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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복마전’ 상품권 시장

문화·사이버 상품권도 불법 유통 갈 데까지 갔다

신용카드 구입 통해 탈세·‘깡’성행 비자금 마련 수단으로 악용 가능성도 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문화·사이버 상품권도 불법 유통 갈 데까지 갔다

문화·사이버 상품권도   불법 유통 갈 데까지 갔다
상품권의 불법 신용카드 판매와 그로 인한 탈세는 문화, 레저, 사이버 영역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기 이전 정부의 승인을 받아 판매를 개시한 문화상품권조차 그 대열에서 빠지지 않았다. 첫 출시 이후 문화산업의 육성이라는 취지 아래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문화상품권의 지난해 매출액은 무려 1500억원. 그러나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은 각 신용카드사와 상품권 판매(가맹점) 계약을 맺지 않은 채 자신의 홈페이지인 컬쳐랜드를 통해 버젓이 상품권에 대한 신용카드 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3월29일 이 사이트를 통해 국민기업카드로 문화상품권을 구입해봤다. 한국문화진흥은 국민카드와 상품권 가맹점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 하지만 구입한 지 이틀 뒤 세금계산서와 함께 문화상품권은 여지없이 회사로 도착했다. 카드사와 상품권 가맹점 계약을 맺지 않았는데도 보내준 세금계산서의 제품명에는 ‘문화상품권’이라는 글씨가 또렷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카드사에는 상품권을 산 게 아니라 일반 물품을 구입한 것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한국문화진흥이 각 카드사와 상품권 가맹점 계약을 맺는 대신 일반 물품을 팔 때 쓰는 일반 가맹점 계약만 체결, 카드사로서는 한국문화진흥이 무엇을 팔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드사의 자동 분류시스템은 문화상품권을 일반 물품판매나 기타항목으로 분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과 부가가치세법 등 각종 법에 따르면 상품권(박스 참조)은 유가증권으로 분류돼 각종 세금공제의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규정돼 있다. 즉 화폐처럼 그 자체가 재화나 용역을 창출하지 않기 때문에 물품이나 용역을 구입한 것처럼 비용 처리가 될 수 없다는 의미. 따라서 상품권 판매업자는 반드시 각 카드사와 상품권 판매계약을 맺고, 상품권 판매용 단말기를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상품권 판매 전용 단말기를 거쳐 판매된 문화상품권은 각 카드사에 상품권 판매로 따로 등록이 되면서 각종 세금공제에서 제외되도록 돼 있는 것. 하지만 일반 가맹점 계약이 된 곳에서 문화상품권을 산 기업은 세액공제가 되지 않는 상품권을 사고도 일반 물품을 산 것으로 인정받아 상품권을 산 비용만큼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좋든 싫든 해당 기업은 문화상품권을 카드로 구입하면서 법인세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



500만원어치 상품권 구입 후 5%에 깡 … 비자금 475만원 생기는 셈

기업은 이런 시스템을 악용해 얼마든지 비자금을 조성할 수가 있다. 문화상품권은 시중에서 합법적으로 할인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회사 대차대조표에 잡히지 않는 비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

문화·사이버 상품권도   불법 유통 갈 데까지 갔다

본사에 오면 신용카드 판매가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교육문화상품권 홈페이지(위)와 문화상품권의 신용카드 판매를 안내하고 있는 한국문화진흥 홈페이지.

시중 문화상품권의 매입 할인율은 5~7%. 예를 들어 한 기업이 기업카드로 500만원어치의 문화상품권을 구매한 뒤 5% ‘깡’을 하면 475만원의 비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장부에는 500만원어치의 물품을 산 것으로 경비 처리가 됐으므로 이 돈은 공중에 뜬 돈이 된다. 회사로서는 법인세를 줄이면서 세무 당국에선 알 수 없는 현금(비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카드 결제는 보통 한 달 이후 이뤄지므로 기업으로서는 급한 현금을 확보하는 데도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을 수 없다. 한국문화진흥은 실제로 기업카드를 통해 한 번에 500만원 이상의 문화상품권도 팔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탈세구조는 개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개인이 일반 가맹점 계약을 한 곳에서 신용카드로 문화상품권을 구입하면 각 카드사에서는 상품권이 아니라 물품을 구입한 것으로 등록되므로 연말정산 때 자동으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 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세를 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원천세과 관계자는 “문화상품권은 유가증권으로 반드시 상품권 가맹 계약을 맺은 뒤 신용카드 판매를 실시해야 한다”며 “기업이나 개인의 탈세에 관한 부분은 추후 다시 확인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문화진흥은 이런 비판에 대해 “너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각 카드사와 당초 가맹점 계약을 할 당시, 파는 제품의 성격이 상품권이라는 사실을 모두 밝혔고 사업계획서까지도 모두 넣었는데도 상품권 가맹 계약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고지해주지 않았다”며 “알고서 이런 일을 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1500억원의 매출액 중 신용카드로 판매한 금액은 1%, 15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세청에서 문화상품권을 통한 각 기업의 탈세에 관해 조사를 했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취재가 시작된 3월21일 이후 한국문화진흥은 일부 카드사와 상품권 가맹점 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일반 가맹점 계약이 끝나는 대로 이를 상품권 가맹점 계약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상품권 가맹 계약 언급 안 한 카드사들 책임 크다”

