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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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개척 도전장 ‘고졸 당당’

학력 거부, 실력으로 승부수 띄우는 3인 … “내게 맞고 좋아하는 일 끝까지 가련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03-13 15: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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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0년대 대학생은 집안의 자랑거리였고, 80년대 대학은 안정된 취업의 전제조건이었다. 90년대 그 수가 크게 늘면서 ‘웬만하면 가는 곳’으로 변모한 대학은 2000년대에는 대졸 실업자 ‘양성소’와 고졸 실업자의 ‘쉼터’로 전락했다. 심하게 말하면 2년이나 4년 동안 대학생으로 취직했다 실업자가 되는 셈. 이것이 2003년 우리 대학의 자화상이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고교 졸업자의 수가 사상 처음으로 대학(종합대+전문대)의 모집 학생 정원에 못 미쳤다(표 참조). 이를 반영하듯 올해 많은 전문대와 일부 지방대는 인기학과를 제외하곤 대량 미달 사태로 개학 직전인 2월 말까지도 추가모집을 계속했다. 통계치만 두고 보면 이제 마음만 먹으면 고졸자 누구나 대학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 때문일까. 이젠 대학을 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대학에 가도 취업이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고졸자의 취업도 쉽지 않기에 떠밀리듯 대학에 간다.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 안 가면 불안한 곳, 대학이 우리 사회의 ‘계륵(鷄肋)’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허세를 과감히 떨치고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고졸자들도 늘고 있다. 실력은 되지만 스스로 대학 진학을 거부하고 취업을 선택한 고졸자들. 이들에게 대학은 필요하면 언제든 갈 수 있는 ‘학원’과 같은 존재일 뿐이다. 기존의 관행을 거부하고 세상에 맞서고 있는 고졸 사회 초년병들의 ‘당당한 봄’을 들여다봤다.

    박수혁

    # 축구선수에서 자동차 정비사로

    인생 개척 도전장 ‘고졸 당당’

    미래의 자동차 기능장 박수혁군.

    “유명 대학 인기학과에 간 친구들을 제외하곤 모두 부러워하죠. 신입생 환영회다 야유회다 들떠 있는 친구들을 보면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4년 후에 보자고….”



    올 2월 한성고를 졸업한 박수혁군(19)은 3월7일부터 쌍용자동차 서비스 공장에 출근했다. 인문계 고교를 다니면서도 자동차 정비학원을 다닌 지 1년, 결국 자동차 기능사 자격증을 딴 그는 일찌감치 취업에 성공했다.

    실업계 고교 자동차학과 출신들이 모두 카센터로 가는 상황에서 그의 대기업 직영 정비공장 취업은 업계 내에서도 놀랄 만한 일.

    실력은 인정하면서도 인문계 출신은 ‘쓸 수 없다’는 회사측에 ‘열심히 하겠다’고 통사정하기를 수차례, 회사도 그의 노력과 의지에 감동했는지 한 달 만에 입사를 허락했다. 이제 경력을 쌓아 산업기사, 기술사, 그리고 마지막엔 기능장에 도전하면 된다. 꿈을 이루기까진 수십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는 힘들거나 괴롭지 않다. 자동차가 좋고, 기름 냄새가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군이 대학 진학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로 들어서기까지는 아픔도 많았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수석을 다투던 그는 축구가 너무 좋아 아마추어 클럽 활동을 시작했고, 졸업 무렵에는 그의 실력을 인정한 축구 명문고에 스카우트되는 행운을 잡았다. 하지만 박군이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란 아버지의 만류로 그는 다른 인문계 고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축구를 하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은 지 1년이 넘었지만 그의 성적은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차츰 학업에 흥미를 잃어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우연히 접한 자동차 관련 잡지에서 자동차 정비업에 눈을 뜬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이 사람이고 사람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중요한 직업이라면 사람이 애지중지하고 그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자동차를 고치는 직업도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죠.”

    역시 이번에도 아버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하철 기관사인 아버지는 아들마저 손에 기름을 묻히는 것이 싫었던 것. 무조건 반대하던 아버지는 결국 “자동차가 좋으면 관련 학과를 가면 되지 않겠냐”는 데까지 양보했다. 그래도 그는 “대학은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대학의 자동차과에서는 실제 부품을 만질 기회가 거의 없어요. 머리로만 얻은 자격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실제 현장에서 인정을 받고 필요하면 그 다음에 대학을 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탐탁해하진 않지만 언젠가는 아버지도 자신을 이해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박군은 오늘도 자동차와 씨름을 하고 있다.

