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문화

대박 기획展 공공미술관은 ‘한숨’

블록버스터 전시회 장소만 빌려줘 … 관객 동원 욕먹고 뒤치다꺼리가 ‘현실’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대박 기획展 공공미술관은 ‘한숨’

대박 기획展 공공미술관은 ‘한숨’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서양미술 400년展’은 하루 1만2000명을 동원했다

3월 26일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주5일 수업이 시행된 토요일이었다.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김지선 씨는 고민 끝에 첫 ‘가정학습’으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양미술 400년展’을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김 씨뿐이 아니었다. 미술관은 관람객들로 가히 터져나갈 듯했다.

미술전 하루 관람객 수로는 최고 기록인 1만2000명 이상이 입장했고 기다리다 지쳐 돌아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김 씨 가족은 2만8000원(어른 2인과 어린이 1인)을 내고 1시간가량 줄을 서 들어갔지만, 인파에 밀려 흘러내리는 땀과 뒷사람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을 견디지 못하고 10분 만에 돌아나오고 말았다. 2층과 3층으로 나뉜 전시장과 복잡한 동선으로 인해 제대로 감상하긴 아예 틀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20여점 대부분은 프랑스 랭스시립미술관 소장작이고 오르세미술관 1점, 루브르 2점 등 단 10여점만이 다른 미술관 소장품이어서 ‘8개 프랑스국립미술관이 참여했다’는 선전이 과장으로 느껴졌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는 ‘마라의 죽음’(다비드 작)도 도판을 통해 많이 본 그림(브뤼셀 왕립미술관 소장)이 아니라 랭스미술관 소장작인데, 팸플릿에는 두 작품의 차이를 볼 수 있는 작가 다비드의 글씨가 삭제돼 있는 것도 불쾌함을 더했다.

인원·돈 부족 자체 기획 어려움

이 같은 불만을 가진 사람은 김 씨 한 명뿐이었을까. 한 관람객은 예술의 전당 인터넷 게시판에 ‘입장료가 아까운 게 아니라 예술의 전당 수준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생각해보세요, 큐레이터라면 누구도 이런 전시를 하고 싶어하지 않아요.” 예술의 전당의 한 학예사는 냉소적으로 말했다.

‘서양미술 400년展’은 예술의 전당이 공동 주최자로 올라 있지만, 대관료만큼 ‘지분’으로 참여했을 뿐 실제론 기획에 전혀 간여하지 ‘못한’ 전시다. 전시업체가 전시를 기획하고 디스플레이는 랭스미술관에서 맡았기 때문이다. 대관료 비중이 전체 기획비에서 얼마 되지 않아 예술의 전당은 이 같은 ‘블록버스터’전이 아무리 대박을 터뜨려도 전기료, 청소비 등을 빼고 나면 상대적으로 남는 게 없다. 그러나 무리한 관객 동원으로 욕을 먹는 것은 전시업체가 아니라 공공미술관인 예술의 전당이다.

“전시에 ‘서양미술 400년’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이 무리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전시업체에 강력하게 반대하지 못한 건 우리가 돈이 없어서죠.”(예술의 전당 학예사)

‘인상파와 근대미술전’ 이후 열린 ‘렘브란트’ ‘밀레’ ‘달리’ ‘샤갈’ 등 이른바 ‘블록버스터’전의 문제는 단지 관람객이 많아 관람이 불편하다든가, 과대포장됐다는 데 있지 않다.

대박 기획展 공공미술관은 ‘한숨’

서울역사박물관에서 4개월 넘게 열리고 있는 ‘톨스토이전’, 광화랑, 서울시립미술관, 세종문화회관갤러리(위부터)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들을 국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며, 가장 손쉬운 미술 대중화의 길이기도 하다. 또한 전시업체들이 많은 돈을 주고 외국 컬렉션을 들여와 ‘본전’을 뽑기 위해 장사 잘하는 것을 탓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블록버스터전에 대한 전시 비평이 아예 부재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전시에 가기는커녕 진지한 관심을 가진 미술평론가들이나 미술사학자들을 찾기도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블록버스터전의 성공이 구조적으로 공공미술관의 빈곤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신의 교수(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는 “블록버스터전에 전시장을 내주고 어떤 자체 기획도 하지 않는 공공미술관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기획전이 거의 없는 예술의 전당의 경우 거대한 6개의 전시장을 3명의 학예사가 꾸려나가야 하는 실정으로 애초부터 튼실한 기획이란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방송기금 4억원을 받아 겨우 만들어오던 기획전들도 올해부터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바람에 대폭 축소됐다. 해마다 해오던 ‘세계명작전’이 취소되자 대신 ‘서양미술 400년展’에 구차스럽게 다리만 걸친 것이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의 심각한 상황은 내부뿐 아니라 감독 관청인 문화관광부에서도 알고 있다. 그러나 문화관광부조차 “기획예산처에서 ‘전시 안 해도 굶어죽는 거 아니지 않냐’는 태도라 우리도 안타깝다”고 말한다.

