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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불이 특산물 기행|강원도 횡성 복분자

1년 숙성 ‘복분자 와인’ 어때요

  • 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1년 숙성 ‘복분자 와인’ 어때요

1년 숙성 ‘복분자 와인’ 어때요

야생에서 자라던 토종 복분자딸기를 밭으로 옮겨 심었다.

명품이 되려면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 복분자는 자연이 준 선물이지만, 그 안에 혼을 불어넣은 것은 인간의 몫이었다. ‘본초강목’에 나오고, ‘동의보감’에 인용된 것에 따르면 복분자는 “신정(腎精)을 보태주고 소변이 새는 것을 멎게 하여, 요강을 엎을(복분·覆盆) 정도가 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복분자주를 마시고 잠든 고을 원님이 밤중에 일어나 오줌을 누다가 요강을 엎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그러나 그 일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났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동의보감’에까지 요강을 엎을 정도라는 말이 나오니 이를 대놓고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대부분이 “그래? 그럼 나도 한번 맛볼까”라는 식이다.

열매는 산딸기와 비슷 품종은 달라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일까? 복분자딸기(복분자는 복분자딸기의 열매를 말한다. 이하 복분자)는 근 5~6년 사이에 재배 면적을 가장 넓힌 밭작물로 꼽힌다. 고창과 정읍에서 시작된 복분자 재배가 순창을 거쳐 고흥·제주까지 건너가더니 진주를 지나 동해안 포항까지 다다랐고, 북쪽으로는 강원도 횡성과 속초, 고성 지방까지 퍼져나갔다. 가히 복분자 붐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복분자의 80% 이상을 소비하는 복분자주는 500억원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약주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백세주의 매출이 1300억원이니, 복분자주의 신장은 놀랍다.



그 바람을 탄 사람 중 한 명이 횡성에서 복분자 농장을 운영하는 천금기(48) 씨다. 천 씨는 평범한 중소 건설업체의 재무를 담당하는 회사원이었다. 그런데 IMF 구제금융 시기에 회사가 부도 나서 실직하고, 달리 직장을 얻기도 어렵고 사업하기도 쉽지 않아 횡성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때가 1999년이었고, 2000년 초 복분자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고창 복분자 시험장에서 복분자 묘목을 분양받아 심었다. 횡성군 농업기술센터에서도 묘목 값의 60%을 지원해주었다. 그런데 이듬해에 보니 고창에서 들여온 묘목이 야산에 흩어진 토종 복분자와 달랐다. 그때부터 천 씨는 토종 복분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임업연구원 정헌관 씨의 말에 따르면 요즘 밭에서 흔히 재배되는 복분자는 1960년대에 외국에서 도입된 블랙베리 계통으로 추정되며, 이 도입종-고창 복분자 시험장에서는 선운산 복분자라고 부르고, 미국의 블랙래즈베리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보며, 현재 야생 복분자와 품종 간 유전학적 연관성을 연구 중이다-은 남부지방에서는 6월 중순에 중부지방은 7월에 들어서 열매를 수확한다. 그런데 토종 복분자는 수확 시기가 이보다 한 달가량 늦어, 남부지방은 7월이고 중부지방은 8월이다.

1년 숙성 ‘복분자 와인’ 어때요
1년 숙성 ‘복분자 와인’ 어때요

농장 가까이에 있는 청태산자연휴양림의 숲 그늘. 당을 첨가하고 효모를 넣어 발효시키고 있는 복분자 와인. 처음 출시되는 복분자 와인과 천금기 씨(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복분자는 산딸기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품종은 다르다. 식물도감에 나와 있는 우리 산야의 산딸기 종류만도 21종으로, 그중 하나가 토종 복분자다. 도입 육종은 흰 꽃이 피고, 토종은 연분홍 꽃이 핀다. 도입종은 밭에 적응해 옮겨 심어도 잘 자라는 반면, 토종은 옮겨 심으면 죽을 확률이 높다. 토종은 가시도 억세고 열매도 잘다. 이런 불리한 조건에서도, 천 씨는 2500평 복분자 밭에 토종을 60%까지 늘려 심었다. 천 씨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동의보감’에 나오는 요강 뒤집는 복분자가 바로 토종 복분자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에 눈이 적어 땅이 단단하게 얼면서 도입종은 동해(凍害)를 입었는데 토종 복분자는 피해를 덜 입어 올 수확은 토종 복분자가 더 좋았다고 한다. 올해 수매가격도 도입종이 1kg당 7000원인 데 비해, 토종은 1만원이었다고 한다.

복분자 효능 한껏 발현시킨 상품

하지만 이 정도뿐이라면 굳이 천 씨를 이 지면에 소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 씨에게는 주목할 만한 특별한 게 있다. 그는 토종 복분자를 이용해 복분자주를 빚었다. 물론 복분자주를 빚었다는 것도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 현재 복분자주를 빚겠다고 면허를 낸 업체가 30곳이 넘고, 복분자주를 만들고 있는 업체가 20곳이 넘기 때문이다. 천 씨가 특별한 것은 기존의 복분자주 업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복분자주를 빚었기 때문이다.

현재 팔리고 있는 복분자주는 얼마간 발효시킨 복분자 원액에 에탄올(95% 에틸알코올, 희석식 소주의 원료다)을 타서 알코올 농도를 15도로 맞춘 것이다. 그래서 에탄올의 억센 기운이 넘치고, 과일의 온화한 향이 부족한 술이다. 과일을 발효시키는 정통 와인에서는 한참 벗어난, 알코올 강화 와인이다. 그 술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20개가 넘는 복분자주 제조장이 한결같이 똑같은 방식으로 술을 빚기에 아쉬움이 있었다. 적어도 복분자주가 과일주라면 포도주 방식으로 술 빚은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바로 천 씨가 포도주 방식으로 술을 빚어낸 것이다. 에탄올을 넣지 않고, 복분자를 으깬 뒤 부족한 당은 설탕으로 보충하여 효모를 넣고 발효시켰다. 그리고 꼬박 1년을 숙성시켰다. 그 술이 올가을 추석을 앞두고 처음으로 500병이 출시된다. 올해 출시되는 복분자주는 그것이 전부다. 올해 수확한 복분자는 내년 출시를 위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더욱이 천 씨는 토종 복분자에 농약도 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다. 그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친환경농산물 인증을 받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는 농약을 치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유기농산물로 지정해주지는 않는다. 첫해에 저농약 인증, 2년째에 무농약 인증, 3년째에 전환기 유기농산물 인증을 받고 난 뒤 빨라야 4년째에 유기농산물 인증을 부여한다. 천 씨는 3년차인 전환기 유기농산물 단계에 있는 것이다.

토종 복분자를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직접 복분자 와인을 만들어 파는 천 씨, 비록 비싸지만 한정 생산하고 복분자의 효능을 한껏 발현시킨 상품을 만들어내는 천 씨, 그래서 몸에 좋은 특산물을 내놓는 천 씨. 그를 보면 우리 농업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듯하다.



주간동아 2005.09.06 501호 (p90~91)

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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