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2

2005.04.26

유홍준 청장 너무 세게 일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 국토가 업무 영역 … 실속 있는 문화재 보호와 복원 필요한 때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5-04-20 11: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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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문화 담당 기자들의 일과는 문화재청에서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용은 대개 이런 형식이다.

    ‘문화재청 보도자료 발송-××× 내용 관련’.

    특히 독도 문제, 불국사 골프연습장, 양양 낙산사 화재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문화재청발 보도자료와 문자메시지도 숨가쁘게 날아왔다. 한 번에 3건의 자료를 내기도 하고 하루에 세 번씩 기삿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문화재청의 업무 영역이 이렇게 넓은지 새삼스럽기도 하고 과연 ‘전 국토가 문화재와 천연기념물’인 것이 실감나기도 했다.

    유홍준 문화재청장 취임 후 문화재청에서 내는 보도자료가 수적으로 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청장 개인의 ‘스타 파워’가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유 청장 취임 당시 시행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 중 문화재청을 알고 있는 사람이 29%에 그쳤는 데 비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교수를 안다는 사람은 44%에 이르렀다고 한다. 같은 정책 발표, 같은 기자간담회더라도 ‘유홍준 청장이기 때문에’ 언론은 더 큰 관심을 갖고, 대중의 주목과 이해도 높아진다. 특히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그의 말은 내용에 상관없이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다.

    ‘스타 파워’ 언론 대대적 관심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외교통상부 대변인의 의례적 ‘유감’ 성명 이후 처음으로 정부 대책을 밝힌 사람도 유홍준 문화재청장이었다. 당시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의원들의 유럽 순방에 동행했던 유 청장은 일정을 앞당겨 귀국, 3월1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천연기념물 제336호인 독도에 일반 국민이 최대한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응안을 내놓아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문화재청장이 그가 아니었다면, 정부 최초의 독도 대응 발언이 문화재청으로부터 나왔을까. 또한 이처럼 큰 대중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을까.

    또 4월4일 불국사 간이골프장 설치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문화재청은 즉시 “이를 복구하도록 지방자치단체에 조처했다”고 발표했다.

    이틀 뒤인 6일 양양 산불로 재만 남은 낙산사 화재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유 청장이었다. 유 청장은 정부 관료로서 ‘복권 기금에서 확보한’ 국고 30억원 지원을 약속하고, 전문가로 문화재 복원을 자신함으로써 낙산사 소실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덕분에 ‘국고가 아니라 그동안 징수한 문화재 관람비로 복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매우 정당한 문제 제기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원래 유 청장은 5일 식목일에 독도에서 ‘나무심기’ 행사를 할 예정이었는데 산림청과 해군 양쪽에서 헬기를 섭외하는 데 실패하는 바람에 구설에 오르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독도에 못 간 덕분에 그는 화재가 진화되자마자 곧바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휴일을 맞아 골프를 했던 ‘불운한’ 총리와 비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유 청장은 이처럼 숨가쁜 일정 틈틈이 문화유산 대중 강연도 빼놓지 않는다. 2004년부터 시작한 대중 상대 문화유산 강좌는 점점 더 인기를 얻어 다른 지방 도시에서 특강을 마련할 정도다. “아침에 화장실 갈 시간이 없다”는 유 청장 자신의 말이나 ‘대전청사에서 간부 회의와 대중강연이 열리는 월요일을 빼면 유 청장은 일주일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닌다’는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닐 듯싶다.

    유 청장은 문화재청과 우리 문화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언론 홍보에 나설 뿐 아니라 대중도 직접 설득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과의 취임 인터뷰 이후 ‘유 청장의 문화재청 답사’는 계속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유 청장은 유명 정치인들이 출연에 목을 맨다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취임 후 8개월도 안 돼 세 번이나 출연했고, 낙산사 화재 건으로 며칠 새 8차례나 언론 인터뷰를 했다.

    물론 언론과 대중이 그에게 늘 호의적이지는 않다. 취임 열흘 만에 그가 전통 자물쇠를 들고 나와 문화재에 달린 미제 열쇠를 바꾸겠다고 한 것을 시작으로 광화문 현판 글씨 교체, 현충사 관련 발언 등에 대해 집중적인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낙산사 화재 현장에서 그의 태도와 말을 문제 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언제 문화재청이 이렇게 유명해진 적 있느냐”는 그의 말처럼 문화재청이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으로 일반인들에게 우리 땅, 우리 문화재를 다시 ‘보게’ 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의 문화재청 뉴스와 청장을 둘러싼 공방은 장기적인 문화재 정책 구도에서 세워진 정책에서 나온다기보다 말 그대로 스타의 ‘가십’과 비슷하다. 유 청장의 정책도, 반대파의 비난도 돌출적인 가십의 깊이로만 취급된다. ‘광화문 현판’은 광화문 폭격 전 모습으로의 복원이라는 방법이 있음에도 성급히 정조 안이 제시되는 바람에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졌고, 낙산사 화재 현장에서도 유 청장의 태도가 비판을 받았다.

    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학자로서 낙산사 문화재에 대한 유 청장의 평가는 틀린 것이 없다. 문화재청이 정말 비판받아야 할 것은 화재 현장을 성급하게 청소함으로써 화재에 대비하여 문화재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연구할 기회를 없앴다는 것이다. 또 녹아내린 동종을 끌고 와 언론에 공개할 것이 아니라 재해 현장에 두고 원인 연구를 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 청장이 경찰청 헬기로 건축가 승효상 씨와 함께 독도로 날아간 것은 전형적인 스타의 제스처”라고 말한다. 승효상 씨가 현재 한국 최고의 건축가라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왜 그가 ‘독도 시설물 리뉴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탁상행정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개인적 추진력에서 나온 현장 답사형 아이디어 역시 현실화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될 위험도 높다. 3월 중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받겠다던 광화문 현판 문제는 4월 중으로 미뤄졌고, 4월1일 공개한다던 경회루 개방도 연기됐으며, 4월30일 독도 개방에 맞춘다는 ‘시설물 리뉴얼’ 프로젝트도 약속 날짜를 넘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니,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할 일을 굳이 그날에 맞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참여정부는 스타 관료를 통해 문화 정책을 개혁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유 청장 이전에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있었다. 이 전 문광부 장관도 취임 초 거의 매일 쏟아지는 가십으로 문광부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를 높였다. 그러나 조직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스타가 사라지거나 인기가 떨어지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그에게 거는 문화계의 기대는 여전히 적지 않다. 특히 유 청장은 청계천 복원과 개발 등을 둘러싸고 서울시의 ‘개발주의 문화’에 ‘보존과 복원’으로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스타’다 .

    유 청장은 광화문 현판으로 홍역을 앓을 때 “앞에 나서지 않고 문화재 복원과 우리 문화재의 유네스코 등재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낙산사 화재 이후 ‘개인적인 인터뷰는 당분간 자제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스타에게는 스타의 전략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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