    # 평범한 소녀에서 면세점 직원으로

    인생 개척 도전장 ‘고졸 당당’

    동시통역사가 꿈인 조혜진양.

    어릴 때부터 일본 음악과 만화를 유난히 좋아했던 조혜진양(19)은 취미가 곧 자신의 직업이 된 케이스다. 올해 서문여고를 졸업한 조양은 올 1월 일본 정부가 주관하는 일본어능력시험에서 2급 자격증을 딴 후 곧 호텔 면세점에 취업할 예정이다. 이미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필기시험과 1차 외국어 면접을 통과한 상태. 이제 형식상의 2차 면접만 남았다. 합격하면 면세점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이곳저곳 부르는 곳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사회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조양도 고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일본 가수 우타다 히카루에게 열광하던 평범한 소녀일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가고 싶은 과도 없는데 이 성적으로 대학에 가면 뭐 하나’ ‘하기 싫은 공부를 대학교 가서도 계속하는 건 또 한 번 인생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어요.”

    2학년 1학기까지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조양은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한다. 원하지 않는 대학에 가서 관심도 없는 공부를 계속하느니 차라리 졸업하고 시집이나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조양이 뜻밖에 희망을 발견한 것은 자신이 매일 접하고 좋아하던 일본어였다. 일본어는 일본 음악과 일본 만화를 듣고 보기 위해 조양이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조금씩 공부해왔던 터였다.

    “공부한 게 아니라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와 만화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재미로 했던 거예요. 그런데 영어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데도 일본어만큼은 할수록 재미가 있고 자신감이 붙었어요.”

    2학년 후반 일본어로 인생의 승부를 걸기로 결정한 조양은 일본어학원에 다니며 실력을 다지기 시작한다. 대학을 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기에 3학년 1년간이 문제가 됐다. 그때 그녀가 선택한 게 바로 직업학교. 종로산업정보학교에 일어관광통역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양은 3학년 1년 동안 이곳에 다녔다.

    “아빠의 반대가 있었죠. 틈만 나면 일어공부 좀 덜하고 다른 과목 공부해서 대학 가라고 꾸중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꿈이 있었어요. 실생활에 필요한 일본어 능력을 확실히 키운 다음 안정된 직업을 얻어 돈을 모아 일본유학을 다녀온 뒤 동시통역사가 되는 거예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고민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부모의 강권 때문에 억지로 대학입시에 매달리고 있는 후배와 또래친구들에 대한 조양의 애정 어린 충고다.

    # 착실한 모범생에서 VJ로

    인생 개척 도전장 ‘고졸 당당’

    돈 많은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꿈인 인덕원군.

    올 2월 서울 중앙고를 졸업한 인덕원군(20)은 벌써 돈을 번 경험이 있다. 비디오 촬영 편집 대행회사에서 프리랜서 카메라맨으로 활약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것. 인군의 현재 직업은 VJ. 자신이 찍고 싶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비디오 카메라에 담아 편집한 뒤 방송사에 보내거나 인터넷에 올리는 일이다. 인군의 최종 목표는 ‘돈 많은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다.

    “인터넷 동영상이 활성화됐기 때문에 이제 공중파나 케이블 TV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넷 작가가 나오듯, 이제 인터넷을 이용한 비디오 저널리스트의 탄생도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인군은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는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꿈이지만 당장은 돈을 벌어 자신만의 비디오 촬영 편집회사를 내는 게 목표다.

    인군의 고교성적은 반에서 10등 정도였다. 서울에 있는 웬만한 4년제 대학은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비디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은 꼭 대학에 가서 얻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서울예전 등 관련 대학이나 전공과도 많지만 그에겐 당장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는 일이 급했다. “일하면서 이론이 필요하면 책이나 논문을 보고, 그래도 모자라는 게 있으면 그때 대학에 들어가겠다”는 게 인군의 생각.

    인군의 이런 생각은 아버지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인군이 비디오 촬영법과 편집 방법을 처음 배우고 VJ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사실 아버지 때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인군의 아버지가 VJ학원을 다녀온 게 계기가 됐다. 인군이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좋아하는 일에서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참보람”이라고 오히려 격려했다. 2학년 말에 이런 결정을 내린 인군은 3학년 한 해 동안 직업학교와 학원을 찾아다니며 비디오와 영상학을 배우는 데 몰두했다.

    “수중촬영부터 고공촬영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해내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고, 사회적 명성도 얻고 싶습니다.” 인군의 비디오 카메라에 대한 애정은 끝이 없다. 인군은 최근 아버지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지은이가 해설하는 동영상을 촬영, 편집해 홈페이지에 올려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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