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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신화 |저승 이야기 ④

저승 멀다더니 삽작 밖이 황천이라

조왕할망·문전神 도움으로 앞으로 앞으로 … 헹기못에 풍덩 빠져 연추문에 당도

  •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저승 멀다더니 삽작 밖이 황천이라

저승 멀다더니 삽작 밖이 황천이라

천지왕이 “솥들아 일어서라”고 하니 솥들이 일어서고, “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갈 것이니라”고 하니 소들이 지붕 위에 올라가는 모습.

“설운 낭군님, 어서 가옵소서!”

큰부인의 배웅을 받으며 강림도령이 저승 가는 길을 찾아나선다.

소별왕과 대별왕이 이승과 저승을 갑갈라서 귀신들을 저승으로 보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저승은 도대체 어디일까? 우리 신화의 공간은 천하궁과 지하궁, 그리고 인간으로 나눈다. 이때 인간은 ‘사람 사이’라는 뜻으로 인간 세상을 말한다. 그 공간 구성 위에 또 이승과 저승이라는 시간 구성이 짜여 있는 것이다. 현실의 인간과 신화적인 시간으로서의 이승이 하나의 짝을 이룸으로써 신화적인 시공간으로서의 이승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신화적 시간으로서의 저승과 짝을 이루는 공간은 어디일까?

한번 가면 오지 못하는 곳이 저승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저승을 제집 드나들 듯 넘나드는 풍류 남아가 드디어 등장한다. 저승은 어디 있을까? 같이 따라가보자.

조왕할망을 만나다



강림은 큰 눈을 부릅뜨고 삼각 수염을 젖혀 올리고 좁은 목에 벼락치듯, 넓은 목에 번개치듯 간다. 가다보니 앞에 웬 노파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하늘을 날듯 훨훨 걷는구나. 벗으로나 삼으려고 빨리 걸어봐도 노파는 한참을 앞서 가 있다. 더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도 영 앞지를 수가 없구나. 달을 보고 걷고 해를 보고 걷다 며칠이 지났는지 노파가 연팡돌 위에 앉아 숨을 고른다.

그 사이에 노파를 따라잡은 강림이,

“예사 걸음이 아닙니다. 며칠을 걸어 시장하실 텐데 점심이나 드시고 가십시오.”

“나도 요깃거리가 있다.”

둘 다 점심밥으로 떡을 꺼내놓는데, 한 시루에 쪄내고 한 손매가 난 떡이라.

“아니, 할머니 점심과 제 점심이 어떻게 이렇게 똑같나요?”

“이놈아, 나를 모르겠느냐? 네 집의 조왕할망이다. 네 부인의 정성이 하도 기특하여 저승길을 인도하러 왔는데 이만큼 잘 왔구나. 이 길을 가다보면 연제못이 있을 것이야! 그 못가에서 목욕재계하고 이 떡을 올려서 정성을 다해 빌면 세 신선이 내려올 것이네. 그때는 알 도리가 있을 것이니∼ 음! 쯧쯧쯧….”

그러고는 조왕할망이 소리 없이 사라져버리는구나.

조왕은 부엌을 다스리는 신이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불을 신성하게 여겨 숭배를 했다. 조왕은 부엌의 아궁이와 부뚜막을 맡는 신으로서 집안의 불을 다루는 가정의 수호 여신이다. 당연히 부인네가 주로 모신다. 그러므로 조왕할망은 강림의 큰부인이 보낸 첫 번째 저승길 안내자다.

강림이 조왕할망의 말을 듣고 끝없이 가다보니 과연 연제못이 있거늘, 목욕을 하고 정성을 다하여 빈다. 어느덧 세 신선이 내려왔구나! 세 신선이 묻는다.

“너는 어디로 가는 길이냐?”

“저는 저승에 염라대왕을 청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저승길을 모르니 길을 인도해주십시오.”

세 신선이 한참을 생각하다 푸른 부채, 붉은 부채, 홍세줄을 내어주며 말하길,

“가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거든 쓰거라.”

강림이 푸른 부채, 붉은 부채, 홍세줄을 둘러메고 간다. 가다보니 어느덧 안개가 끼어 동서남북을 분별하지 못하겠더라. 푸른 부채를 내던지니 안개가 걷히고 길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 무슨 조화랴! 또 끝없이 가다보니 청청한 곳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치 않구나. 붉은 부채를 내던지니, 신기하도다! 또한 안개가 걷히고 길이 분명하게 보이네!

