘일렉트로닉스 시티’(위프로와 인포시스 등 많은 소프트웨어 업체가 입주해 있다)에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직원들에게 최고의 근무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였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제조업과 달리 상상력과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고 이런 낙원은 지금은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이 점이 자꾸 커져 면(面)으로 바뀌면 인도 전체를 뒤덮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프렘지 회장의 저택은 건물 뒤에 있다고 했으나 울창한 수목이 가로막아 보이진 않았다. 그의 일정은 비서만 알 뿐이고, 언론 노출도 꺼려 베일에 싸인 인물로 유명했다(이 점에서 인포시스의 난단 닐레카니 회장과 자주 비교된다). 그러나 내가 회장에 대해 궁금해하자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들려주었다.

프렘지 회장은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던 66년(21세), 조그만 식용유 회사를 운영하는 부친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해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80년대에 들어서 컴퓨터 사업에 손댄 뒤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위프로를 세웠고, 이 회사가 인도 제3의 소프트 업체로 성장하면서 회사 주식 82%를 소유한 프렘지 회장은 인도 두 번째 갑부(개인재산 110억 달러)가 됐다는 것이다.

프렘지 회장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면서 전 세계 사무소에서 보내온 e메일 보고서를 읽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아침 7시에 집무실로 출근해 스크램블 에그와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때운 다음 회의를 주재하고 그 이후 자기 일에 몰두한다고 했다. 퇴근은 오후 7시라 하루 14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프렘지 회장은 가정과 회사밖에 모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또 검소한 생활습관을 갖고 있다고 한다. 갑부임에도 출장 갈 때는 꼭 이코노미석을 타며 호텔에 머물 때도 스위트룸을 사양한다는 것. 인도로 가는 기내에서 만난 IIT 출신의 선박 디자이너 크리슈난 씨가 인도의 지도자들은 “심플 라이프를 즐긴다”고 했는데, 듣고 보니 프렘지 회장이야말로 그 전형이라 할 만했다.

프렘지 회장은 탁월함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있으며, 그가 말하는 탁월함이란 잠재적인 능력과 끼를 발휘해 최고의 것을 창출하는 용기와 노력을 뜻한다고 했다. 이는 내면적인 성숙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직원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고 있음이 틀림없다.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쏟아 붓고 그 대가로 돈을 벌고 있으나 그 돈을 개인적인 사치나 향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데 쓰려고 하는 프렘지 회장. 그를 생각하자 인도의 앞날이 더욱 밝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그를 두고 세계 언론은 ‘IT 차르(황제)’ 또는 ‘기술 왕(Tech K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지금 인도는 가장 인도다운 방식으로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간동아 2006.05.23 536호 (p84~87)

글·사진=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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