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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최홍만 “K-1 평정!”

“난 살인 니킥 전사” 최홍만의 대변신

씨름판 떠난 지 9개월 만에 ‘K-1’ 돌풍 … 스태미나·발차기 보완하면 ‘최강의 파이터’

  • 조용직/ 격투기 전문기자 psygram@gmail.com

“난 살인 니킥 전사” 최홍만의 대변신

“난 살인 니킥 전사”  최홍만의 대변신

9월23일 일본 오사카돔에서 열린 K-1 월드그랑프리 개막전에서 최홍만이 밥 샙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한 뒤 태극기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3라운드 중반, 예리한 왼쪽 니킥이 ‘야수’의 안면에 적중했다. 관중도 팬들도 놀랐다. 최대 이변. 골리앗의 포효는 오사카돔을 뒤흔들었다. 9월23일 ‘왕년의 천하장사’가 비로소 ‘K-1’ 전사로 거듭난 것이다.

이날 밥 샙(미국)과의 경기는 케이블TV 중계 순간 시청률 15.7%를 기록했다. 케이블TV로는 경이적인 수치란다. 최홍만이 야수를 물리치면서 이종격투기의 인기가 다시 불을 뿜기 시작했다.

“다시는 씨름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천하장사 최홍만은 금색으로 물들인 머리칼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우울한 표정으로 씨름과의 절연을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K-1 진출을 공식 발표한 자리에서였다. 씨름계 최고 스타인 ‘테크노 골리앗’의 씨름 은퇴는 화제와 논란을 낳았다.

그러나 9개월의 짧은 기간 동안 그는 K-1 전사로 거듭나 있었다. 당기는 씨름에서 때리는 K-1에 소프트랜딩한 것이다.



최홍만이 K-1 훈련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월25일. 그전까지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다졌다. 몸무게가 165kg에서 158kg으로 줄었을 만큼, 독하게 기구를 들고, 또 밀었다. 씨름할 때 쓰지 않았던 근육을 주로 단련했다. 격투기 선수다운 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 건너가서도 한동안은 몸 만들기에 주력하면서 타격 기술을 익혔다. K-1 트레이닝은 권투와 비슷한데 로킥, 니킥, 하이킥 등 발차기 연습이 추가된다. 연습 과정에 스파링이 추가되면서 씨름으로 단련된 근육은 더욱 단단해졌다.

문제는 스태미나였다. 거구이다 보니 지구력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지적을 받은 게 사실. 그러나 최홍만은 씨름 근육에 K-1용 웨이트트레이닝을 덧붙이면서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 날려버렸다. 3월 서울 대회에선 카오클라이 카엔노르싱을 상대로 연장 라운드 접전을 펼치고도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밥 샙과의 경기에서도 나타났듯 스태미나는 여전히 약점으로 지목된다.

비록 참가 선수들의 수준이 다소 떨어졌지만 본격적인 훈련을 겨우 두 달 남짓 거치고 서울대회에서 우승했을 만큼, 감각은 타고났다. 최홍만은 서울 대회를 마치고부터는 하체 보강 운동에 특히 힘을 쏟았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선수가 날리는 로킥에 대한 대비가 허점으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K-1 훈련은 강도는 높지만 프라이드와 달리 생각보다 간단하다. 웨이트트레이닝과 복싱 훈련, 발차기 훈련과 스파링 정도. 경기를 앞두고는 복싱 기술과 발차기 기술 연마에 주력한다. 최홍만은 전문 트레이너의 지도를 받으면서 복싱 기초인 원투 스트레이트를 수만 번 연습했다.

그러나 최홍만은 아직도 주먹을 쓰는 게 어설프다. 발차기는 더욱 그렇다. 스스로도 “경기 장면을 스무 번쯤 반복해 봤는데 오른 주먹을 쓰는 것이 내가 봐도 어설펐다. 보완하겠다”고 밝힌다.

“난 살인 니킥 전사”  최홍만의 대변신

2004년 프로 씨름 올스타전 최종일 백두장사 결승전 셋째 판에서 LG 염원준(오른쪽)이 안다리걸기로 팀 동료 최홍만을 공격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주먹은 위력적이다. 스모 영웅 아케보노와의 대결에선 ‘잽’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160kg에 이르는 체중에서 나오는 잽의 힘은 엄청나다. 어설퍼 보이지만 스트레이트의 위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발차기만 보완되면 K-1 최정상급 선수 누구와도 해볼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최홍만은 9월25일 8강 대진 추첨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나의 복싱기술로 파리 때려잡듯 본야스키를 눌러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홍만은 맞으면 어떠냐는 질문에 “아프다”고만 답한다. 그는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부끄러움이 많고 말수가 적은 성격이다. 그의 자신감이 허풍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최홍만이 겪어온 역경은 그가 가진 힘의 원동력이다. 최홍만은 원래 거인이 아니었다. 제주 한라중 3학년 시절 부산 경원고 조태호 감독의 눈에 띄어 씨름을 시작한 고교 1년 때 체구는 183cm, 88kg으로 ‘조금 좋은’ 정도였다. 더욱이 고교 3년 내내 변변한 입상 한번 하지 못했던 평범한 선수였다.

