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국제

후진타오, ‘장쩌민 軍權’까지 뺏을까

중앙위 전체회의서 군사주석직 이양 여부 ‘세계의 관심’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후진타오, ‘장쩌민 軍權’까지 뺏을까

5월30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이어 뉴욕타임스 9월2일(신문)자와 7일(인테넷판)자가 장쩌민(江澤民)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사임 가능성을 보도함으로써 전 세계의 관심이 베이징으로 쏠렸다. 일각에서는 장쩌민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해 물러날 것이라는 보도도 내놓았다. 도대체 중국의 권력 심장부에서는 어떤 암투가 벌어지고 있기에 이러한 보도가 나오는 것일까.

중국 공산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5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당대회와 비슷)이고, 다음이 해마다 열리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약칭 중전회)다. 그러나 중전회는 상설기구가 아닌지라 평시에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이하 상무위)가 주요 사안을 의결한다. 9명의 상무위원으로 구성된 상무위는 매주 한 차례씩(목요일 또는 금요일) 회의를 여는데, 서열 1위의 상무위원이 바로 후진타오다. 이러한 상무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서기처다.

‘반쪽 권력’ 꼬리표 뗄 절호의 기회

상무위는 매주 열리는 ‘비상설’ 회의체이지만, 서기처는 상설기구라는 차이가 있다. 상무위 석상에서 상무위원들이 의견이 엇갈려 갑론을박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 따라서 서기처는 사전에 상무위원 전원에게 상무위에 올릴 의안을 보내 검토케 하는데, 이때 다른 의견이 도출되면 상무위원 사이를 오가며 접점을 찾아내 상무위에서 100% 통과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때문에 상무위보다는 서기처가 더 중요한데, 이러한 서기처의 1인자가 중국 공산당을 대표하는 ‘총서기’다. 현재 총서기는 서열 1위의 상무위원인 후진타오가 겸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 원수직은 ‘국가주석’이다. 과거 중국에서는 총서기와 국가주석에 다른 사람이 임명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후진타오가 겸하고 있다. 총서기·국가주석과 더불어 중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최고위직이 중국 인민해방군을 통제하는 중앙군사위 주석이다. 2002년 후진타오는 장쩌민한테서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은 물려받았으나 ‘최고 실세’인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아직 장쩌민이 보유하고 있다. 장쩌민은 언제 이 자리를 넘겨줄 것인가.



밖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2002년 장쩌민에게서 후진타오로 총서기와 국가주석이 승계되는 과정은 부드럽지 않았다. 장쩌민으로 대표되는 기존세력과 후진타오로 상징되는 신진세력이 밀고 당기는 과정을 반복해, ‘총서기와 국가주석은 후진타오에게, 중앙군사위 주석은 장쩌민에게’라는 합의를 도출했다.

그런데 9월16일 중국 공산당은 중앙군사위 주석직 이양을 결정할 수도 있는 4중전회(제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를 개최한다. 이 회의에서 후진타오 세력이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가져오기 위해 ‘올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세계는 베이징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결코 원만하게 권력을 이양해온 나라가 아니다. 덩샤오핑이 ‘부도옹(不倒翁)’이란 별명을 얻은 까닭도 그가 여러 차례의 권력 암투 속에서 숙청됐다가 기사회생했기 때문이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세력의 암투를 들춰보려면 덩샤오핑에서 장쩌민으로 넘어가는 권력승계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1989년 덩샤오핑은, 국가주석은 양상쿤(楊尙昆) 총서기는 자오쯔양(趙紫陽)에게 맡기고, 자신은 중앙군사위 주석을 차지한 채 중국을 이끌고 있었다. 그해 4월15일 개방적 인물로 꼽히던 후야오방(胡耀邦)이 사망하자 베이징의 대학생들은 후야오방을 기리는 행사를 하다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이에 대해 덩샤오핑은 3개 군구(軍區)의 병력을 동원해 유혈 진압하는 무서운 면모를 보였다(톈안먼 사건). 그리고 즉시 톈안먼 시위에 동조했다는 혐의로 자오쯔양을 총서기직에서 쫓아내고 천윈(陳雲)이 천거한 상하이시(市) 공산당 총서기인 장쩌민을 후임자로 앉혔다.

