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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국가 기밀조차 지키지 못하는 약소국의 현실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국가 기밀조차 지키지 못하는 약소국의 현실

국가 기밀조차 지키지 못하는 약소국의 현실
국제 여론이 한국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다. 2000년 우라늄 농축, 1982년에 플루토늄 추출을 실험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이미 우리 핵 관련 시설을 휩쓸고 지나갔다. 한국 정부는 핵연료 만들기 연습 정도라며 억울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투하돼 일거에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낸 무시무시한 무기가 바로 우라늄과 플루토늄 원자탄이다. 이 극단적 무기는 바로 미국에서 극비리에 수년간 개발된 작품이다.

원자력이 막강한 에너지로 사용될 수도 있으리라는 이론은 1938년 독일 과학자들이 발표했다.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몇몇 과학자들은 독일과 효과적으로 싸우기 위해 원자탄이 필요하다고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건의했다. 39년 8월경으로, 당시 아인슈타인이 앞장섰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원자탄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나라는 영국이다. 41년 7월 비밀리에 발간된 ‘모드보고서’는 10kg 정도의 우라늄만 농축하면 2년 안에 비행기로 적지에 투하할 수 있는 원자탄을 만들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공습을 받고 있던 영국에서는 이를 실행할 수 없었다. 이에 영국은 8월 이 보고서를 미국에 전달했다. 아인슈타인의 건의가 꼭 2년 만에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해 12월7일에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며 전쟁이 태평양으로 확대됐다. 42년 9월 그 유명한 ‘맨해튼 계획’으로 미국은 원자탄 제조에 돌입했고, 12월2일에는 페르미 등이 시카고대학 축구장 구석에서 우라늄 연쇄반응에 성공, 다음해 봄부터 우라늄과 플루토늄 생산에 돌입했다. 어떤 방식이 능률적일지 몰라 단시간에 추출하기 위해 여러 방식의 공장이 한꺼번에 세워지기도 했다.



2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고 듀퐁, 코댁을 포함한 화학산업 업체가 총동원됐으며, 총 60만명의 인원이 가담한 대역사였다. 그런데 진정 놀라운 사실은 엄청난 돈과 인력을 들였다는 점이 아니라, 과정이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조차 원자탄 개발의 비밀은 새어나가지 않았다. 당시 미국 트루먼 부통령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는 점만 보아도 어느 정도로 보안에 힘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트루먼은 루즈벨트 대통령 이 45년 4월12일 갑자기 사망하자 육군장관과 ‘맨해튼 계획’ 책임자 그로브스 장군에게서 원폭 개발 결과를 보고받을 수 있었다.

이로부터 4년 뒤인 49에는 소련도 원자탄을 실험했고, 영국과 프랑스·중국·인도 등이 그 뒤를 따랐다. 사실은 전쟁 중에 이미 소련 스파이가 영국의 ‘모드보고서’를 빼돌렸고, 그래서 포츠담회담 때 스탈린은 트루먼이 슬쩍 미국의 ‘무서운 무기’를 귀띔하자 곧바로 무슨 뜻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보전쟁은 끝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왜 국가적 비밀조차 지키지 못하고 순순히 과거의 핵실험 사실을 토로했던 것일까. IAEA 사찰 소식을 지켜보면서 국가 기밀조차 존재할 수 없는 약소국의 비애를 느꼈다.



주간동아 2004.10.28 457호 (p79~79)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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