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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께 죄송” … 눈물로 최후진술

김우중 前 회장 결심 공판 “잘못 채워진 운명의 단추들, 피할 수 없는 내 책임”

  • 전지성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verso@donga.com

“국민께 죄송” … 눈물로 최후진술

5월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6부(부장판사 황현주) 심리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 대한 결심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은 선고 전 마지막 재판. 김 전 회장을 수사해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영수)가 재판부에 김 전 회장에 대한 형을 요청하는 날이다.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김 전 회장은 100여 명의 대우 전·현직 직원 등 방청객을 뒤로하고 고개를 떨군 채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다. 흰색 환자복에 운동화 차림, 팔에는 링거주사를 꽂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법정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한 명씩 대기했다.

먼저 검찰의 구형 순서. 검사의 구형 이유가 시작됐다.

“대우사태 때문에 공적자금이 30조원이나 투입돼 국가와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는데도 피고인은 끝까지 ‘당시 상황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서 책임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피고인이 일부 부인하는 범행은 이미 법정에 제출된 다른 증거를 통해 입증됐다. 진정한 참회를 바라고 있는 국민에게 실망을 준 피고인은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검찰은 분식회계, 재산 밀반출 등 김 전 회장의 혐의에 대해 징역 15년에 추징금 23조358억원을 구형했다.

이어서 변호인의 최종변론 차례. 변호인들은 김 전 회장의 무죄 주장에 앞서 ‘대우의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 15년형·추징금 23조원 구형

“대우의 유동성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었고, 이 사실은 그 뒤 실제 환율 및 이자율이 회복되면서 모두 해결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명됐다.”

“유동성 위기를 가져온 IMF 사태는 외환정책 당국자들의 경험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그 책임을 기업인에게만 묻는 것은 부당하다.”

‘대우’에 대한 긴 변론은 김 전 회장 이야기로 이어졌다. “피고인은 30년 재직 중 17년간 해외출장을 다녔다. 940만km를 비행했고, 지구를 240바퀴나 돌았다. 그렇게 해외출장을 다닌 탓에 비행기 소음으로 난청(難聽)까지 생겼다.”

변호인 측은 재판부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피고인 자신이 과거 국가에 헌신한 것이 어리석었다는 자책만큼은 하지 않도록 해달라.”

마지막으론 김 전 회장의 최후진술이 시작됐다. 김 전 회장은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펴 들고 첫 문장을 읽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부덕과 미욱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깨가 심하게 들썩였다.

“IMF 사태의 혼란기에 본의 아니게 저희 대우로 인해 어려움과 피해를 입은 국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첫 줄을 읽고는 고개를 숙이고 검정색 뿔테 안경을 벗었다. 여러 차례 오른쪽 팔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울음기가 섞여 잘 들리지 않았지만, 방청객은 숨소리를 죽여가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렵고 힘듦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하다 그룹의 해체로 민형사상 책임과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임직원과 가족을 비롯한 모든 대우 관련자 분들께도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지난 30여년의 세월 저와 대우는 자원과 외화가 부족한 국가 형편을 타개하고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마다 국가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달성하며 국민경제에 활력과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자부합니다.”

다시금 말이 멈췄다. 김 전 회장은 흐르는 눈물을 다시 닦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수출로 미수교국 시장을 앞장서 개척하며 경제와 외교의 물꼬를 터나가고 세계경영으로 경제의 새 동력을 찾아나가려 한 것이나, 적자투성이 기업을 떠맡아 정상화하는 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성실 납세와 이익의 사회 환원 같은 일들은 대우인만의 남다른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해 성공한 기업과 그 기업을 일군 기업인으로 국민들과 국가경제에 희망과 긍지로 남겨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뤄내지는 못했습니다.”

방청석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나왔다. 김 전 회장은 구부린 등을 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나 국내외 50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들과 함께 여한 없이 열심히 일했고 성취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비록 저와 대우가 걸었던 길이 우리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분명 옳고 바른길이었지만 마지막을 향해 잘못 채워지던 운명의 단추들 또한 피할 수 없는 저의 책임이라 여깁니다. 그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가 제게 그처럼 열심히 일할 기회를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날 김 전 회장의 마지막 말은 자신보다는 대우의 명예회복 요청에 가까웠다.

“저 자신은 ‘대우와 함께 한 이래 어느 순간도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한 고뇌를 게을리 한 적이 없다’는 자존심 하나로 지난

6년간의 분노와 참회의 시간들을 이겨냈습니다. 다행히도 예전의 대우 계열사들 모두 재기에 성공해 지난 시기 국가경제에 끼친 피해를 모두 원상회복하여 마음의 무거움이 한결 나아지는 듯합니다. 끝까지 제 말씀을 경청해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감사를 전합니다.”

김 전 회장은 최후진술을 마치고 더욱 목 놓아 울었다. 그런 그를 재판장도 한동안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바라보기만 했다.

김 전 회장은 도피생활 5년 8개월여 만인 지난해 6월 귀국했다. 다음 달 그는 분식회계, 재산 국외 밀반출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리고 그 다음 달 건강악화로 구속집행 정지 결정을 받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왔다.

재판이 끝난 뒤 김 전 회장이 링거병 거치대를 끌며 피고인 대기실로 퇴장할 때, 법정을 나서는 일부 방청객들의 눈은 붉게 출혈돼 있었다. 김 전 회장은 대기실에서 한참 동안 안정을 취하다가 법원을 나섰다고 한다. 법원 선고는 5월30일 오후 2시로 예정돼 있다.



주간동아 2006.05.23 536호 (p38~39)

전지성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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