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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언론과의 전쟁

방송장악인가 개혁의지인가

KBS 서동구 사장 임명 방송가 잔뜩 긴장 … 노조에선 파업 불사 정권과 ‘충돌’ 예고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방송장악인가 개혁의지인가

방송장악인가  개혁의지인가

신임 KBS 사장으로 서동구씨가 임명되자 3월26일 KBS 노조원들이 정부의 낙하산식 인사를 규탄하며 신임 사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였다. 아래는 KBS 본관 전경.

3월29일 토요일 아침 8시, KBS 방송의 중견 PD 박모씨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다. KBS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서동구씨에 대한 노동조합측의 출근 저지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아침식사마저 걸렀다는 그는 그러나 이날 새벽 6시30분경 서사장이 이미 사장실로 출근해 집무하고 있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을 듣고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박PD의 말이다.

“스스로 민주인사니 개혁적 인사니 하면서 그저께(3월27일) ‘여러분이 바라지 않으면 (사장실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하고 약속까지 한 서씨는 어제 아침 KBS 본부장급 간부들과 청원경찰 100여명을 앞세워 6층 사장실로 진입했다. 그러더니 오늘은 사원들 몰래 새벽 출근하는 추태까지 보이니 공영방송의 직원으로서 자괴감마저 든다.”

박PD는 또 “낙하산 인사, 정권 핵심의 정실 인사로 꼽히는 서씨를 사장으로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이 과연 참여정부가 표방하는 개혁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서사장의 KBS 입성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3월25일 KBS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서동구 사장을 놓고 방송가가 떠들썩하다. 서사장의 강제 사장실 진입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KBS 노조(위원장 김영삼)는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하고 총파업까지도 불사할 예정이어서 파란이 예고된다. 10여년 전 노태우 정권 때 서기원 사장 취임 반대 파업(박스 기사 참조)으로 KBS가 대혼란에 빠졌던 기억을 떠올리는 방송계 인사들은 대내외적으로 민감한 이 시기에 노정권과 공영방송의 충돌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새 사장 선임 앞둔 연합뉴스·YTN·EBS 촉각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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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KBS 사장으로 임명한 서동구씨.

그간 KBS 노조측은 ‘서동구 사장 사전 내정설’이 흘러나올 때마다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의 KBS 입성을 반대해왔다. 노조측은 △서씨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노대통령의 언론고문을 지낸 인물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KBS 사장으로는 적절치 못하고 △지난 10여년간 노대통령의 후원회장을 맡아오는 등 노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기명씨(대통령 문화언론특보)와는 사촌간으로 정실 인사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경향신문 편집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에 연루돼 도덕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등을 이유로 내세웠다.

KBS 노조의 한 간부는 “사전에 KBS 직원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를 여러 통로를 통해 청와대 고위층에 전달했지만 청와대측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고, 결국 서사장 카드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선택했다”고 귀띔했다. 보도국 기자 출신인 이 간부는 또 “이번 KBS 사장 사태가 단지 KBS 내부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노정권 5년간 전체 방송계 판도에 하나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당분간 방송계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듯하다. 경쟁사인 MBC나 SBS 역시 이번 사태가 노정권 5년간의 방송정책과 무관치 않다는 점에서 크게 긴장하고 있는 눈치다. 또 새 사장 선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연합뉴스와 YTN, EBS 등도 노정권의 방송인사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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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장에 대한 인사 파문으로 MBC(왼쪽)와 SBS 관계자들도 크게 긴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언론계 일각에서는 KBS 사장 인사를 놓고 노정권이 방송 장악을 기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은 “강력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첫번째 언론계 인사인 KBS 사장에 대통령 측근을 임명한 것은 정권이 서씨를 방송 장악 시나리오의 교두보로 삼고 있다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노정권의 낙하산 인사’로 지목된 서사장에 대한 KBS 노조원들의 출근 저지 투쟁을 지켜본 KBS 한 간부급 인사의 말도 예사롭지 않다.

“3월4일 KBS 창사 30주년 기념 리셉션에서 한 노대통령의 발언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노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방송이 없었으면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는 말과 함께 ‘방송이 가자는 대로 갈 것’이라는 등 자신의 방송관을 내비쳤다. 지난 대선기간 도움을 받은 방송에 대해 감사의 표시로 한 말이긴 하지만, 거꾸로 방송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정권과 함께 나가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간부는 노대통령이 언론의 양대 축의 하나인 신문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였고 지금도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다른 한 축인 방송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언론단체,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도 서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노정권의 방송 장악 기도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언론계 사정에 밝은 모 대학의 신문방송학 교수는 노대통령이 당선 후 보여준 대(對)언론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메이저급 보수언론을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취해왔다. 취임 후 신문의 가판구독 금지를 지시한 것도 가판을 통한 신문사와 광고주의 거래 등을 차단함으로써 보수언론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반면 노대통령은 당선 후 첫 기자회견을 온라인 매체인 ‘오마이뉴스’와 했고, 언론사 첫 방문지로 한겨레신문을 택했는가 하면, KBS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서는 미묘한 발언까지 했다. 노대통령은 이들을 보수언론에 대항하는 우군으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교수는 노대통령의 행보에서 기존의 권력이나 자본을 통한 언론 통제가 아닌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을 통한 통제 의도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즉 온라인 언론을 통해 오프라인 언론을 견제하고, 방송을 통해 신문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정권과 언론의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첨예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어찌 보면 한 방송사의 사장 임명에 대해 언론계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계, 특히 방송계는 그동안 어떤 색깔의 인물이 사장으로 부임하느냐에 따라 해당 방송사의 보도가 일정 부분 영향을 받는 구조였던 게 현실이다. 인사권을 가진 사장은 방송사 간부들을 자신의 의도대로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가 있을 경우 ‘내 사람’을 방송계에 심어두려는 욕구를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게 전국언론노조 간부의 말이다.

