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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따분하다고? 누가 그래!”

고려대 박물관 현대 미술전으로 변신 시도 … 지역 주민·학생들 “거리감 쑥 줄었어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박물관이 따분하다고? 누가 그래!”

“박물관이 따분하다고? 누가 그래!”

고려대 박물관 최초의 컨템포러리 아트 전시 ‘상상의 힘’(위). 이부록이 고려대생들을 소재로 해 만든 ‘WARVATA’.

“박물관은 왠지 따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재미있는 전시를 한다고 해서 가족 나들이 겸 해서 왔어요.”

현대 미술작가 23인이 참여하는 ‘상상의 힘’(7월2일까지)전이 시작된 주말, 고려대학교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중에는 유모차를 끌고 나온 동네 주민이 적지 않았다. 주중에는 성동구와 동대문 사회복지관, 지역공부방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박물관 체험학습을 하러 온다. 고려대 박물관의 변화를 실감나게 하는 풍경들이다. “박물관이 현대미술 전시를 한다더라”며 미술계 사람들끼리 화제로 삼은 일은 ‘쓸데없는 걱정’이 됐다.

고려대 박물관은 1934년 우리나라에 처음 세워진 대학 박물관이다. 뛰어난 소장품이 많지만 시설이 낙후하고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그동안 고려대생들조차 자주 들르지 않는 공간이었던 게 사실이다. ‘조선시대 기록화의 세계’ ‘조선시대 선비의 묵향’ 등 기획전들이 학자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일반 대중, 특히 대학의 주인인 학생들의 관심은 끌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대학 박물관들은 종합박물관임에도 소장품 기증자의 성격과 컬렉션의 어려움 등으로 자연스럽게 ‘전문박물관’과 비슷한 성격을 갖게 됐다. 예를 들면 이화여대 박물관은 훌륭한 도자기 컬렉션으로 유명하고, 연세대 박물관은 토기, 단국대 박물관은 복식사에 남다른 전문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학자들이 연구하기엔 편리하지만, 대중과의 벽은 높아진다.

100주년 기념관에 새 둥지 튼 지 1주년



하지만 고려대 박물관은 소장품이 ‘지나치게’ 다양하고 방대한 만큼, 세계 박물관들의 추세에 맞춰 컨템포러리(동시대적)한 문화공간으로 운영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 박물관 관계자들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고려대 박물관은 2005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건립된 100주년 기념관에 지하 1층, 지상 3층, 총 4층 규모로 새 터를 잡았다. 교문에서 가까운 데다 유리벽을 통해 밖에서도 1층 전시장을 볼 수 있는 수월한 접근성이 가장 큰 강점.

새 박물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상상의 힘’을 기획한 김예진 큐레이터는 “물론 내부에서 대학의 노른자위 공간에 박물관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박물관의 위치가 관람객 수를 늘리고 학교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고려대 박물관이 기획한 최초의 컨템포러리 전시인 ‘상상의 힘’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전시는 동선(動線)을 따라 ‘상상의 시작’ ‘새로운 탄생’ ‘유토피아’ 등 세 부문으로 구성되며, 관람객은 상상력을 발휘해 나름의 ‘스토리’를 구성하게 된다.

‘상상의 시작’은 처량한 개 혹은 샐러리맨이 엎어진 냄비 위에 앉은 형상에서 출발한다(설총식, ‘충견의 밥그릇’). 신자유주의 시대, 젊은이들의 날개는 잘리고(곽윤주, ‘Lost in Desire’), 궁색한 자신의 원룸에 불시착해 방황한다(김지원, ‘휴...’). 할 수 있는 일은 술을 부어대거나(연기, ‘소윤경’), 똥을 싸는 일(안창홍, ‘화가의 똥’)뿐이다.

