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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순직보다 자살이 더 많은 제복 공무원의 슬픈 자화상

방탄복 사비로 사는 경찰, 구조 중 부상 알아서 치료하는 소방관…침과 욕설, 굴욕이 더 괴로워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순직보다 자살이 더 많은 제복 공무원의 슬픈 자화상

순직보다 자살이 더 많은 제복 공무원의 슬픈 자화상

10월 19일 오패산 터널 사제총기 난사사건으로 순직한 김창호 경감. 이 사건을 계기로 제복 공무원에 대한 예우가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뉴스1]

10월 19일 서울 강북구 번동 오패산 터널 인근에서 사제총기 난사로 경찰관 1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순직한 김창호(54) 경감은 1989년 순경 공개채용(공채)으로 입직한 28년 차 베테랑 경찰관이다. 김 경감의 순직에 시민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애도의 글을 올리며 고인과 유족을 위로했다.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경찰관, 소방관 등 이른바 ‘제복 공무원’에 대한 예우가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경감처럼 업무 중 사고로 순직한 경찰은 최근 5년간 75명에 달한다. 한 해 15명꼴로 숨지는 셈이다. 소방공무원도 최근 5년간 33명이 순직했다. 물론 제복 공무원의 직무는 위험을 수반하며, 이들 역시 언제든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업무에 임한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제도가 더욱 절실함에도 많은 제복 공무원이 열악한 환경에서 오늘도 힘겹게 업무를 수행 중이다.



제복 이름표 보고 욕설에 행패

2013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스트레스가 높은 직업 1위는 경찰관이다. 교대 근무의 고충, 긴장 상태의 밤샘 근무, 불규칙한 생활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현장에 배치되는 인력이 늘 부족한 치안 담당 경찰관이 느끼는 업무 강도는 더욱 크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관 1명이 담당하는 국민은 평균 462명이며, 일선 현장에서 뛰는 경찰관(순경~경사) 1명이 담당하는 국민은 594명에 달한다. 참고로 선진국 경찰관의 인당 담당 인구는 400명을 넘지 않는다(독일 305명, 프랑스 322명).

특히 파출소 인력은 늘 부족해 직원들 사이에서 ‘땜빵 근무’가 일상화돼 있다. 예를 들어 순찰차가 5대인 파출소의 경우    2인1조로 총 10명의 경찰만 배치된다. 보조인력이 전혀 없어 해당 근무자가 자리를 비울 경우 다른 직원이 대신 근무를 서야 하는 구조다. 경기 부천시에서 근무하는 A경사는 “교육이나 출장이 걸리면 나 대신 누군가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굉장히 눈치가 보인다. 아파도 아플 자유가 없고,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생겨도 맘 편히 휴가를 낼 수 없다”고 토로했다.   



철야 근무 중 취객을 상대하는 일은 베테랑 경찰관도 피하고 싶어 하는 업무 가운데 하나다. 욕설을 퍼붓고 폭행을 휘두르는 취객 앞에서 경찰관은 자괴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천부평경찰서 한 지구대 소속 경찰관 B씨는 “밤에 신고를 받고 나가면 취객에게 멱살을 잡히거나 욕을 먹기 마련이다. 지구대에 근무하면서 얼굴에 침 한 번 안 맞아본 경찰관은 없을 거다. 새파랗게 어린 사람한테 당할 때는 울화통이 터진다. 하지만 하소연할 데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여유도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관 C씨도 “제복에 붙어 있는 명찰을 보고 이름을 부르면서 욕할 때는 정말 참기 힘들다. ‘내가 이런 수모를 당하려고 어렵게 경찰이 됐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와 며칠 동안 우울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경찰 사이에서는 외국처럼 제복에 이름표와 계급 등을 일절 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우울증 혹은 트라우마로 이어지는 경우도 상당하다. 지난 5년간 자살한 경찰관은 총 106명으로, 순직한 경찰관보다 더 많다. 올해도 8월까지 자살을 택한 경찰관은 총 20명이며, 그중 가장 많은 원인이 우울증이었다. 살인사건이나 대형사고 등 충격적인 현장과 죽음을 자주 목격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많은 경찰관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전문적으로 치유하고자 2014년부터 의료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병원 내 ‘경찰 트라우마 센터’를 운영 중이지만, 전국에 4곳밖에 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관할 외 직원의 이용률은 15%에도 못 미친다.  

범인 검거 시 경찰관을 보호해줄 수 있는 보호장비마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오패산 터널 사제총기 난사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드러났듯 경찰관의 방탄복 지급률은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게다가 파출소와 지구대에 배치된 방탄복은 낡고 무게가 10kg이 넘어 현장에서 입고 근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시중에서 판매하는 방탄복이 더 성능이 좋고 가벼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앞으로 3년에 걸쳐 미국 방탄복 품질 규정인 ‘레벨3’ 이상 급의 유리섬유로 된 방탄복을 보강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예산상 원활하게 보급될지는 미지수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6000여 개를 구매할 예산만 확보한 상태로, 이 수량으로는 순찰차당 2개를 지급할 수 있고 파출소에 필요량을 비치할 경우 1급지 경찰관서에도 다 보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유족연금

순직보다 자살이 더 많은 제복 공무원의 슬픈 자화상

지구대나 파출소 등 치안 현장에 배치되는 경찰력은 늘 부족한 상황이다(왼쪽)[동아일보]. 화재 진압 후 생수 한 병으로 열을 식히고 있는 소방관.  [뉴스1]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경찰관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자비로 신형 방탄복을 구비하고 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경찰 스스로 위험을 방지하라는 공문이 내려오곤 하는데, 일선에서 열심히 뛰는 직원들을 위해 보호장비라도 의무적으로 지급해주면 좋겠다. 범인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가지고 현장에 나간다는 건 그야말로 난센스이지 않나. 내 돈 주고 직접 방탄복을 구매하겠다는 경찰관이 꽤 있다”고 말했다.