저승 멀다더니 삽작 밖이 황천이라

저승차사가 지붕 위에 와 있는 것도 모르고 한가로이 쉬고 있는 인간의 모습.

그 길을 따라 또 끝없이 간다. 가다보니 저만치 앞에 푸른 옷 동자가 잰걸음으로 걸어간다. ‘옳지! 저 동자를 따라가면 되겠구나’ 하고 강림은 부지런히 쫓아가네. 한데 푸른 옷 동자가 보통 걸음이 아니라. 강림이 큰 눈을 부릅뜨고 삼각 수염을 젖혀 올리고 좁은 목에 벼락치듯, 넓은 목에 번개치듯 걸어도 도저히 아이의 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구나. 푸른 옷 동자가 앉아 쉬는 사이에 강림이 겨우 그 앞에 다다른다.

“덕분에 길을 잘 왔소. 점심이나 함께 나눠 먹읍시다!”

“나도 있소.”

푸른 옷 동자의 점심을 보니 이번에도 한 시루에 쪄내고 한 손매가 난 떡이라.

“나는 큰부인의 집을 지키는 문전신이오. 부인의 정성이 갸륵하여 도와주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저승길은 일흔여덟 갈림길이라, 그 길을 다 알아야 저승으로 갈 수 있는 법.”

문전신(門前神)은 말 그대로 집의 대문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탐라에서는 성주, 조왕, 터주, 측간 신과 같은 집안의 신들 가운데서 가장 앞선 위치에 있다. 그리고 집안의 대주가 ‘먼 길’을 떠날 때나 돌아왔을 때 먼저 고하는 대담이다. 길과 집안의 경계로 들고나는 곳이 문인 까닭이다. 문은 곧 ‘길’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셈이다.

그 문전신이 저승길을 하나하나 세어간다.

“천지혼합 때 들어간 길, 천지개벽 때 들어간 길, 인왕도업 때 들어간 길, 천지천왕 들어간 길, 천지지왕 들어간 길, 천지인왕 들어간 길, 산 베포 들어간 길, 물 베포 들어간 길, 원 베포 들어간 길. 신 베포 들어간 길, 왕 베포 들어간 길, 국 베포 들어간 길, 제청도업 때 들어간 길, 올라 산신대왕 들어간 길, 산신백관 들어간 길, 대서용궁 들어간 길, 서산대사 들어간 길, 사명대사 들어간 길, 육한대사 들어간 길, 인간불도할망 들어간 길, 마마신 들어간 길, 일궁전 들어간 길, 월궁전 들어간길, 삼대상공 들어간 길, 천제석궁 들어간 길, 스님 초공 들어간 길, 이공 서천 들어간 길, 삼공 주년국 들어간 길, 원앙감사 들어간 길, 원앙도사 들어간 길, 시왕감사 들어간 길, 시왕도사 들어간 길, 진병서 들어간 길, 신일월 신병서 들어간 길, 진추염라태산왕 들어간 길, 버물지어사천왕 들어간 길, 제초일에 진강왕 들어간 길, 제이 초강왕 들어간 길, 제삼 송제왕 들어간 길, 제사 오관왕 들어간 길, 제오 염라왕 들어간 길, 제육 변성왕 들어간 길, 제칠 태산왕 들어간 길, 제팔 평등왕 들어간 길, 제구 도시왕 들어간 길, 제십 십전왕 들어간 길, 십일 지장왕 들어간 길, 십이 생불왕 들어간 길, 십삼 좌두왕 들어간 길, 십사 우두왕 들어간 길, 십오 동자판관 들어간 길, 십육 사자 들어간 길, 천왕차사 일직사자 들어간 길, 인왕차사 어금베도사나장 들어간 길, 옥황 금부도사 들어간 길, 저승 이원사자 들어간 길, 물로 요왕국 대방황수 들어간 길, 담물 용궁차사 들어간 길, 나무에 절량차사 들어간 길, 물에 엄사차사 들어간 길, 대로 객사차사 들어간 길, 비명차사 들어간 길, 노불업 노차사 들어간 길, 맹도맹감 삼차사 들어간 길, 화덕차사 들어간 길, 상금차사 들어간 길, 발금차사 들어간 길, 모람차사 들어간 길, 적차사 들어간 길, 작고도 작은 개미 왼 뿔 한 조각만큼 길이 났구나.”