“박물관이 따분하다고? 누가 그래!”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창조한 ‘새로운 탄생’은 어떤 내용일까? 바이오 테크놀로지는 눈, 코, 입을 조합해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내고(이형구, ‘Altering Facial Features with BH2’), 사이버 공간을 통해 현실은 연장된다(황규태, 이중근 등). 생존은 문자 그대로 전쟁터지만(이부록, ‘WARVATA’), 디지털로 창조된 세상은 새로운 것에 공포를 느끼는 기성세대의 걱정만큼 비관적이지 않다. 그저 즐길 뿐!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 관람객 사로잡아

전시의 마지막 파트 ‘유토피아’에는 다양한 낙원들이 소개된다. 유토피아는 답답한 현실을 질주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초월의 세계다. 80년대 후반 평양축전에 걸개그림을 보내 남영동에 끌려갔던 홍성담은 물고문을 당할 때 본 ‘유토피아’를 형상화했다. 그의 대표작 ‘물속에서 스무 날’ 연작이다. 그런가 하면 여성성의 완전한 회복을 꿈꾸는 윤석남의 ‘연’이 있고, 평범한 남자의 핑크빛 꿈도 또 하나의 낙원이다(최수앙, ‘서쪽숲’). 대중문화의 달콤한 맛에 중독된 디지털 세대의 절실한 꿈이라면 만화의 세계로 들어가거나(이동기, 김학민), TV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윤미연).

이번 전시작들은 대부분 신작이 아니다. 그러나 새 박물관을 지을 때부터 2년 이상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 리서치를 했기 때문에 작가가 소장한 보석 같은 작품들이 처음 공개되기도 하고, 어렵게 소장자로부터 빌려온 대표작들도 많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회화작가 중 한 명인 김지원의 ‘휴...’는 처음 공개되지만 이번 전시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작품이다. 또한 박경택의 미공개작도 선보인다. 여성 미술계의 맏언니 격인 윤석남의 ‘연’은 작품이 너무 커서 전남도립미술관에서만 단 한 번 공개됐다.

이 가운데 고려대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이부록의 ‘WARVATA’. 작가는 고려대 도서관, 박물관, ‘고엑스’라는 애칭이 붙은 지하광장 등을 돌아다니며 촬영해, 졸거나 놀고 있는 고려대생들이 군인에게 ‘체포’되는 형상을 합성했다. 취업전쟁, 학점전쟁이 더 이상 비유가 아닌 현실임을 강조하는 이 작품은 무거운 메시지에도 렌티큘러(lenticular·입체사진 인쇄)라는 착시현상을 ‘맷돌춤’과 결합해 온기를 느끼게 한다. 더욱이 학생들의 일상이 현대미술 작품으로 표현됐으니 이보다 더 가깝게 현대미술을 접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현대미술 상설전시실에서는 이상범의 ‘보덕굴’, 이종우의 ‘응시’, 박수근의 ‘복숭아’, 권옥연의 ‘우화’, 권진규의 ‘자소상’ 등 근대 걸작을 만날 수 있다.

고려대 박물관이 소장한 방대한 현대미술 작품을 고려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할 것인지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대형 기획전 공간이 드문 미술계에서 대학 박물관이 어떤 역할을 할지도 관심사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이번 전시 결과가 제공할 것이다. ‘상상의 힘’은 대학 박물관뿐 아니라 국내 미술계와 동네 주민에게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니 말이다.

인터뷰|최광식 고려대 박물관장

“이번 전시회 계기로 박물관 환골탈태”


“박물관이 따분하다고? 누가 그래!”
-대학 박물관에서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한 이유는?

“박물관을 환골탈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박물관 주인인 고려대생과 미래의 고려대생에게 어필하는 전시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일종의 대학의 사회봉사로 봐달라.”

-‘상상의 힘’에 대한 반응은?

“‘고려대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나’라는 시각과 ‘이런 것을 왜 하나’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그러나 파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박물관 이전 후 어떤 변화가 있나?

“전철 타고 바로 들어올 수 있어서 가족 관람객도 많고, 특히 데이트족이 많이 온다. 그래서 다른 대학 박물관과는 달리 주말에 문을 열고 월요일에 휴관한다.”

-앞으로 운영 계획은?

“좋은 소장품을 좀더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도록 1년에 최소한 네 차례 기획전을 열 생각이다. 11월에는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전을 연다. 세계의 현대미술로 한 발 더 영역을 확장하는 셈이다.”




주간동아 2006.05.23 536호 (p56~5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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