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9

2005.01.18

푸껫 덮친 자원봉사자 물결

세계 각국서 발길 쇄도 … 시신발굴부터 이재민 식사 준비까지 헌신적 활동

  • 푸껫=박현준/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lovesong@donga.com

    입력2005-01-13 16:3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푸껫 덮친 자원봉사자 물결

    ‘푸껫 인터내셔널 병원’에서 통역과 안내봉사를 자원한 미국인 이반 체바로스씨(가운데).

    태국 푸껫 해변가에 쓰나미(지진해일)가 들이닥친 시간은 2004년 12월26일 오전 10시20분경이었다. 가장 먼저 라디오 방송에 쓰나미 소식이 나갔고 오후 1시경에는 아수라장이 된 해변가 모습이 위성방송과 TV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기 시작했다(태국 푸껫이 그나마 가장 국제화된 도시였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푸껫의 피해 현장으로 달려간 단체는 비정부기구(NGO)인 ‘푸껫 적십자사’였다. 푸껫 적십자사 직원 200여명은 26일 사고 당일 오후 3시경, 푸껫 시청에 응급 구호소와 병원을 설치하고 밀려드는 응급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이다.

    적십자사의 활동이 ‘당연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감동적인 장면은 이곳에 놀러 온 ‘관광객’들이 연출했다. 운 좋게 쓰나미의 피해에서 벗어난 관광객들이 자발적으로 병원이나 시청으로 달려가 자원봉사자들로 변신한 것이다. 주변 상황이 아수라장이었기 때문에 숙식까지도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해결한 것은 물론이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기에 사지(死地)로 변한 푸껫의 난민들은 외롭지 않았다.

    관광객으로 왔다 자원봉사자 변신도

    미국인 보트 레이서(racer) 이반 체바로스씨(32)는 12월 말 태국에서 열리는 국제보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푸껫에 도착해 있었다. 갑작스러운 쓰나미로 인해 경기가 취소되고 관광도 즐길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자 미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무작정 병원으로 달려갔다. 부상자들이 밀려오면 병원의 일손이 부족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26일 오후부터 푸껫의 모든 병원은 환자들로 가득 찼다. ‘푸껫 인터내셔널’ 병원에선 응급실 침대가 부족하자 매트리스를 꺼내 2층 휴게실에 30여개의 간이침대를 만들 정도였다.

    체바로스씨는 이 병원 ‘안내센터’에 배치됐다. 밀려오는 환자의 명단을 작성해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러 오는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 그는 “1월19일 싱가포르에서 국제보트대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지난해 12월26~29일 동안은 정신없이 바빴지만 휴양보다 봉사하는 삶이 10배는 더 값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지나자 스웨덴,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전문 의료진들이 속속 도착했다. 노르웨이 공군에서 일하는 군의관 룬드 케틸 중령(43)도 그중 한 사람. 노르웨이 공군 당국은 의사 12명과 간호사 20명을 태국 푸껫으로 급파했다.

    푸껫 덮친 자원봉사자 물결

    까오락에 마련된 구호품 배급소.

    케틸 중령은 ‘푸껫 인터내셔널’ 병원 정문 바깥에 부스를 만들고 환자들의 응급조치를 했다. 태국 의료진보다 노르웨이 의료진을 더 믿는 자국 환자들에게는 병원 측의 도움을 얻어 직접 시술하기도 했다. 케틸 중령은 “의료봉사에 국적은 없다”며 “쓰나미 피해를 입은 환자들이 몰려드는 한 끝까지 남아 피해자들을 치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껫 관광객의 90% 이상은 유럽인들이다. 게다가 산책을 즐기는 동양인과 달리 유럽인들은 해변가에서 선탠을 즐기기 때문에 이번 쓰나미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그 때문에 의료 자원봉사는 대부분 유럽인들의 차지가 됐다.

    1월5일 점심시간. 푸껫 시청 내 간이조리대에는 긴 줄이 만들어졌다. 쓰나미 피해 이후 식사 때가 되면 벌어지는 일상적인 장면이다. 빈민을 돕는 NGO 단체인 CPF는 닭고기를 튀겨 밥과 함께 도시락을 만들어 무료로 나눠줬다. 옆에서는 태국의 식음료 기업들이 연합해 만든 봉사단체들이 쇠고기와 밥을 함께 나눠주고 있었다. 쓰나미 피해자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과 인근 주민들까지 와서 식사를 했다. 쓰나미로 지갑을 포함해 소지품을 모두 잃은 사람들은 한 끼 식사가 큰 위로가 됐다.

    이외에도 푸껫 시청 앞 1000여평의 잔디광장에는 각국 자원봉사 단체들이 만든 천막이 꽉 들어차 있다. 이들은 여권발급 업무 대행부터 시작해 병원 안내, 통역 등을 했다. 그중에는 태극기를 걸어놓고 여권발급 업무를 돕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방콕에서 컴퓨터 관련 회사에 다니다 쓰나미 소식을 접하고 급히 푸껫으로 달려온 베네수엘라 출신 더글라스 애그닐라씨(40)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전산 처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일단 시청으로 달려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죠. ‘국제희생자협조센터(International Victim Coordination Center)’에서 전산 처리를 할 사람이 부족하기에 ‘이거다!’ 싶었죠.”

    푸껫 덮친 자원봉사자 물결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노르웨이 공군 출신 군의관 룬드 케틸 중령.

    애그닐라씨는 “나의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여러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치면 어느 정부기구 못지않은 훌륭한 단체가 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한국인 자원봉사단체로는 ‘푸껫 여행자 협회’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쓰나미 발생 바로 다음날, 푸껫 시내 ‘와트 코짓’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하고 24시간 분향소를 지켰다. 수십명씩 조를 짜서 까오락과 끄라비 등지로 시신 발굴 작업에 나서기도 했다.

    의료·실종자 전산처리·구호품 배급 등 봉사 종류도 가지가지

    푸껫 현장을 총지휘하는 외교통상부 조중표 재외국민영사담당 대사는 “대사관이 푸껫에 현장본부를 차리기 전부터 여행자 협회가 한국인 돕기에 나섰다”며 “이들이 없었으면 피해자 집계뿐 아니라 실종자 발굴 작업도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껫은 쓰나미의 피해를 그나마 적게 본 데다 구호 활동도 활발한 편이다. 하지만 푸껫에서 승용차를 타고 북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팡아주(州) 까오락의 구호 상황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까오락 해변가에서 1km 정도 떨어진 언덕 중턱에 구호품 배급소가 만들어졌지만 음식과 옷가지를 서로 챙기려는 난민들로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다. 음식과 옷가지는 내놓은 지 몇 시간 만에 대부분 동이 난다.

    ‘푸껫 적십자’의 위빠빤 꾸수완 부회장(48)은 “까오락과 끄라비 등지에는 건물이 파괴되고 도로가 파손돼 건설 지원이 절실하다”며 “구호품은 모두 환영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금’이다”고 말했다. 돈이 있다면 당장 필요한 곳부터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것.

    5일 현재 푸껫 적십자가 모금한 기금은 500만 바트(약 1억5000만원) 정도. 대부분 의료품 조달에 사용되기 때문에 건설 현장까지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음식과 의료품 배급은 비교적 풍족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수용소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청 한쪽 구석에 매트리스와 베개 10여개가 준비돼 있지만 수백명에 이르는 난민들을 수용하기에는 무리다. 이들은 대부분 잔디밭이나 맨땅에 누워 모기와 싸워가며 잠을 청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