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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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고독한 수도승’은 말한다

  • 입력2004-04-29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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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기 ‘고독한 수도승’은 말한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행문이자 가장 오래된 책인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정밀한 주해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학고재 펴냄)이 나왔다. 역주자는 1996년까지 ‘무하마드 깐수’로 불렸던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70·사진). 최근 몇 년간 왕성한 연구욕으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 ‘씰크로드학’ ‘이슬람문명’ 등을 내놓았던 그가 이번 책으로 다시 한번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왕오천축국전’은 8세기 인도의 이름인 ‘천축’을 다녀온 기록이란 뜻이다. 신라 스님 혜초는 어린 나이인 16살에 당나라 밀교승 금강지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는데, 당시 이 여행에서 보고 들은 바를 기록한 두루마리가 ‘왕오천축국전’이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원본은 1908년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가 중국 돈황석굴에서 발견한 것으로, 8세기 후반 황마지에 쓰인 필사본이다. 이는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세계에서 유일한 기록으로 당시 그 지역의 정치 문화 풍습 종교 등을 알려주고 있으며, 당시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불교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러나 이 책은 외국인이 먼저 발견했듯 연구도 외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1909년 중국학자 나진옥이 ‘돈황석실유서’에 수록한 뒤 일본 독일 등지의 학자들이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86년에는 구와야마 쇼신 등 19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공동연구반이 5년 동안 연구해 ‘혜초왕오천축국전연구’를 펴냈다. 국내에서도 최남선, 고병익, 김규성, 정병삼 등이 우리말 번역본을 내놓았지만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처럼 정밀 주해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여행기를 세계 4대 여행기(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리크의 ‘동유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중 하나로 꼽는 이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책을 연구하거나 기리는 일에 너무나 불초(不肖)스러웠다. 남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으니 말이다. 이런 불초감이 늘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정씨는 ‘왕오천축국전’이 원래 세 권으로 돼 있었다는 당나라 승려 혜림의 ‘일체경음의’의 기록이나, 이 책에 주석된 85개의 어휘를 비교해볼 때 현존 두루마리가 세 권의 원본을 축약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이 책이 언어표현이나 문법구조상 평가절하됐던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 옌볜에서 태어나 평양과 서울에서 대학교수를 지냈던 정씨는 혜초에게서 자신의 바람을 길어올린다.

    “혜초가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月夜瞻鄕路) 하늘가 북쪽에 있는 내 나라(我國天岸北)’라고 그리워했던 그곳은 정녕 남과 북이 따로 없는 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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