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9

2005.01.18

인도의 구호대책 “생뚱맞죠”

국가 안보·부족민 보호 이유로 피해 큰 안다만 ·비코바르에 민간단체 접근 막아

  • 델리=이지은 통신원 jieunlee333@hotmail.com

    입력2005-01-14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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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아시아를 강타한 쓰나미(지진해일) 참사 이후, 세계 각국에서 답지하고 있는 성금과 함께 각 국제기국, 비정부기구(NGO)등의 구호 활동이 활기를 띠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서 조금은 소외된 듯한 지역이 있다. 바로 인도령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다. 지리적으로도 접근이 어려운데다, 인도 정부도 외국·민간 기관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이 지역에 대한 보도마저 매우 제한된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실종·사망 7000여명 추정…이재민 1만 2000여명 발생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는 인도 본토에서 동쪽으로 뚝 떨어져 인도양의 약 800km에 걸쳐 호를 그리고 있는 572개의 크고 작은 섬이다. 가장 가까운 인도의 항구 첸나이에서부터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의 수도 포트 블레어까지의 거리가 약 1200km에 달한다는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일부 관광지와 군대 주둔지를 제외하고는 원시림으로 뒤덮인 정글에 원시 부족민들이 거주하는 오지 중의 오지다. 작은 섬들인 데다가 이번 쓰나미의 진원지 근처에 위치해 있어 인도의 여러 지역들 중 최악의 피해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피해 복구는커녕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워낙 오지이다 보니 교통 통신 등의 기반시설이 취약하고 주민의 상당수가 외부세계와 거의 교섭이 없는 부족민이라는 맹점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인도 정부가 이 지역에서 민간 구호단체의 활동을 훌하하고 있기 때문이다.

    쓰나미의 엄청난 영향은 제도의 변해버린 지형이 가장 잘 설명해준다. 수면이 높아지는 바람에 면적이 좁아진 섬들은 물론, 하나였던 섬에 바닷물이 들어오며 둘로 갈라지는 등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만큼 지형이 바뀌었다. 1월 5일 현재까지 인도 정부가 인정한 제도 전체의 인명 피해 규모는 1000명에 못 미치지만, 실종자와 사망자를 합해 7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이들 외에도 1만여명의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카르 니코바르 섬에 이쓴 한 공군기지에서만도 2000여명의 인도 공군이 수장되기도 했다.

    게다가 최초 지진 발생 이후 열흘간 이 지역에서 최소 104건의 여진이 기록돼, 피해를 더욱 확대시켰다. 진도 5도 이상의 강진도 10차례가 넘었다. 인도 정부는 물자 수송의 어려움과 여진에 의한 추가 인명 피해를 우려해 각 섬의 주민들을 수도인 포트 블레어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포트 블레어는 안다만·니코바르 제도 지역에서 유일하게 외국 단체의 활동이 허용된 곳. 이에 따라 약 1만2000명의 이재민이 고향을 떠나 포트 블레어의 난민캠프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강제 이주된 이재민들의 대부분은 정부의 이주 정책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접해보는 도시 환경과 갑자기 바뀐 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현재는 정부의 구호 정책이 각 마을과 가정의 생존에 필요한 구호품을 직접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많은 민간단체들은 인도 정부의 안다만 구호 정책이 비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비난하며 민간 구호 단체들의 활동을 전면 허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이 지역이 군사적·전략적 요충지로서 군사시설의 보안 유지가 필요하고, 각지에 흩어져서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부족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민간인의 접근을 여전히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도 정부의 재해 대책에 대한 또 다른 불만은 인도 정부가 외국의 구호기금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 정부는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몰려드는 구호기금 전달 제의를 차례로 거절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스리랑카·몰디브 등 주변국에 지원금을 보내고, 군대를 파견하여 지원활동에 나서고 있다.

    참사 발생 직후 대통령이 직접 국제 매체와 인터뷰하며 지원을 호소했던 스리랑카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국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인도로서는 ‘이 정도는 우리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겠지만, 당장 먹을 빵과 마실 물이 없는 이재민들 처지에서는 정부의 자존심 세우기가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실제로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에서는 생존자들이 구조작업 지연과 물자 부족에 항의하며 고위 관료와 경찰 관료자를 납치하기도 했다.

    외국의 구호기금 거부 …정부 체면 탓에 주민은 죽을 맛

    인도 정부는 구호기금뿐 아니라 외국 구호 단체들의 활동에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보안과 원주민 보호를 위해 민간인의 접근을 금지한 안다만·니코바르 제도는 말할 것도 없고, 상황이 전혀 다른 타밀나두나 기타 지역에 대해서도 외국 단체들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 눈치다.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의 경우는 정부에서 파견한 공무원들과 정부 측의 허가를 받은 소수의 인도 국내 자원봉사자들이 각각의 섬을 하나하나 돌며 치해 상황을 조사하고 구호품을 전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기구로는 유니세프만이 유일하게 안다만 지역에서의 활동을 허가받았는데, 그것도 참사가 발생하고 11일이 지나서였다. 다만, 지금까지 외국 지원금 수령에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던 NGO들은 이번 쓰나미 참사를 위한 구호기금은 정부에 보고만 하고 받을 수 있게 완화되었을 뿐이다.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의 구호활동과 피해복구가 지연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섬 주민들 중 상당수가 외부와 격리된 채 자신들끼리만 모여 사는 원시 부족민들이라는 점이다.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에는 그레이트 안다마니스·옹게·자라와·장길·센티넬리 등 많은 부족민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세는 독특한 유전자 구조를 가지고 석기시대 수준의 생활방식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도 있어 인류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특히 전체 수가 100명이 안 되는 부족도 있어 만일 이들이 이번 쓰나미에 휩쓸렸을 경우, 부족의 존재 자체가 우려될 정도다. 특히 섬 주민의 60%이상이 부족민인 카찰 섬은 전체 면적의 반 이상이 아직도 물에 잠긴 상태고, 포트 블레어로 이주한 3900여명의 생존자보다 더 많은 4500여명의 나머지 주민들이 실종 상태다.

    최근의 인도 정부 발표나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들 부족민들이 비교적 높은 지대에 거주하고 있고, 평소와 다른 동물의 상태를 알아채고 자연의 변화를 감지하는 신비한 능력으로 쓰나미 참사를 피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특히 구호품을 떨어뜨리기 위해 낮게 비행하던 인도 공군 헬기를 향해 화살을 쏘며 공격했다는 사실을 들어 이들이 무사하다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인류학자들은 이들 부족들이 거북의 고기를 먹으며, 거북을 잡기 위해 해변으로 내려오는 일일 종종 있다는 사실을 들어 속단은 금물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주민 수 500명 이하의 부족들은 대부분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나온 보도들 중 대부분은 실제 목격이나 확인보다 단서에 의한 추측일 가능성이 많다.

    한편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의 일부 도서 지역에서는 전염병 발병이 보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식수원이 오염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인도 국내외의 NGO들은 다시 한번 이 지역에서의 민간단체 활동 허가를 촉구했다. 국가안보와 부족민 보호라는 이유 때문에 보호받아야 할 부족민들이 오히려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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