이에 대해 서동구 사장측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서사장을 지지하는 KBS의 한 사내 인사는 “KBS의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이사장 지명관)가 40여명에 달하는 사내외의 공개추천 인사들을 충분히 검토한 뒤 투표를 통해 서동구씨를 사장으로 제청했고 대통령이 이를 임명했을 뿐”이라면서 “서사장은 노조의 주장처럼 KBS를 장악하기 위해 부임한 것이 아니라 KBS를 개혁하기 위해 온 개혁인사”라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또 “서사장은 전임 사장 시절 ‘전주고 마피아’라 불리는 특정 사내 인맥의 전횡이 KBS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 아래 인사권을 통해 이를 정리하고, 자신의 출신고인 경기고 인맥을 챙기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히는 등 KBS 개혁에 대한 확실한 구상을 가지고 있다. 서사장에게 실망할 일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서사장 주변 인사들은 또 KBS 노조가 지나치게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서사장이 노대통령측의 언론고문을 맡기는 했지만 이름만 걸어놓은 정도였고, 별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다는 것. 서사장은 또 그만한 연배로서는 드물게 개혁적인 마인드가 있는 등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 강화에도 기여할 만한 적임자라는 것.

그러나 KBS 개혁 책임자로서 서사장이 최선의 카드는 아니었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참여정부에 호의적인 ‘참여연대’측에서도 KBS 사장 임명과 관련한 논평을 통해 “KBS가 직면한 최우선 개혁과제가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임에도 오히려 이 점을 가장 의심받는 인물을 사장에 선임한 것은 이번 인사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것이자 개혁과제의 실현을 의심케 하는 인선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KBS 이사회가 사장 선임 과정에서 사장 공개추천과 추천기준 등을 제시하는 등 외형적 절차를 마련하긴 했으나, 정작 결정 절차와 후보자 검토 과정에서 납득할 만한 이유나 제청 사유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KBS 이사회가 공개추천을 요식행위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사전내정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것.

한편 노대통령이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다른 개혁적 인사를 제쳐두고 서씨를 사장으로 임명한 배경을 놓고서도 설이 분분하다. 청와대와 채널을 열어두고 있는 KBS의 한 간부는 “서동구 사장 카드는 특정 인사가 무리하게 밀어붙인 작품으로 대통령의 언론 분야 참모 기능이 마비되는 하나의 징후”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정치 경제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복수의 참모들 의견을 듣고 있지만, 오직 언론 분야만은 참모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에는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 정동채 의원, 이기명씨 등이 나름의 역할을 했지만 이들 참모 사이에 이견이 생기기 시작한 뒤 이씨가 독주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씨가 서동구씨를 KBS 사장으로 강력하게 밀었고 노대통령은 이씨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들었다. 이 과정에서 ‘서동구 카드가 무리’라는 386세대 참모들의 진언도 먹혀들지 않았다고 한다.”

‘이기명씨 배후설’에 대해 이기명씨와 잘 알고 지낸다는 한 방송계 인사는 “그 같은 설은 노대통령을 흠집 내려는 반대세력의 음해공작”이라면서 “방송작가 출신인 이씨에게 방송사 사장을 선임할 만큼 방송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힘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씨 역시 ‘주간동아’와의 여러 차례 전화 접촉에서 KBS 인사와 관련 “나는 모르는 일이다. 오해다”라며 “모든 것은 4월이 지나 만나서 얘기하자”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씨가 대통령 문화언론특보로 임명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은 청와대 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의 청와대 내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노무현 정권이 외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징후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북한 송금문제와 관련한 노대통령의 특검제 수용은 민주당 구주류의 반발로 대변되는 호남 민심의 이탈을 불러올 수 있고, 이라크전 파병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청년층과 시민·사회 단체들이 등을 돌리게 할 수 있다. KBS 사장 파동이나 이기명씨의 특보 임명 역시 노정권을 지지한 지식인층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이를 위기의 징조로 보는 이는 청와대 내에서 아주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청와대 주류는 KBS 사장 사태의 경우 친노조 성향의 인사가 사장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곧 해결될 것이라고 매우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방송 인사정책 이상 흐름 곳곳에서 감지

청와대가 벌써부터 민심과는 다른 정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으로 방송 인사정책에서 이상 흐름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방송계 인사에 정통한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말.

“KBS 사장 선임에 이어 방송위원장과 방송위원, KBS의 새 이사진 구성, EBS의 사장과 감사, 연합뉴스와 YTN 사장 선임을 앞두고 특정 인사에 줄을 서기 위한 로비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모 방송사의 경우 아예 특정 인사를 사장으로 앉혀 자신들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을 정도다. 공영방송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영방송인 SBS도 크게 긴장하고 있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권 초기 불거진 방송계 인사 난맥상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방송계, 더 나아가 언론계 전반이 암흑기를 맞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KBS 사장 선임 사태가 어떻게 풀릴 것이냐에 따라 언론의 민주화,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여부도 판가름 날 것이라는 얘기다.





주간동아 379호 (p18~21)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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