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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하면 면죄? 그들은 죽었다

육군 선박 전복사고 초동대처 미흡 지적 … 유족들 “어민 로프 때문에 침몰 납득 안 가”

  • 정재윤 가지/ 동아일보 기획특집부 jaeyuna@donga.com

보고만 하면 면죄? 그들은 죽었다

보고만 하면 면죄? 그들은 죽었다

3월26일 작전 중 침몰한 육군 소형 선박에 탑승해 있던 병사들의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119구조대와 군.

3월26일 밤, 한강 하구에서 작전 중이던 육군 소형 선박이 전복돼 병사 4명이 사망했다. 군 당국이 밝힌 사고 원인은 “어민들이 설치해놓은 로프에 소형 선박의 스크루 날개가 걸려 침몰했기 때문”.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고는 당국이 조금만 더 안전대책을 세우고 초동대응을 빨리 했으면 피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사고 이튿날인 27일 오후 11시3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통합병원 강당에서는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군 당국의 브리핑이 열렸다. 육군 17사단장 이하 부대 관계자들이 유족들에게 사고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였다.

해당 상급부대 관계자가 시간대별 사고 경위를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정진구 상병 등 장병 10명은 오후 6시49분 부소대장 인솔 아래 경기 김포시 풍곡소초에서 선착장으로 출발했고, 7시 정각 1.5t짜리 순찰용 소형 선박에 탑승해 작전에 투입됐다.

배가 침몰한 시각은 오후 7시10분. 이 시각 인근 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는 “사람 살려”라는 소리를 두 번 들었고, 상황병이 이를 즉시 소대장에게 보고했다. 7시13분 소대장은 초소 앞에 있는 39소초에서 중대장에게 사고 발생에 관해 보고했다. 그러나 경비정이 사고 현장을 향해 출동한 시각은 7시47분. 사건이 일어난 지 무려 37분이나 지난 뒤였다.

첫 경비정 출동까지 40분 걸려



7시52분 초소 경비부대는 CCTV(감시카메라)를 통해 병사 2명이 강물에 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김포 소방대에 구조 지원을 요청했다. 이 같은 상황이 사단에 보고된 것은 사건 발생 50여분이 지난 7시59분. 조명헬기 지원 요청이 이뤄진 것도, 연대장이 보고를 받은 시각도 이때다. 8시부터 8시12분 사이에 송 모 하사 등 병사 3명이 구조됐다. 한편 8시5분 해당 부대 관계자는 고양 119구조대에 지원을 요청했고, 소방대는 10분 만인 8시15분 현장에 도착했다.

소형 경비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구명보트가 투입된 것은 8시25분. 119구조대와 1공수여단은

8시58분 김포대교 교각에서 2명의 생존자를, 9시12분 사고현장에서 2.5㎞ 상류인 전호리에서 정진구 상병을 포함한 2명을 구조했다. 그러나 정 상병은 병원 도착 직후 저체온증으로 숨을 거뒀다.

공수여단, 해병, 119구조대 등이 합동으로 남은 3명의 병사에 대한 수색을 벌였다. 다음날 새벽 1시50분 1공수여단 정찰중대가 행주대교 교각에서 김경호 상병과 이승기 상병의 시신을 찾아냈다. 2시15분에는 행주대교 하단 500m 지점에 떠 있는 송구진 상병의 시신이 발견됐다.

보고만 하면 면죄? 그들은 죽었다

숨진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열린 3월28일, 병사들이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영결식장에서 운구를 하고 있다

30분간 진행된 시간대별 상황 설명을 들은 유족들은 “사고 발생 뒤 첫 경비정이 출동하기까지 37분이나 걸린 이유가 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이에 대해 해당 상급부대 관계자는 “중대장이 바로 조치를 하긴 했지만, 병력도 없고 순찰용 보트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건 당시는 밀물이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한강 상류 쪽으로 휩쓸려가던 상황이었다. 반면 사고현장인 김포대교 북쪽 100m 지점에는 수중보가 설치돼 있어 경비정은 수중보 아래 지역에서만 구조작업을 벌일 수 있었다. 이 수중보는 한강을 통한 간첩 침투를 막기 위해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앞두고 건설된 것.

결국 사고 발생 1시간이 지나서야 119구조대와 인근 부대의 지원을 받아 수중보 위쪽의 구조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유족들 가운데 한 사람은 “119구조대도 10분 내에 현장에 도착해 구조작업을 하는데, 도대체 군은 37분 동안 뭘 한 것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부대 지휘관들의 소홀한 안전의식도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고 이승기 상병의 아버지 이삼현 씨는 “아들이 휴가를 나오면 항상 ‘작전지역에 어민들이 쳐놓은 그물이 많아 위험하다’고 말하곤 했다”면서 “병사들은 다 아는 위험을 부대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냐”고 물었다. 사단장은 “작전지역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병사들과 소대장, 중대장이 모두 알고 있는 위험에 대해 부대 최고책임자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1, 2차에 걸친 안전 조치를 통해 만반의 대책을 갖추고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전 조치란 1차는 구명조끼, 2차는 구조용 보트. 실제로 숨진 병사들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는 있었지만 중대장이 구조용 보트를 찾는 사이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사고 당시 수온은 5.5~5.8℃. 사고 후 2시간여 만에 구조된 정진구 상병이 저체온증으로 숨졌듯, 2시간 정도가 임계 시간이었다. 바꿔 말하면 2시간 내에 병사들을 구출했으면 모두 살릴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누굴 믿고 자식 군대 보내겠냐”

게다가 유족들에 따르면 사망한 병사들은 모두 수영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이에 대해 부대 관계자는 “병사들이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체크하지 못했다”며 “별도의 수영 교육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사고 원인에 대해서도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육군 제3군사령부 임국선 감찰참모(대령)는 3월28일 브리핑에서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사고선박으로부터 약 100m 지점에 설치된 어로용 로프에 배가 걸려 전복한 것으로, 로프는 행주어촌계 소속 어민이 해안경계 연대의 승인 없이 설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배라면 밧줄에 걸렸다고 순식간에 침몰할 수 없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군 작전지역에 어민들의 어망과 로프 등이 무작위로 설치돼 있는 것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보고만 하면 면죄? 그들은 죽었다

3월26일 상황병이 시간대별로 기록한 상황일지.

당국의 설명을 듣고 난 뒤 한 유족은 “도대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그러나 군의 대응은 “선박의 장비상태는 양호했고 초동대처에서도 특별한 문제를 찾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유가족들은 아무리 억울해도 이에 대항할 현실적인 제도가 없다. 헌법 제29조 2항은 ‘군인·군무원·경찰공무원 기타 법률이 정하는 자가 전투·훈련 등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외에 (중략) 배상은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숨진 병사의 가족은 사망보상금으로 3500여만원을 국방부로부터 받고, 보훈처로부터 매달 70만8000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정원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정상적인 직장을 가진 30대 민간인이 국가 책임으로 사망할 경우 2억~3억원의 배상금을 받는다”며 “군의 성격상 같은 정도를 요구하기는 힘들지만 현재 보상금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죽음이 청년들의 입대 기피 풍조를 낳고 군의 사기를 떨어뜨려, 결국 국방력 저하를 불러온다는 점.

정진구 상병의 유족은 “어민이 쳐놓은 밧줄 하나 때문에 4명의 젊은 인명이 희생돼야 하는 군대에 뭘 믿고 자식을 보내겠느냐”며 “자신들은 잘못한 게 없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며 모든 책임을 어민에게 떠넘기는 작태를 보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5.04.12 480호 (p54~55)

정재윤 가지/ 동아일보 기획특집부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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