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3

2004.12.09

더듬더듬 영어생활 “그래도 Good!”

  • 글·사진=허시명/ 여행작가 www.walkingmap.net

    입력2004-12-02 1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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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듬더듬 영어생활 “그래도 Good!”

    일요일 아침 체육관에서 요가를 하고 있는 영어마을 안산캠프 참가자들.

    영어공부를 어떻게 시킬까. 자녀를 둔 대한민국 부모라면 누구나 다 하는 고민일 것이다. 학교 영어 수업은 어쩐지 미덥지 못하고 차별화되지도 않아, 학원에 보내고 가정방문 선생도 붙여보지만 성과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방학 때면 태권도학원이나 영어학원의 행사에 얹혀, 4주 해외 어학연수를 욕심 내보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적게 잡아 300만원이다. 그래도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이런 고민을 하는 부모는 덜 극성스런 편이다. 초등학교 때 어학연수를 보내거나, 1년짜리 교환학생으로 보내기도 한다. 교환학생으로 가는 데는 1년에 1500만원 정도 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욕이 넘치는 부모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아예 외국으로 가버린다. 그래서 혼자 남아 교육비와 생활비를 대고 철 따라 한번 날아갔다 오는 ‘기러기 아빠’들도 흔한 세상이 되었다.

    교육열 높은 게 나쁠 거야 없겠지만 부모들의 행복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식 교육에 전력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을 간파해서일까, 경기도는 2004년 8월 대부도에 영어마을 안산캠프를 열었다. 경기도 공무원연수원을 개조해 만들었는데, 입구에 ENGLISH 영문자가 우리 마음속에 얹힌 ‘그놈의 영어’ 처럼 거대하게 세워져 있었다. 영문자 옆의 입구를 지나 넓은 운동장을 넘어서니 산자락을 등지고 선 콘도미니엄 규모의 캠프가 나왔다. 캠프 마당에 서니 대부도 앞바다가 햇빛에 얼비쳐 눈부셨다.

    더듬더듬 영어생활 “그래도 Good!”

    외국인 교사의 도움을 받으며 가족끼리 책을 만들고 있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 접수 ‘경쟁률 높아’

    안산 캠프에서는 두 개의 상설 행사가 진행된다. 하나는 경기도 내 중학교 2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주중 5박6일짜리 영어캠프다. 200명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데, 학생들이 전공과목(연극 음악 미술 과학)을 선택해 실습 위주로 영어만을 사용하며 이뤄진다. 다른 하나는 주말 가족반이다. 내가 참가 신청을 한 것은 주말 가족반이었다. 참가 자격은 4명 이상 6명 이하의 가족 단위인데, 19세 이상의 보호자가 있어야 하고 5세 미만은 참여할 수 없다.

    나는 10월과 11월에 걸쳐 인터넷으로 참가 신청서를 냈지만, 거푸 떨어졌다. 참가 신청자들이 많아 경쟁률이 높았다. 25세 이상 100명을 모집하는데 2500명이 지원했다. 그러니 떨어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혼자 주말 가족반 수업을 지켜보기로 했다.



    주말반 일정은 토요일 오후 4시부터 일요일 오후 4시까지 24시간 운영된다. 경기도민은 1인당 3만원이고, 그외는 1인당 6만원이다. 경기도민이라면 4인 가족이 세 끼 식사를 하고 하룻밤 지내는 데 12만원이 드니,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다. 그래서인지 영어캠프가 생긴 뒤로,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기획자들이 죄다 다녀갔다고 한다.

    캠프에 입소하면 먼저 방을 배정받는다. 그냥 이름을 확인하고 열쇠를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이민 왔다고 여기고 공항에서처럼 입국 심사를 밟는다. 간단한 영문 인터뷰를 하고 나서 방을 배정받는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물론 외국인이다. 수업은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수업이나 학습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인치권 팀장은 “영어가 생활 속에 있지 않고, 교과서 속에 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이곳에서는 교재가 없습니다. 놀면서 배우고, 체험하면서 깨닫습니다. 외국인들과 직접 어울리면서 친숙해지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더듬더듬 영어생활 “그래도 Good!”

