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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기승 생활치안 잠자나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담배 등 도난 빈번 … 일부 피해자는 신고 기피 ‘자체 방어’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좀도둑 기승 생활치안 잠자나

좀도둑 기승 생활치안 잠자나
5월 중순경 서울 관악구 신림2동 전모(26) 씨의 오피스텔에 도둑이 들었다. 도둑이 훔쳐간 것은 노트북 한 대. 불과 3주일 전에 200여 만원을 주고 산 최신형 IBM 노트북이었다. 도둑은 노트북뿐만 아니라 어댑터와 노트북용 프로그램 CD, 그리고 노트북 가방까지 ‘한 세트’로 들고 나갔다. 전 씨는 노트북은 책상 위에, 노트북 가방은 방 한쪽 구석에 놓아뒀었다. 도둑은 방 안을 모두 다 뒤져 노트북 사용에 필요한 물품만 몽땅 챙겨 나간 셈. 전 씨는 “노트북만 들고 나가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까 가방까지 챙겨 자연스럽게 동네를 빠져나간 것 같다”며 불쾌해했다.

전 씨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현관문 잠금장치를 번호키로 바꿔 달았다. 전 씨는 “요즘 동네에 도둑 드는 집이 자주 생기지만 경찰이 범인을 검거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면서 “어차피 범인을 잡지도 못할 텐데 현장 조사하고 진술서 쓰는 노력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 수박 서리 맞은 정도 생각”

‘좀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여기까지 경찰 수사력이 미치지 못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불만이 높다. 올해 4월 말까지 서울대에서만 15건의 절도사건이 경찰에 접수됐는데 이중 3건만 범인이 검거됐을 정도. 지난해에는 같은 기간에 접수된 총 35건의 절도사건 중 단 1건만 범인이 붙잡혔다.

서울 목동에서 레저용품점을 운영하는 김모(33) 씨는 “경찰이 도둑 든 걸 수박 서리 맞은것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매우 섭섭했다”고 털어놓았다. 새벽 4시경 도둑이 들어 포켓바이크(레저용 소형 오토바이) 한대와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 500여 만원어치를 훔쳐갔다. 경찰이 현장조사를 벌였지만 지문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김 씨는 몇몇 의심되는 동네 아이들을 경찰에 귀띔해줬다. 그러나 별다른 혐의가 발견하지 못했다. 김 씨는 “경찰 수사는 거기서 끝이었다”면서 “해결해야 할 강력사건들이 많다는 건 이해하지만 별일 아닌 사건으로 취급하는 것 같아 서운했다”고 말했다.



대신 김 씨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체 방어’에 나섰다. 60만원을 들여 가게에 감시카메라(CCTV)와 적외선탐지기를 단 것. 누군가 침입하면 적외선탐지기가 이를 감지하고 외부에 자동으로 연락한다. 그러나 김 씨는 연락받는 곳을 순찰지구대(옛 파출소)가 아닌 자신의 휴대전화로 해두었다. 김 씨는 “가게 근처에 살기 때문에 3분이면 출동할 수 있다”면서 “경찰만 믿고 있기는 불안하다”고 말했다.