하지만 동아대에 입학할 무렵 그는 키 2m에 몸무게가 130kg이 넘는 거인이 돼 있었다. 이때부터 기량도 일취월장해 씨름판을 걸머질 거물로 성장해갔다. 2002년 동아대를 중퇴하고 프로 씨름에 뛰어들어 이듬해 백두급 신인상을 타더니 그해 말 인천대회 천하장사에 오르며 ‘테크노 골리앗’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1·3월에도 잇달아 꽃가마를 타는 등 달아오른 그의 기세는 식을 줄 몰랐다.

그러나 골리앗의 쾌속전진은 해를 넘기지 못하고 큰 장애물과 맞닥뜨린다. 11월 말 최홍만이 속한 LG투자증권 씨름단이 돌연 팀 해체를 선언한 것이다. 납득할 수 없었다. “비참하다”는 말 외엔 어수선함을 대변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선배 선수들과 함께 서울 장충체육관, 한국씨름연맹을 찾아갔지만 되돌린 것은 없었다.

최홍만은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앉아서 실업자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함께 씨름연맹 사무실을 찾아가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씨름을 한 게 너무 후회가 된다. 일본은 민속스포츠인 스모를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키우고 발전시킨다고 들었다. 요즘에는 차라리 스모 선수라도 하고 싶다.” 운동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스물네 살의 거인은 얼굴에서 웃음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이틀 만에 단식을 풀고 나간 12월3일 구미천하장사씨름대회 단체전은 결국 그의 마지막 씨름 경기가 됐다. 과거 그를 몇 차례나 괴롭혔던 박영배를 꺾고 두 손을 번쩍 들었지만 승리했다는 기쁨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벌써부터 씨름에서 떠나 있었다. 마지막 경기에 나서기 전 그는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던 K-1에 진출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최홍만은 마지막 대회가 끝난 지 5일 만인 11일 일사천리로 K-1행을 확정지었다. 매일 스포츠신문을 펼쳐보며 꿈꾸던 스포츠 스타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그랬더니 이번엔 소속팀 차경만 감독과 씨름계 인사들이 ‘절대 안 된다’를 외치며 최홍만의 발목을 붙잡았다. “씨름 천하장사가 일본 K-1에 가서 지기라도 하면 국가적 망신”이라는 우려와 함께 “스타인 네가 가면 씨름단이 새로 창단될 수 없고, 남은 선수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주문했다.

최홍만은 이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역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아 있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쯤 되자 씨름계는 존재하지도 않는 ‘씨름 명부’를 거론하며 “명부에서 제명하겠다”며 그를 협박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혈기왕성한 최홍만의 감정이 폭발했다.

“단식까지 하면서 사태 해결을 갈망했을 때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더니….”

최홍만은 K-1 진출을 공식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잡으려면 진작 잡지 지금은 늦었다. 격투기 선수를 그만두더라도 다시는 씨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K-1이란 신대륙에 떠내려온 걸리버 최홍만. 이제는 죽기 살기로 격투기 훈련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서는 만류가 컸던 만큼 성공보다는 실패를 우려했다. “복부가 약해 주먹을 맞으면 단번에 고꾸라진다” “팔자다리라 로킥을 맞으면 그대로 상처를 입는다” “거인증이 있어 펀치를 피할 수 있는 움직임을 보이지 못할 것”이란 비관적 관측들이 나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딪혀보지도 않고 걱정만 앞세운 꼴이었지만. “일본에 팔려간다”며 일본에서 태동한 K-1에 진출하는 것 자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최홍만은 과감했다. 젊기 때문에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을 믿었다. 그리고 독한 훈련을 견뎌냈다. K-1은 수만 명의 관중이 선수에게 열광적인 성원을 보내는 무대. 스포츠 스타를 넘어 엔터테이너의 꿈을 지닌 그로서는 그런 무대에 선다면 실패하더라도 아깝지 않은 추억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드디어 3월19일 K-1 데뷔전. 대진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훈련 기간이 고작 3개월밖에 안 됐기에 욕심 부리지 말고 가능성을 보이는 데 만족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 씨름 데뷔 1년 만에 천하장사에 올랐던 그의 저력은 K-1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스모 출신인 와카쇼요, 아케보노를 차례로 완파하고 결승에 오른 그는 지난해 서울대회 우승자인 ‘디펜딩 챔피언’ 카오클라이 캔노르싱마저도 판정으로 꺾고 데뷔무대 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최홍만의 ‘K-1 정복기’, 그 첫 페이지가 화려하게 장식되는 순간이었다. K-1 정복의 꿈은 이뤄질까.







주간동아 2005.10.11 505호 (p20~23)

조용직/ 격투기 전문기자 psygr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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