저승사자들이 다니는 일흔여덟 갈림길이 많기도 많을샤. 저승길을 다 일러준 문전신이 강림에게 갈 길을 알려주는데,

“산딸기나무 가시덤불에 바람눈이 덮이고 돌무더기의 오목 볼록이 심한 험한 길을 긁어 뜯으며 가다보면 저승 질토래비(길을 닦는 사람)가 석자 두치 오척 길을 닦다가 시장기에 몰려 양지바른 곳에 앉아 졸고 있을 것이오. 그 앞에 떡을 갖다놓으면 알 도리가 나올 것이라.”

강림의 이름을 세 번 부르다

강림이 청동 같은 팔뚝으로 가시덤불을 긁어 뜯으며 가다보니 아닌게 아니라 저승 질토래비가 길가에 앉아 소닥소닥 졸고 있다. 강림이 그 앞에다 시루떡을 살그머니 갖다놓는다. 질토래비가 시장에 떡을 가져다가 허겁지겁 떼어먹으니 눈에 생기가 돌아 산도 넘고 싶어라 물도 넘고 싶어라, 하는구나. 뒤를 돌아보니,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우람한 몸으로 태산같이 버티니 섬뜩한 느낌이 나는 이가 서 있네. 질토래비가 와들랑이 일어서며,

“나는 저승길을 안내하는 이원사자요. 댁은 뉘신지?”

“나는 이승 김치마을에 사는 강림이라 하오.”

“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십니까?”

“저승 염라대왕을 잡으러 가는 길이오.”

“아니, 저승을 어떻게 갈 수 있겠소?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걸어보시오, 저승에 가는가. 못 가는 법이라오.”

“내 갈 길은 저승길이니 그 길을 알려주십시오.”

저승 멀다더니 삽작 밖이 황천이라

저승차사의 안내로 저승길로 가는 인간의 모습. 아래쪽의 못이 헹기못으로 추정된다.

산 자가 죽은 자가 들어가는 저승길을 알려 달라 하니 이원사자 황당하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구나. 그러나 어쩌랴! 저승법은 맑아서 대접을 받으면 반드시 보답해야 하는 법. 나중에 벌을 받더라도 길을 알려줄밖에.

“뜬 적삼이 있소?”

“있습니다.”

“내가 혼을 세 번 불러들이면 혼으로나 저승 초군문에 가시오. 저승 초군문 가기 전에 헹기못에 이르거든 헹기못 바위에 보면, 이승에서 제명에 못 죽고 남의 명에 간 사람 저승도 못 가고 이승도 못 와서 비새같이 울고 있을 것입니다. 그이가 ‘나도 데리고 가주십시오’ 하고 쾌자를 잡을 것이니 그때 떡을 자잘하게 부수어서 동서레레 뿌리면 저승 초군문에 뿌려질 것입니다. 참, 저승 본짱은 있소이까?”

“이런, 안 가져왔소!”

“이게 무슨 말이오이까? 저승 본짱이 없으면 저승을 가도 돌아올 수 없소!”

강림이 손바닥을 두들기며,

“이것 참! 나 일이로구나.”

강림이 그때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큰부인이 이별할 때 큰일이 닥치면 허리띠 전대를 삼세번 떨어뜨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강림이 전대 허리띠를 손에 들고 삼세번 떨어뜨려보니 적배지가 다르륵기 떨어진다. 이원사자가,

“오! 바로 이게 저승 본메가 아닌가?”

이원사자 강림의 적삼을 벗겨,

“강림이 보오, 강림이 보오, 강림이 보오” 하고 강림의 이름을 세 번 크게 부르니, 강림의 혼이 몸에서 스르륵 벗어나는구나.

사립문 밖이 황천이라 문득 눈을 떠보니강림의 혼이 저승 포도리청 호안성(저승 가는 길의 성 이름)을 지나 헹기못에 가다가 보니 헹기못 바위에 앉은 이가, ‘나도 데려가 달라’고 강림의 쾌자를 잡는다. 떡을 자잘하게 잘라서 뿌리니 저승 못 간 이들 배고프던 차에 떡을 주어먹다 그만 쾌자를 놓아버린다. 강림이 눈 질끈 감은 채로 헹기못에 풍덩 빠지고 보니,

“이크!”

아찔하구나! 회오리쳐 감기는 물길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디깊은 곳으로 한없이 떨어지네. 정신이 아득하다네.

문득 눈을 떠보니, 바로 저승 연추문 앞에 떨어졌구나!

아! 드디어 강림이 저승에 다다랐다네. ‘저승이 멀다더니 삽작 밖이 황천이라’는 노랫말처럼, 문득 눈을 떠보니 저승일세그려!



주간동아 433호 (p60~61)

류이/ 문화평론가·연출가 noni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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