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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교양 돋보기|자궁의 역사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고대부터 ‘남성보다 열등’ 뿌리 깊은 차별 … 난자가 국가와 시장 위한 도구로 전락 ‘끔찍’

  •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18세기 남자들이 자궁성 히스테리를 앓고 있는 여인을 붙잡고 있다. 피터 브뢰헬 작.

황우석 박사의 2004년 논문이 나왔을 때 세계는 두 번 놀랐다. 세계 과학자들은 먼저 인간의 난자를 이용한 체세포 복제에 성공했다는 데 놀랐다. 이어서 그들은 황 박사 연구팀이 연구용 난자를 240개 넘게 구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조사 결과 황 박사팀은 여성들에게서 무려 2000개가 넘는 난자를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00여개의 난자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은 다른 나라 과학자들은 결코 누려보지 못할 호사(?)이리라.

논문의 조작보다 끔찍한 것은 여성의 난자가 국가의 명예와 33조의 시장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은 이보다는 이른바 ‘원천기술’의 유무에 쏠려 있는 듯하다. ‘기술’만 있다면 수백 명 여성의 몸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몸은 언제나 남성의 관리 대상이었는데 지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21세기에 여성의 상징인 난자는 국가와 시장의 포로가 되었다.

히스테리

‘자궁하수’라는 병이 있다. 잦은 임신으로 회음부 근육이나 자궁 인대가 약해져 자궁이 질 밖으로 빠져나오는 병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4000년 전에 이미 이 현상을 목격한 이집트의 의사들은 거기서 여성의 자궁이 온몸을 돌아다닌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궁이 아래로 처질 수 있다면, 위로 치고 올라갈 수도 있지 않은가. 그때부터 자궁이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부인병을 일으킨다는 관념이 의학 상식으로 굳어졌다.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외음부 쪽에 향기로운 냄새를 피워 자궁을 골반 내의 원래 자리로 유도했다는 중세의 이집트식 치료법.

이렇게 ‘돌아다니는 자궁’에 관한 얘기는 파피루스로 기록된 이집트의 의서(醫書)에 남아 있다고 한다. 자궁이 온몸을 돌아다니며 정신적, 신체적 질환을 낳는다고 보는 견해는 그리스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히스테리’라는 말이 있다. ‘자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후스테라’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오늘날 ‘히스테리’는 정신질환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원래는 ‘자궁을 원인으로 하는 질환’ 일반을 가리켰다.



어떻게 해서 여성의 자궁이 히스테리라는 질환의 이름이 되었을까? 신경증적 발작 증세를 보이는 환자 중 3분의 2가 여성이라고 하던데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자궁을 ‘히스테리’로 연결시키는 관념의 바탕에는 여성의 몸을 무언가 열등한 것으로 보아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남성권력의 시각이 깔려 있는 게 틀림없다. ‘자궁의 역사’에서 라나 톰슨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자궁의 수난사를 추적한다.

이집트의 의서 ‘카훈 파피루스’에 의하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자궁이 간에 가서 부딪히고, 위장을 때리고, 췌장을 짓눌러서 통증을 유발하고, 폐를 압박해 호흡곤란을 가져온다. 자궁이 위로 치올라가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을 치료하는 이집트인의 방법은 냄새를 이용한 것이었다. 즉 환자의 코 가까이에서 유독물질을 태워 자궁을 아래로 내려가게 한 다음, 여성의 외음부 근처에 상쾌한 향을 피워 자궁이 제자리를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자궁을 ‘짐승 안의 짐승’이라 불렀다. 그가 보기에 히스테리는 주로 젊은 여성들의 질환이었다. “자궁은 아이를 생산하고 싶어하는 짐승이다. 사춘기 이후 너무 오랫동안 자궁을 방치해놓으면 몹시 괴로워하며 몸속을 돌아다니다가 호흡을 막아 극심한 고통을 가져오고 그 밖에도 온갖 질환을 일으킨다.” 그는 “이것이 여자들의 본질이고 모든 암컷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플라톤과 달리 히포크라테스는 히스테리를 주로 나이 든 여자의 질환으로 보았다. “금욕생활이 오래되면 자궁에 조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자궁은 말라붙어 가벼워지고, 수분을 찾아 갈비뼈를 향해 올라가 복강으로 내려오는 호흡의 흐름을 막는다. 자궁이 위로 올라간 상태에서 멈추면 간질과 비슷한 발작을 일으킨다.” 흔히 말하는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편견은 이렇게 깊은 연원을 갖고 있다.

고양이의 머리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850년경 무사오가 소라누스 저작에서 해석한 고양이 머리 모양의 자궁.

히스테리가 억눌린 성욕의 산물이라면 치료하는 방법은 간단할 것이다. 그냥 성행위를 하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성적으로 자유분방하던 고대는 지나고 이제 시대는 처녀의 순결을 강조하는 중세로 접어들었다. 여성들은 결혼 전까지는 처녀성을 지켜야 하고 결혼을 하지 않을 경우 영원히 처녀로 남아야 한다. 결혼을 해도 출산 이외의 쾌락을 위한 성행위마저 부도덕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섹스를 통한 히스테리의 치료는 설 자리를 잃는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의 중요한 의서인 소라누스의 의서에서 ‘움직이는 자궁’이라는 관념은 종지부를 찍는다. 하지만 당시에 그의 의서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의서에 묘사된 자궁의 모습이다. 소라누스는 자궁을 뾰족한 두 귀를 가진 고양이의 머리처럼 묘사했는데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그래도 두 개의 난관의 존재를 포착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 의학을 이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중세에 의학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사체에 손을 대는 것을 금기시하던 시대에 의사들에게 직접 해부를 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 그 결과 자궁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얻는 것도 힘들었다. 가령 1315년에 나온 몬디노의 ‘대해부학’이라는 책은 여성의 자궁을 일곱 개의 방으로 나누어 묘사했다. 이는 물론 1000여년 전의 소라누스보다 부정확한 것이었다.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1543년경 나온 베살리우스의 저서 ‘인체의 구조’에 실린 베살리우스의 자궁(왼쪽)과 1622년 스피겔리우스의 자궁. 스피겔리우스의 자궁 해부도는 새로운 사실주의를 드러낸다.

