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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씬 시티’

폭력의 도시 주먹 퍼포먼스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폭력의 도시 주먹 퍼포먼스

폭력의 도시 주먹 퍼포먼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신작 ‘씬 시티’의 온전한 제목은 ‘프랭크 밀러의 씬 시티’다. 이 영화는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거창하게 들리지만 비싸게 만들어 파는 만화책을 그저 멋있게 부르는 이름이다)에서 이야기를 따와 각색한 것이며, 프랭크 밀러는 이 영화의 공동 감독이기도 하다.

로드리게즈는 프랭크 밀러에게 공동 감독 타이틀을 주기 위해 감독협회를 탈퇴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로드리게즈가 원작과 프랭크 밀러에 대해 품고 있는 경외감과 존경심을 여러분도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로드리게즈에게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은 창작의 재료가 아니라, 조심스럽게 순수성을 유지시키며 영화라는 장르로 이식해야 하는 소중한 존재다.

영화의 제목 ‘씬 시티’는 무대가 되는 ‘Basin City’의 별명이다. 타락한 정치가들과 경찰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이 썩은 세상은 세 사람의 터프가이에게 피 튀기는 폭력과 고백의 무대가 돼준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하는 형사 하티건은 상원의원인 아버지의 비호를 받는 사악한 로크 주니어에게서 낸시라는 소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경력과 생명까지 바친다.

미키 루크가 라텍스 분장을 하고 연기하는 추한 외모의 밑바닥 터프가이 마브는 자신을 친절하게 대했던 유일한 여자인 매춘부 골디를 죽인 악당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학살한다. 클라이브 오언이 연기한 드와이트는 우연히 함께 밤을 보낸 웨이트리스 섈리를 지켜주기 위해 나서다가 갱들과 매춘부들이 벌이는 전쟁의 한가운데에 뛰어들게 된다.

‘씬 시티’에서 의미 있고 진지한 줄거리를 찾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폭력과 악에 절어 있는 끔찍한 세계 속에서 온갖 고통을 다 당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들은 진지한 드라마가 아니라 지난 몇십 년 동안 쌓인 필름누와르 장르의 공식들을 노골적으로 흉내 낸 것이다.



‘씬 시티’ 세계의 악과 폭력은 현실세계의 사람들을 위협하는 진짜 악과 폭력이 아니라 고독하고 폼나는 남자 주인공들의 거의 자학적이기까지 한 학살과 폭력, ‘폼생폼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다. 아니, 생각해보면 그 남자 주인공들 역시 장르에서 독립적인 존재는 아니다. 브루스 윌리스, 미키 루크, 클라이브 오언이라는 좋은 배우들이 근사하게 연기하지만, 그들은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아니라 장르의 원형이며 캐리커처다.

그러나 이건 영화의 단점이 아니다. ‘씬 시티’는 줄거리나 주제가 아닌 스타일의 향연이다. 로드리게즈와 밀러 감독은 HD로 찍고 군데군데 컬러를 입힌 이 흑백영화를 무시무시할 정도로 성공적인 40년대 필름누아르와 만화책의 잡종으로 만들었다. 내용만 따진다면 ‘씬 시티’는 거의 공허하기까지 하지만 그 스타일의 힘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빈자리는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5.06.28 491호 (p82~83)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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