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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최홍만 “K-1 평정!”

왜 흥분하냐고? 재미있잖아

피 튀는 원초적 이종격투기 살아남기 한 단면 … 자극적 밤의 향연 이 시대 구경거리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왜 흥분하냐고? 재미있잖아

왜 흥분하냐고? 재미있잖아

이종격투기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씨름판을 호령했던 천하장사 최홍만이 이종격투기의 전사가 되었다. ‘야수’라는 별명을 가진 밥 샙을 물리침으로써 이 유혈낭자한 판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단적인 사실은 이종격투기가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방송사의 중계 사양으로 그야말로 ‘사양길’에 접어든 민속 씨름의 안타까운 처지와 더불어, 이제는 거의 모든 스포츠 케이블 방송이 전송하는 위성 화면의 이종격투기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까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포털 검색 회사의 광고가 생각난다. 신세대 최고의 스타인 전지현 씨가 다채롭게 꾸며 입고는 ‘서초동 동물병원’ ‘연희동 중국집’ ‘이대앞 미용실’ 등을 찾는(검색하는) 광고였는데, 특이하게도 ‘강남구 격투기’라고 외쳤다. 미식가들에게 연희동의 중국집은 소문난 곳이다. 이대앞 미용실은 한반도의 패션을 결정하는 첨단의 장소다. 그런데 강남구 격투기라니?

대중문화의 대표적 아이콘인 전지현 씨가 ‘강남구 격투기’를 검색창에 쳐보라고 하는 것은 이종격투기가 요즘 우리 사회에 어떤 기호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이종격투기는 현대 스포츠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 즉 스폰서·미디어·관객이라는 삼위일체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스폰서·미디어·관객 삼위일체 완벽한 구현

이 조건 속에서 이종격투기는 감각의 극단을 추구한다. 권투, 레슬링, 태권도, 유도, 합기도 등 여타의 격투기가 있으나 이종격투기는 그것의 모든 것이 한군데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유혈이 낭자한 화면을 보고 한쪽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좀처럼 리모콘을 돌리지 못한다. 왜 그럴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육체는 상당한 금기와 강박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대중문화의 발전에 의해, 그리고 97년의 경제위기로 인해 육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다. 대중문화의 관점에서 육체는 하나의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된다는 사실은 화장, 성형, 얼짱 등의 용어로 충분히 설명된다. 조폭의 문신과 달리 홍대앞 문화의 ‘헤나 문신’이나 축구 스타 안정환의 어깨 문신은 문화적 기호로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IMF 외환위기는 육체에 대한 우리의 인습을 바꿔놓았다. IMF 외환위기는 조직에 충성하면 개인과 가족의 평생이 보장된다는 ‘신화’를 깨뜨렸다. 자신과 가족의 미래는 결국 자신의 ‘빈약한’ 육체로 지킬 수밖에 없다는 인식은 곧 ‘건강한 육체’에 대한 열풍을 일으켰다. 헬스·에어로빅·명상·요가·마라톤·성형 등은 한편으로는 쾌적하고 한가로운 행위이기도 하지만, 처절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단면을 보여주는 셈이기도 하다.

건강한 육체가 빚어내는 탄력과 매혹은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는 아름다움이며, ‘육체적 퍼포먼스’에 의한 감수성의 혁명은 지금 이 시대의 유일무이한 신화가 되어 화장과 헬스를 넘어서 성형수술과 이종격투기라는 극한으로 번지고 있다.

그리하여 민속 씨름의 ‘지루한’ 샅바 싸움에 시들해진 사람들은, 그리고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어 두세 달에 한 번씩 간헐적으로 열리는 권투 경기에 감질난 사람들은 거의 매일 밤마다 이종격투기라는 자극적인 구경거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까닭으로 전지현 씨는 예의 광고에서 ‘강남구 격투기’라고 외쳤던 것이다.

실제로 국내의 이종격투기는 강남구에서 자주 열리는데, 그것은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졌던 민속 씨름이나 권투와는 다른 분위기다. 화려한 실내장식, 댄스파티, 랩뮤직, 근사한 식사, 와인, 늘씬한 미녀 등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전사들이 격렬한 파이팅을 하는 것이다. 핏빛이 감도는 스테이크를 썰면서, 그리고 역시 핏빛과 흡사한 와인을 마시면서 ‘혈전’이나 다름없는 이종격투기의 링을 구경하는 것은 좀더 자극적인 밤의 향연을 추구한 끝에 찾아낸 이 시대의 독특한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5.10.11 505호 (p32~32)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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