최근의 절도범 검거율은 갈수록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찰백서에 따르면 2002년 절도사건 검거율은 72%(17만5457건 중 12만5593건)에 달했지만 2003년에는 66%(18만7352건 중 11만4920건), 2004년에는 52%(15만5393건 중 8만570건)로 계속 하강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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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나 원룸, 오피스텔에서 절도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03년보다 절도 발생 건수가 무려 3만2000여건이 줄었지만 검거율은 오히려 14%나 떨어졌다. 발생 건수의 감소에 대해 경찰청 생활안전과는 “작년 한 해 동안 야간 방범순찰 활동을 강화한 성과”라고 설명하지만, ‘숨은 범죄’의 증가 때문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응렬 교수(계명대 경찰행정학과)는 “절도사건의 절대 건수가 한 해 만에 이처럼 크게 줄어들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어차피 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아예 신고하지 않는 ‘숨은 절도사건 피해자’들이 늘어났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학가 근처에 원룸 건물을 갖고 있는 최모(45) 씨는 “젊은 친구 혼자 사는 원룸에 좀도둑이 드는 일이 이 동네에서 자주 일어나지만 피해 액수도 그리 크지 않아 세입자나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면서 “대신 건물 입구에 CCTV를 달고 ‘좀도둑을 조심하라’는 벽보를 붙여 세입자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장모(35) 씨도 지난해 11월 800여 만원어치의 담배를 도둑맞았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도둑은 새벽 3시경 절단기로 자물쇠를 자르고 들어와 보루 담배만 몽땅 털어갖고 나갔다. 현금보관함은 아예 건드리지 않았다. 장 씨는 “담배를 도둑맞은 슈퍼마켓이 몇 군데 더 있었으나, 경찰에 신고해도 범인이 잡히는 경우가 없었다”면서 “귀금속이나 전자제품과 달리 담배는 팔아치우면 그만이기 때문에 범인이 잡혀도 도둑맞은 담배를 돌려받을 길은 없을 것 같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민간경비업체에 가입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빈집’ 절도의 경향도 바뀌었다.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집에 현금을 두는 경우가 드물어 ‘현금 절도’가 크게 줄었다. 또 TV를 훔쳐가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노트북이나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등 ‘중고시장’이 탄탄하게 형성된 물품이 즐겨 도난당한다. 특히 대학교 안에서나 자취방, 원룸, 오피스텔 등에서의 절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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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인근의 한 원룸에 붙어 있는 주의문.

범죄 예방 활동 더욱 신경 써야

필요한 물건만 챙겨가는 것도 요즘 좀도둑의 특성. 5월 경기의 한 신혼부부의 아파트에 도둑이 들었는데, 집 안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도둑이 훔쳐간 것은 17인치 컴퓨터용 LCD 모니터 한 대뿐이었다. 피해를 본 정모(31) 씨는 “컴퓨터 본체는 무겁고 돈이 별로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가져가지 않았다”면서 혀를 내둘렀다. 4월에는 서울 신림9동의 한 비디오가게에 ‘노트북 좀도둑’이 들었다. 도둑은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카운터에 놓아둔 노트북만 들고 사라졌다. 현금 등은 전혀 손대지 않았다. 최근에는 담뱃값이 인상되면서 소매점에 침입해 담배만 털어가는 ‘담배 절도’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갈수록 떨어지는 절도사건 검거율에 대해 경찰청 형사과 관계자는 “절도범을 특별단속할 때는 전체 검거율이 크게 올라가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낮아진다”면서 “최근 철야근무를 없애는 등 형사들의 근무체계를 개선한 것도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는 학교, 조직, 정보지, 사이버폭력 등 4대 폭력사건 위주로 특별단속을 하다 보니 절도사건의 접수 건수와 검거율이 모두 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은 절도범이 현장에 남기는 단서가 거의 없어 검거가 힘들다고 토로한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박모 형사는 “요즘엔 초범이라도 지문을 남기지 않는 것이 상식”이라며 “20여건의 사건을 동시에 맡고 있는 형사 처지에서는 별다른 증거가 없는 사건에 매달릴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했다.

2003년 8월 파출소가 순찰지구대로 개편한 것도 절도사건의 발생을 늘리고 검거율을 낮추는 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3개의 파출소가 1개의 순찰지구대로 개편되면서 담당하는 구역이 넓어지고 도보순찰이 거의 유명무실해지다시피 하면서 방범활동이 느슨해졌다는 것. 순찰지구대 개편으로 강도나 살인 등 강력사건이 발생했을 때 긴급출동하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도보순찰 등 지역주민들과 밀착하여 범죄를 예방하는 활동은 줄어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절도는 생활치안의 바로미터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2000년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범죄 피해를 당할까봐 가장 두렵다고 말하는 범죄 유형은 주거침입범죄(46.7%)와 주거침입강도(44.7%)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응렬 교수는 “단순 절도인 경우 인명 피해가 없고 피해액수가 크지 않아 사소한 사건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지만 피해자 처지에서는 두려움이 큰 만큼 경찰이 이 분야의 수사에 대해서도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주간동아 2005.06.28 491호 (p38~39)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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