고대의 부활일까? 르네상스 시대에 의학은 부활한다. 그 시대의 어느 의사가 전하는 일화는 히스테리에 대한 고대의 치료법을 연상시킨다. “1546년 마흔네 살의 과부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하여 급히 달려갔다. (…)나는 산파를 불러 환자의 생식기에 윤활제를 바르고 손가락을 넣어 문지르게 했다. 그러자 환자는 의식을 회복했다. 의사들은 손가락으로 생식기를 자극하는 방법을 선호하는데, 특히 과부나 수녀들에게는 더 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해부학서인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는 재미있는 그림이 나온다. 여성의 성기를 마치 양말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남성의 성기를 뒤집어놓은 것처럼 묘사한 것이다. 여성의 성기가 남성의 성기를 뒤집어놓은 것이라는 관념은 사실 중세 말에 등장한 것인데, 베살리우스처럼 직접 해부를 했던 학자마저 이 오랜 관념을 고집한 것을 보면 편견의 힘은 눈에 뵈는 증거보다 끈질긴 모양이다.

이 시대에 출산을 담당한 것은 의사가 아니라 산파들이었다. 태아의 생명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이들은 ‘마녀사냥의 시기’에 바로 그 때문에 쉽게 희생양이 되곤 했다. 18세기부터 여성을 치료하는 권력마저 산부인과 의사라는 남성들에게 넘어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자궁이 골반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히스테리는 슬금슬금 뇌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히스테리의 원인이 심리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성과 도덕의 시대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16세기 출산을 돕는 산파. 산파들은 대개 출산 경험이 있었고 임신과 출산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춘 여자들이었다.

18세기는 이성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성은 어디까지나 정신에 속하고, 정신을 가진 존재는 남성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이 결국 자연에 묶인 육체적 존재임을 확인해야 하는 여성들은 이성적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이 신체적 특성 때문에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고집했다. 칸트는 여자들이 설령 이성을 가졌다 해도 남자들에 비해 추상적 사고능력이 떨어지고 구체적 사고에만 능숙하다고 보았다.

칸트는 얼굴이 예쁜 여인들에게는 이성이 없다고 믿었다. 몽테스키외 역시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이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루소에게 여성은 남자의 쾌락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여자는 특별히 남자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창조되었다. 여자는 타인에게 기쁨을 주고 순종하도록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남자의 분노를 돋우지 않도록 입속의 혀처럼 부드럽게 굴어야 한다.”

19세기에 히스테리는 도덕적 결핍의 결과로 설명된다. “히스테리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은 허약함, 게으름, 도시 생활, 신체-도덕적 형편없는 훈육, 과도한 흥분일 것이다. (…)그 밖의 원인으로는 초경, 무월경, 늦은 결혼, 만성적 자궁 염증, 타락한 습관, 만성 변비 등이 있다.” 이런 의학적 진단의 바탕에는 도덕적 판단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도덕의 대명사인 빅토리아 시대가 아닌가.

공학 재료로 수난당하는 ‘여성의 몸’

2005년 12월6일 황우석 교수 팬들이 서울대 수의대 건물 입구에서 황 교수 연구실 앞까지 80m를 그의 복귀를 기원하며 진달래와 무궁화 꽃으로 장식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대를 거쳐 ‘자궁의 역사’는 20세기와 포스트모던의 의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내가 저자였다면 여기서 주제를 잠깐 프로이트로 옮겼을 것이다. 히스테리의 원인이 정신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관리하는 권력은 마땅히 정신분석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세기 후반의 정신분석학이 주로 ‘분열증’에 주목한다면, 20세기 전반 정신분석학의 주요 대상은 히스테리 연구였다.

‘자궁=히스테리’라는 도식은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남성권력의 시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자궁에 대한 관념은 역사적으로 변해왔어도 여성의 신체를 ‘결함이 있는 것’, ‘죄악에 물든 것’, ‘남성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는 데에는 이제까지 아무 변함이 없었다. 여기서 여성의 몸을 남자가 관리할 필연성이 생긴다. “남자다움은 안전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되었고, 여자다움은 남자 의사의 통제를 필요로 했다.”

고대에 여성의 몸은 ‘예술(=의술)’의 대상이었고, 중세에는 신학의 억압을 받았고, 근대에는 의학의 통제를 받았고, 계몽의 시대에는 철학적 비난을 받다가, ‘자궁’이라는 이름의 질환의 원인을 심리적 요인에서 찾게 되자 그것은 정신분석학의 대상이 된다. 자궁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진달래꽃 뿌려가며 난자를 바치는 여성들. 여성의 몸은 이제 ‘공학’의 재료가 되었다. 자주 들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지만, 사실 ‘생명공학’이라는 말처럼 끔찍한 표현이 또 있을까?



주간동아 520호 (p84~86)

중앙대 겸임교수 mkyoko@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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