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5

2005.10.11

‘발리’는 호주인들 마약 소굴?

휴가철 호주인들 마약밀매 사건 빈발 … 체포된 사람 중 10명은 사형선고 내려져

  • 애들레이드=최용진/ 통신원 jin0070428@hanmail.net

    입력2005-10-05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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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리’는 호주인들 마약 소굴?

    마약 밀반입 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샤펠 코비.

    호주인들이 휴가철마다 즐겨 찾는 피서지는 어디일까? 바로 인도네시아 남단에 위치한 발리다. 매년 4만6000여명의 피서객들이 발리를 찾는다. 그런데 최근 발리에서 마약을 소지하다가 현지 경찰에 적발된 호주인들이 많아져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들 상당수가 전문 마약사범이 아닌 일반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올해 호주와 인도네시아 정부 간에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샤펠 코비 사건도 바로 그런 예다.

    호주 골드코스트의 한 미용학교에 재학 중인 평범한 여학생 샤펠 코비(27)는 2004년 10월8일 발리 국제공항에서 입국 심사를 받던 중, 여행용 가방에서 마리화나 4.1kg이 발견돼 현지 법원에서 2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샤펠은 마리화나가 발견된 순간부터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내 짐이 호주에서 발리로 오는 도중 누군가 내 가방에 마리화나를 몰래 넣었을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인도네시아 국민들 중 그의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호주의 한 방송국이 샤펠의 증언에 대해 두 나라 국민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호주 국민의 80%가 진실이라고 믿는 반면 인도네시아 국민의 92%는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샤펠 코비 사건’ 양국 신경전

    샤펠의 형이 선고될 때까지 호주와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 사건을 둘러싸고 큰 외교적 마찰을 겪었다. 자국민이 현지에서 부당한 경찰 조사를 받을 것을 염려한 호주 정부는 알렉산더 다우너 외무장관을 발리에 파견해 사건의 경과를 살펴보게 했고, 존 하워드 총리 역시 인도네시아 법정이 최대한 인도적인 판결을 내려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호주 정부의 공개적인 압력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특히 마약 밀반입자에 대해서 대부분 총살형이나 종신형을 선고하는 사법부의 관행에 대해 호주 정부가 인도적인 판결을 요구한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는 것. 또한 호주 정부가 샤펠에게 10년 이상의 장기형이 선고될 경우 복무를 인도네시아가 아닌 호주에서 하도록 요구해 샤펠의 형이 확정된 뒤 두 나라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4월30일 또다시 발리에서 호주 젊은이 9명이 연루된 헤로인 밀반입 사건이 발생, 호주 정부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당시 이들은 테이프로 헤로인을 온몸에 감싼 채 밀반입하려다 발리 공항 경찰에 검거됐다. 그들 중 일부는 전문 마약밀매범이었다. 인도네시아 경찰은 “주모 혐의자인 무술 사범 뮤란 수쿠마란과 마약 밀매업자 르네 로렌스, 그리고 매큐 노만은 복수 여권을 소지할 정도로 치밀한 계획을 세워 마약을 밀매하려 했다”고 밝혔다. 한편 현지 경찰이 이들과 접촉한 인도네시아인 검거에 실패하자, 호주 언론들은 이 사람이 실제적인 마약 거래상이라고 주장했다.

    ‘발리’는 호주인들 마약 소굴?

    호주의 유명 모델인 미첼 레슬리가 발리의 한 나이트 클럽에서 엑스터시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8월20일 새벽 발리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남호주 애들레이드 출신인 유명 모델 미첼 레슬리(24)가 엑스터시를 소지하다가 현지 경찰의 불시 검문으로 적발됐으며, 25일에도 수마트라에서 애들레이드의 유명 사립학교인 ‘펜브룩’의 교사 그라암 클리포드 페인(21)이 엑스터시 2000알 이상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에 호주 정부는 연이은 자국민들의 마약 관련 사건에 대해 인도네시아 정부에 공식적으로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인도네시아 법체계가 마약 사범에 대해서 가혹한 형벌을 적용하는데도 휴양지 발리에서 마약을 복용하거나 마약을 가지고 입국하려는 호주인들의 안하무인식 행동은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호주의 마약 전문가들은 휴양지 특유의 자유스러운 분위기와 마약의 높은 상품가치를 가장 큰 이유로 지적한다.

    실제로 발리에서 마약을 구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샤펠 코비 사건이 있은 뒤 호주 방송인 ‘채널10’이 발리 현지에서의 마약거래 실태를 보도해 큰 화제가 됐다. 방송에서 보여준 실태는 충격적이다. 길거리에 서양인들의 모습만 보이면 몇 분 안에 수십명의 마약 거래상들이 나타나 이들에게 엑스터시부터 헤로인까지 다양한 마약을 선보였다. 마약 거래상들은 관광객이 마약을 다량으로 구매할 때는 할인까지 해주었고 단속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하워드 총리 “호주 국민 자격 없다”

    마약을 거래하는 인도네시아 현지인들은 경찰에게 적발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에 대해 호주 경찰은 “발리의 마약 거래상들과 인도네시아 경찰들은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있다”며 “심지어 몇몇 경찰들은 현지 마약 거래상을 고의로 호주인에게 접근하도록 해 마약이 거래되면 현장에서 붙잡아 뇌물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발리에서 호주인들의 마약 관련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자, 호주 정부는 자국민들의 마약 실태에 대해 조사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외국에서 마약 거래 혐의로 체포된 호주인의 수는 46명에 이르며, 이중 발리에서 체포돼 사형선고가 내려진 사람도 10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자국민의 마약 복용 실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하워드 총리는 “외국에서 마약을 소지하거나 거래하다 적발된 모든 호주인들은 호주 국민으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다”며 “어떤 이유로든 외국에서 마약과 관련해 적발된다면 그 나라의 현행법에 따라 엄중히 처벌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는 샤펠 코비 사건에서 호주 정부가 보여준 외교적 노력들이 자칫 ‘호주 정부는 자국인이 죄가 있어도 일방적으로 도와준다’는 선입관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주 내에서도 마약 거래가 성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정부의 경고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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