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36

2006.05.23

기획부동산 검은돈 정치판 뒤흔드나

  • 길진균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leon@donga.com

    입력2006-05-17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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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부동산 검은돈 정치판 뒤흔드나
    자수성가한 마음씨 좋은 사업가인가, 철저히 위장한 사기꾼인가. 교정(矯正)사업의 든든한 후원자로 법무부의 각종 공식행사에 단골로 초청됐던 김현재 삼흥그룹 회장이 5월9일 구치소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전남 영암 출신인 김 회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도 부동산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런 그가 일약 ‘부동산 업계의 대부’ ‘정치권 마당발’로 부상한 것은 ‘기획부동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부동산 사업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면서다. 이는 일정 구역의 토지를 헐값에 매입한 뒤 이를 잘게 나눠 다수의 투자자에게 고가로 되파는 방식이다.

    김 회장은 이를 통해 모은 돈으로 계열사를 늘려갔다. 피해자들의 고소 고발이 속출했으나 이때마다 막강한 자금력으로 합의하거나 “문제가 불거지면 땅값이 떨어진다”고 압박을 가해 고소 고발을 취하하도록 만들었다.

    삼흥그룹은 김대중 정부 시절 불과 2~3년 사이에 계열사를 10여 개로 늘리는 등 급성장했다. 매출도 2001년 이후 5년간 총 5318억원에 달했다. 김 회장 아래서 ‘기획부동산’ 사업을 배운 삼흥그룹 임직원은 앞 다퉈 독립해 새 업체를 차렸다. 이 때문에 삼흥그룹은 업계에서 ‘기획부동산 사관학교’로 불렸다.

    사업이 번창하자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정치권을 자신의 사업에 활용했다. 2000년 민주당 경기도지부 국정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이후 주로 호남 출신 유력 정치인들을 후원했다. 열린우리당 재정위원과 민생경제특위 위원 등을 맡으면서 현 여권 인사들과의 인연도 이어갔다. 이들에게 후원금을 준 그는 각종 행사에서 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사무실에 내걸었다. 피해자들은 김 회장 사무실에 걸린 사진들을 보고 투자를 결심한 경우가 많았다.



    김 회장은 사기죄 등으로 일곱 번이나 기소됐지만 대부분 벌금 30만~700만원을 선고받고 끝났다. 그는 지난해 검찰과 경찰의 대대적인 기획부동산 업체 단속에도 걸려들지 않았다. 기획부동산 사업을 하는 자신의 계열사들과 전혀 관계 없는 듯이 철저히 위장했기 때문. 2004년에는 조폭 수사를 하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김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적도 있다.

    그런 그가 검찰에 꼬리가 잡힌 건 기획부동산 단속과정에서 계열사 5곳에서 나온 돈이 김 회장에게 흘러들어간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김 회장이 이들 계열사의 오너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탄 것. 검찰은 김 회장이 회사자금을 빼돌려 조성한 비자금 245억원 중 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30억원의 행방을 쫓고 있다.

    앞으로 수사 상황에 따라 비자금 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고, 정치인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나 2004년에도 한 차례 검찰 수사를 받은 바 있는 김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더라도 그 단서를 남겨뒀을 가능성이 낮다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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