도서, 영화, 문구, 팬시용품을 살 수 있는 교육문화상품권도 상황은 마찬가지. 교육문화상품권을 발행하는 ㈜한국교육문화진흥은 지난해 말부터 일부 카드사와 상품권 판매 계약을 맺었지만 가맹 계약을 맺지 않은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무작위로 상품권을 판매했다.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3월28일 이 회사 본사를 찾아가 국민카드(개인)로 상품권을 구입해보았다. 국민카드는 교육문화진흥이 상품권 가맹점 계약을 맺지 않은 카드다. 국민카드를 내밀고 상품권을 사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자 이 회사 관계자는 “법인이 기업카드로 상품권을 살 경우 무한대로 팔 수 있다”며 “출장 판매까지 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문화상품권은 일부 불법 게임장이나 오락실에서 돈 대신 오고 가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티켓나라 같은 정식 상품권 할인판매점에서는 이 상품권의 인수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품권은 ‘구둣방’ 같은 불법 깡 업자에게 가면 30% 정도 할인한 뒤 현금을 받을 수 있다. 이날 오후 취재진이 이 상품권을 갖고 할인 판매를 시도해보자, 깡 업자들은 30% 이상의 할인을 요구했다. 서울시 정동에서 만난 한 깡 업자는 “이 상품권은 발행 당시부터 마진 폭이 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며 “마진 폭이 크지 않으면 상품권 자체가 음성적으로 사용되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문화·사이버 상품권도   불법 유통 갈 데까지 갔다

3월18일부터 도토리 상품권을 판매하고 있는 LG25 매장.

문화상품권의 불법 신용카드 판매에는 각 카드사의 책임도 크다. 각 카드사는 “2002년 12월 여신전문금융업법에 상품권 가맹에 대한 제재조항이 생기고 난 뒤, 각 판매자들에게 상품권 가맹 계약을 종용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화상품권 발행업체 측은 “이런 제안을 받은 기억이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국문화진흥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일반 상품권 판매업자와 달리 판매 제품 자체가 상품권뿐이기 때문에 일반 가맹점 계약이 필요가 없다. 그런데도 카드사 측은 상품권 판매 계약에 대해 전혀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다”고 억울해했다.



‘도토리 상품권’도 편의점서 신용카드로 구입 확인



3월18일 폭발적 인기를 끌며 전국 LG25 매장에서 판매가 시작된 싸이월드 도토리 상품권 역시 불법 신용카드 판매의 도마에 올랐다. 2002년 9월 미니홈페이지 아이템 거래를 위한 사이버 화폐로 등장한 도토리는 2월 현재 하루 판매량이 2억원에 이를 정도로 매출이 신장하고 있다. 싸이월드는 이런 성장세에 힘입어 선물용으로 쓸 수 있는 도토리 상품권을 출시하고, LG유통의 가맹점인 LG25를 통한 판매를 시작했다.

문제는 오프라인에서 팔리는 도토리 상품권도 다른 상품권과 마찬가지로 카드사와 상품권 가맹 계약을 맺지 않고서는 신용카드로 구입할 수 없는 유가증권이라는 점. 하지만 LG유통의 가맹점 중 일반 가맹점 계약과 상품권 가맹 계약을 동시에 체결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는 형편이다.

3월28일과 29, 30일 서울 강북지역의 LG25에서 신용카드로 도토리 상품권을 살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확인에 나선 결과, 아무 제지 없이 개인카드나 기업카드로 도토리 상품권을 살 수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싸이월드를 운영하고 있는 에스케이커뮤니케이션즈의 한 관계자는 “판매 대행 계약을 유통업체와 맺으면서 분명히 신용카드 판매를 금지시켰는데, 각 가맹점에 대한 유통업체 측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며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유통업체 측은 “각 가맹점이 모두 개인 업자인데 모두 상품권 판매 계약을 맺고, 상품권 판매용 단말기를 갖추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일부 아르바이트생이 상품권을 신용카드로 판매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 같다”며 이해를 구했다.

그 외 각종 인터넷 쇼핑몰 중에는 신용카드로 사이버 적립금을 쌓게 한 뒤 이를 상품권의 형태로 발매하는 곳도 부지기수로 많다. 물론 이중에서 카드사와 상품권 판매 계약을 맺은 곳은 거의 없다. 1999년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상품권에 대한 허가·신고 제도가 사라지고 인지대를 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온라인 상의 사이버 머니(전자화폐)가 오프라인의 상품권 형태로 범람하고 있는 것. 이들은 “사이버 머니는 유가증권이 아니다”라며 온라인 상에서 카드 결제를 하게 한 뒤 오프라인에서 상품권을 판매하는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학생과 청소년이 주로 이용하는 각종 상품권에서도 불법 판매가 기승을 부리고 있건만 금융당국과 국세청의 반응은 아직도 “확인 중”이라는 것이었다.





주간동아 2005.04.12 480호 (p22~24)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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