수백억원을 들여 새로 지은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서울역사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또 ‘인상파와 근대미술전’을 유치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거장의 숨결’ 등을 벌인 세종문화회관 갤러리, 법정 소송까지 간 ‘달리’전으로 얼룩진 디자인미술관도 정도 차이만 있을 뿐, 공공미술관의 예산 부족이나 기획 부재를 블록버스터전으로 어설프게 채우고 있는 것이다.

‘마구잡이 유치’ 이젠 개선 필요

서울시립미술관은 2004년 7월15일~10월15일까지 샤갈전을 열어 50만명을, 부산시립미술관은 2004년 12월7일부터 올해 2월13일까지 같은 전시로 20만명을 끌어모았다. 서울역사박물관은 2004년 12월10일부터 올해 4월17일까지 톨스토이전을 열고 있다. 원래 3월27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장된 데 대해 대외적으로는 ‘교육계의 요청에 따라’라고 하지만, ‘이후 대관이 되지 않아 하루라도 임대료를 더 벌기 위해서’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하지만 이는 동일 전시를 3개월 넘게 하지 않는다는 자체 대관 원칙을 어긴 것이기도 하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공공미술관에서 일하는 학예사나 전문 큐레이터들은 이 같은 블록버스터전의 ‘마구잡이식 유치’에 불만이 커질 대로 커져 있다.

“이름만 공동기획이지 미술관은 큐레이팅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 오면 우산꽂이 설치하고 바닥 닦는 게 미술관 직원들의 일이다. 미술관에서는 입장객 한 명당 700~800원 하는 입장료 챙기는 게 전부인데, 과다한 입장객 수용으로 인한 건물 노후 피해, 함량 미달 기획이나 과다 인원 수용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 등은 모두 미술관으로 돌아온다.”(공공미술관 큐레이터)

또한 블록버스터전이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앞뒤 예정된 전시가 기형적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다반사인데, 일단 전시업체와 미술관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 주객이 전도돼 전시업체가 연장전을 일방적으로 언론에 흘려 미술관이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르는 경우도 있다는 것.

전시업체들이 공공미술관을 선호하는 것은 코엑스 전시장 임대료의 절반도 안 되는 싼 비용 때문이지만, 공공미술관의 권위를 ‘공짜’로 가져올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기도 하다. 관람객들이 예술의 전당이나 시립미술관을 보고 1만원 안팎의 비싼 입장료를 내고 오는 것이지, 전시업체를 보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미술관 큐레이터들은 블록버스터전들을 공공미술관에서 수용함으로써 한국 미술 발전의 기회를 싹부터 잘라버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공미술관이 해외전을 유치할 능력이 있어요. 또 해외전을 기획하면서 전문 인력이 크기도 하고요. 공공미술관이 직접 해외전을 유치하면 이익을 몇 개 업체들이 나누지 않아도 되니까 시민들은 싸게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지요.”

그러나 당장의 이익 때문에 공공미술관을 전시업자들에게 내주고, 전시의 품질에 대한 어떤 비평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국민 세금으로 미술관을 지어 전시업체와 외국 미술관들 배만 불려주는 셈이 된다. 한 큐레이터는 “블록버스터전이 성공해도 세계 미술계에서 우리는 변방의 미술관입니다. 누가 우리 미술관에 미술품을 빌려주겠어요?”라고 말한다.

최근 학예사 한 명이 과로로 사망하기도 했던 부산시립미술관의 안규식 학예사는 “상황은 여전히 열악하지만, 우리가 더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마구잡이로 블록버스터전을 받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을 타개할 방법이 미술인 개개인의 양심과 헌신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미술인들이 블록버스터전의 성공을 통해 뒤늦게 공공미술관의 빈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 또한 중장기 발전안을 내놓은 마로니에 미술관과 광화랑 등을 오픈하며 재정비를 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갤러리 등에서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는 점이다.

“전시 기획은 전문적이기도 하지만 매우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해요. 양심 있는 미술인들이 이제 공공미술관의 문제에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박신의 교수)



주간동아 2005.04.12 480호 (p80~8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27

제 1227호

2020.02.21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