    외국인 교사의 설명을 참가자들이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담아듣다.

    인 팀장의 말대로 저녁식사 뒤에 탐정놀이가 준비돼 있었다. 전동면도기처럼 생긴 탐정카메라가 가족당 한 대씩 제공되고, 다섯 가지 과제가 영문으로 주어졌다. 로비에 있는 선생님 등에 올라타기, 체육관에서 둘이서 동시에 물구나무서기, 도서관에서 한 사람이 혀를 말아올려 코끝에 대기 따위의 주문을 수행하고 이를 탐정카메라에 담는 일이었다. 제한된 시간에 해야 하기에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소란스럽게 진행되었다.

    탐정놀이가 끝나고, 저녁 9시부터는 댄스파티가 열렸다. 무대 위와 아래에서 외국인 10명과 한국인 2명의 교사가 참가자 100명을 이끌었다. 꽤 많은 수의 선생님이었다. 외국인 교사의 동작을 주저 없이 따라하는 이들은 초등학생들이었다.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자, 음악에 취해 춤을 추는 사람이 늘어났다. 의외로 ‘아버지’들의 행동이 적극적이었다. 용인 죽전에서 온 한 어머니는 “애들 아빠가 더 신났어요”라고 했다. 물론 자녀들에게 솔선수범을 보이려는 아버지의 의욕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었다.

    밤 10시에 토요일 행사가 끝나고, 각기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갔다. 방에는 침대 두 개와 목욕탕, 텔레비전, 에어컨이 있었다. 베란다 바깥으로는 대부도의 바다가 보였다.

    이튿날 아침은 체육관에서 체조 겸 요가로 하루 일정이 시작됐다. 물론 모든 대화는 영어로 이루어진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오전 첫 번째 학습은 가족이 함께 그림책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영문으로 해설을 달았다. 책자가 완성되면, 무대 앞으로 나와서 설명을 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더듬더듬 가족을 소개하고, 그림을 설명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스럽게 보였다.

    오전 두 번째 학습과 오후 학습은 조별로 나누어 음악, 과학, 미술, 요리 실습이 이뤄졌다. 음악 시간엔 외국 춤과 노래를 배우고, 과학 시간엔 태양열 전동차를 조립 경주하고, 요리 시간엔 인도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놀이와 체험과 학습이 잘 버무려져 있었다.

    마지막 행사는 전날 탐정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감상하는 차례였다. 행사가 끝나고 서울 계원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온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더듬더듬 영어생활 “그래도 Good!”
    “어떤가요? 재미있었습니까?”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긴 하는데, 외국인을 직접 접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겁먹고 말을 못하더니, 하루 지나니까 한결 부드러워졌어요. 당장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진 않아요. 아무튼 전체적으로 좋았어요.”

    참가자들 대부분이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자녀들보다 부모들의 만족도가 더 커 보였다. 대한민국 부모들의 가상한 열정을 보는 듯했다. 영어마을 안산캠프를 빠져나오는데, 안산캠프가 외화유출을 막는 파수병처럼 보였다. 쓴웃음을 지어야 할지, 달디단 웃음을 지어야 할지 순간 혼란스러웠다.

    영어마을 안산캠프 참가 신청

    주중 5박6일 프로그램은 경기도 내 중학교 2학년을 대상으로 함. 1인당 8만원. 경기도교육청에서 신청서를 받아 경기도영어문화원에 신청. 1박2일 주말 가족반은 매월 둘째 주에 다음달 신청자를 받아 추첨 선발함. 경기도민은 1인당 3만원, 경기도민이 아니면 1인당 6만원.

    www.english-village.or.kr/ansan, 문의 031-223-9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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