제복 공무원의 순직을 둘러싸고 합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라는 ‘의무’만 강요할 뿐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해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현재 순직공무원의 유족급여는 민간의 산업재해보상 대비 53~75%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순직공무원에 대한 보상은 유족 수나 생계유지 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재직 기간에 따라 유족연금을 차등 지급한다. 그 결과 근속연수가 짧은 경찰이 순직할 경우 유족은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연금을 받을 수도 있다.  

장신중 경찰청 인권센터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보상 규모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내가 잘못되더라도 가족은 걱정 없다’는 믿음이 있어야 고인이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소방공무원의 처우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밤낮 없이 화재·재난 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이들은 화재 진압 중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돼 암에 걸려 숨졌을 때도 순직(위험직무 순직)을 인정받기 어렵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암에 걸린 소방관이 위험직무 순직을 인정받은 것은 18명 중 1명뿐이다. 2014년 6월 숨진 김범석 소방관의 유족은 2년째 정부와 소송 중이고, 지난해 벌집을 제거하다 말벌에 쏘여 과민성 쇼크로 숨진 이종태 소방관 역시 소송 끝에 지난 9월 순직을 인정받았다. 또 5월 강풍 피해지역에서 복구 작업을 하던 강원태백소방서 허승민 소방장과 10월 5일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차바’로 고립된 마을 주민을 구조하다 강물에 휩쓸려 사망한 울산온산소방서 강기봉 소방교 등 올해도 소방관 2명이 재난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소방관의 순직 또한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10월 5일 숨진 강 소방교 역시 구조대원이 아니라 구급차에 탑승해 긴급 환자를 응급 처치하는 ‘구급대원’이었다. 국민안전처의 ‘2012 이후 소방력 대비 인원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소방인력이 1만9837명이나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소방인력 기준에 관한 규칙상 현재 필요한 소방인력은 5만1143명이지만 지난해 말 소방인력은    3만1306명(3교대 기준)에 그쳤다. 경력 9년 차인 D소방관은 “구조대는 5명이 한 팀이고, 구급대는 3명이 한 팀이다. 따라서 구조구급대는 총 8명이어야 하지만 현재 7명밖에 근무하지 않는다. 1명이 휴가를 가면 구급차에 2명밖에 탑승할 수 없다 보니 위험 노출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인원이 모자라 마음 놓고 휴가를 가기도 쉽지 않다. 명절 때 당직 서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소방관들 역시 업무 중 가장 힘든 점으로 ‘정신적 충격’을 꼽는다. 사건을 처리하던 중 다치거나 사망하는 동료를 보면 그 잔상이 오랫동안 남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소방본부에 따르면 전체 소방관의 10.8%가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은 상시적으로 무력감과 피로감에 시달리는데, 이는 일반인이 우울증에 걸릴 확률(2.4%)보다 4배나 높은 수치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자살한 소방관 수(35명)가 같은 시기 순직한 소방관(33명)보다 많은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D소방관은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얼마 전 TV 뉴스에서 순직한 소방관의 사연을 보고 ‘아빠는 소방관 말고 다른 일 하면 안 돼’라고 물어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좋아 선택한 직업이지만, 나 때문에 늘상 마음 졸이는 가족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소방관서 평가에 손발 묶인 소방관들

순직보다 자살이 더 많은 제복 공무원의 슬픈 자화상

경찰, 소방관 등이 태풍 ‘차바’로 고립된 마을 주민을 구조하는 장면. [사진 제공 · 울산중부경찰서]

사실 소방관이 화재 현장만큼 무서워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소방관서 평가다. ‘전국 소방관서 종합평가’(국민행복소방정책)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내실 있는 소방정책을 유도하고자 국민안전처에서 수립한 것으로 8개 분야, 21개 시책, 49개 지표에 따라 점수를 매겨 연말 우수 관서 및 시도에 장관표창을 수여하거나 국고보조금을 교부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소방관에게 족쇄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국 소방관서 종합평가에 의하면 대형화재가 발생하거나 부정적인 내용이 언론에 보고되도 감점을 받는다. 이러한 가혹한 평가지표는 소방관의 사명감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기 저하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자신이 근무하는 소방서에 피해가 갈까 봐 업무 중 일어나는 상해는 소방관이 직접 자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구조 중 부상을 당해도 알아서 치료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소방관은 직무위험군에 속한다는 이유로 민간보험 가입조차 쉽지 않아 치료비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서울소방재난본부 소속 한 소방관은 “화재신고를 받고 출동하다 접촉사고를 내도 그 비용을 담당 소방관이 내거나 같은 팀 소방관들이 십시일반 돈을 거둬 메운다. 얼마 전에는 노인 혼자 계신 집에 불이 났다고 해서 가족 동의하에 도어록을 제거했는데, 알고 보니 엉뚱한 집이어서 도어록 비용을 사비로 물어줬다. 구조활동 중 옷이 찢어져도 각자 알아서 수선해야 한다”며 한숨을 지었다.

전국 소방관서 종합평가의 또 다른 폐해는 소방관을 이유 없이 ‘죄인’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민원이 발생할 경우 이 또한 평가에 반영돼 소방관은 어떤 상황에서든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 한 소방관은 “현장에 나가면 도가 지나칠 정도로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 많지만 그때 얼굴 표정 하나라도 흐트러지면 바로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꾹 참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제복 공무원의 처우 개선에서 가장 선결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들을 대하는 시민의 성숙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주간동아 2016.11.02 1061호 (p38~40)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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