1년 후 덩샤오핑은 자신이 갖고 있던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장쩌민에게 넘겨주었고, 93년 3월에는 양상쿤에 이어 국가주석도 겸하게 하였다. 이로써 장쩌민은 마오쩌둥(毛澤東)과 류사오치(劉少奇)에 이어 세 번째로 3개 요직을 차지한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는 되지 못했다. 이유는 덩샤오핑을 비롯해 중국혁명에 참여했던 8명의 원로(약칭 8大老)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반드시 8대로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그들의 의견에 따라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장쩌민이 자기 권력을 가진 것은 97년부터였다. 97년 2월 덩샤오핑이 죽고, 그해 9월 열린 중국 공산당 15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다시 총서기로 추인을 받은 뒤 비로소 중국의 1인자가 된 것이다. 89년부터 따지면 장쩌민은 8년을 ‘엎드려’ 있다가 임기 5년의 대권을 장악한 것이다.

그러나 혁명 세대가 아닌 장쩌민에게서는 덩샤오핑과 같은 카리스마가 나올 수 없었다. 장쩌민은 톈안먼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들처럼 급진적인 민주화는 아니어도 변화를 바라는 세력으로부터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장쩌민이 엎드려 있었던 8년을 인정하지 않았다. “덩샤오핑 동지도 말년에는 젊은 당신에게 자리를 넘겨주지 않았느냐. 70대 이상은 물러나야 한다. 당신은 도합 13년을 하게 되는 셈이니 다음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는 하야하라”는 등의 압력을 넣은 것이다.

퇴진 안 할 땐 후유증 심각할 듯

이러한 주장이 거세지자 장쩌민은 2002년 11월 열린 16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후진타오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그랬던 것처럼 가장 중요한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이양하지 않았다. 또한 장쩌민은 9인의 상무위원회를 구성할 때 자기 계열 사람 5명을 집어넣어 후진타오 세력의 독주를 차단케 했다. 반면 “70대 이상은 물러나라”는 주장을 펼친 후진타오 세력은 장쩌민한테서 “중앙군사위 주석을 5년간 하지 않고 ‘반임(半任, 2년 반)’만 하겠다”는 대답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반임 중에서 대략 2년이 지나가는 시점이 4중전회가 열리는 올 9월16일이다. 그러니 세계의 관심이 4중전회에서 과연 장쩌민이 중앙군사위 주석을 내놓을지에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쩌민은 순순히 중앙군사위 주석을 이양해줄 것인가. 지난 7월 말 장쩌민의 통제를 받는 중국군은 3개 군구 등에 동원령을 내리고 대만섬 상륙을 가정한 둥산다오(東山島) 훈련에 돌입했다가 돌연 중지시켰다. 왜 중국은 대규모 군사훈련을 중지시켰을까.

전통적으로 장쩌민 세력은 ‘연임에 성공한 대만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두 번 다시 대만 독립을 거론하지 못하도록 군사적 위협을 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반면 후진타오 세력은 ‘대만 경제는 이미 중국 경제에 흡수됐는데 뭐 하러 대규모 군사훈련을 일으켜 미국의 개입을 자초하느냐’는 논리로 반대해왔다. 중앙군사위 주석인 장쩌민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둥산다오 훈련에 착수했는데, 이 훈련이 중지됐으니 세계는 후진타오가 장쩌민을 꺾었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4중전회에서 장쩌민이 중앙군사위 주석을 내놓을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장쩌민 퇴진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중국군 고위 장성은 대부분 ‘종신’을 보장받고 있는데, 장쩌민이 퇴임하면 이들도 ‘70대 이상은 퇴진하라’는 거센 물갈이 주장에 봉착하게 된다. 원로 군인들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으면 젊은 군인들은 이들의 부정부패 혐의를 들춰낼 가능성이 있다. 그로 인해 양쪽이 무력을 들고 대치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과 대만이 진정으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다. 장쩌민과 원로 군인을 순순히 퇴임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후진타오는 ‘날개를 단 용’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가 된다면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내홍을 겪는 ‘안팎곱사등이’가 될 수도 있다. 4중전회, 중국은 어디로 향해 나아갈 것인가.



주간동아 453호 (p46~47)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94

제 1294호

2021.06.18

작전명 ‘이사부’ SSU vs UDT ‘강철부대’ 최후 대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