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 매니징 디렉터(MD) 파트너. 지호영 기자
반도체 전문가인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매니징 디렉터(MD) 파트너는 2월 6일 인터뷰에서 반도체산업을 이같이 전망했다. 2012년부터 반도체 섹터를 분석해온 김창욱 MD 파트너는 “인공지능(AI) 확산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를 계기로 반도체산업이 과거와는 다른 구조적 전환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메모리 및 시스템 반도체 전반에서 수요의 질과 공급 구조가 동시에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창욱 MD 파트너에게 AI 시대 반도체산업의 수요와 공급 전망을 물었다.
수요량 절반밖에 못 채우는 메모리 공급량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개선된 배경은.“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그때 시작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 등 개인용 전자기기가 많이 팔렸다. 그 영향으로 2021~2022년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다. 이때 샀던 전자기기 교체 주기가 오기 전인 2022년 후반부터 2023년까지는 반도체 수요가 크게 하락했다. 당시 AI용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긴 했지만, 반도체 수요의 50%를 점유하던 개인 전자기기가 너무 안 팔리다 보니 D램 등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발생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9월부터 AI용 반도체 수요 폭증에 더해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PC) 등 개인 전자기기 수요가 회복되면서 공급 부족이 본격화했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는 얼마나 부족한가.
“HBM(고대역폭메모리)과 D램은 공급 부족이 심하다. 마이크론이 최근 실적 발표에서 올해 상반기까지는 고객이 원하는 물량의 50%만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공급되는 50%마저도 고객사가 물건을 받기까지 6~9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반도체 생산에 걸리는 시간은 2개월 정도라 공급 부족 전에는 고객사들이 주문 후 3개월이면 반도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애플 같은 회사는 큰일이 난 것이다. 매년 9월 새로운 아이폰을 출시하는데 반도체가 없어서 출시를 미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다. 애플은 단 한 번도 9월 신제품 발표를 어겨본 적이 없다.”
낸드플래시 업황은 어떤가.
“D램이나 HBM만큼은 아니지만 AI 데이터센터 증설로 낸드플래시도 공급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AI 모델이 학습할 때 GPU(그래픽처리장치) 바로 옆에 붙어서 연산 데이터를 즉각 넘겨주는 일은 HBM이 하지만, 강아지 사진 100만 장 등 학습에 필요한 기본 데이터를 저장하는 건 낸드플래시로 만든 SSD(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다. 그런데 그간 많은 반도체 회사가 낸드플래시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늘리지 않았다. 중국 낸드플래시 업체들의 기술 추격으로 국내 기업의 가격 경쟁이나 투자 판단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 물량을 빠르게 늘릴 수는 없나.
“국내 반도체 회사들이 말하길 앞으로 1년간은 공급량을 못 늘리고, 내년부터 조금씩 늘 것 같은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가동할 수 있는 공장은 100% 돌리고 있다. 결국 새로운 공장을 지어야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에 5공장(P5)과 6공장(P6) 재착공에 들어갔고, SK하이닉스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짓는 반도체 공장(팹)을 좀 더 빠르게 완공하겠다는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신규 팹은 언제쯤 완공될까.
“삼성전자가 2024년에 P5 건설 공사를 멈추지 않았나. 이제 와서 다시 공사를 시작하면 아무리 일정을 앞당긴다 해도 완공까지 시간이 걸린다. 공장 지을 땅을 예전에 파뒀어도 공사가 멈춘 상태에서 부지가 비를 맞으면 나중에 공장을 지을 때 다시 수작업들을 해야 한다. 통상 팹을 짓는 데는 땅파기부터 시작할 경우 3년이 걸린다고 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신규 팹 완공 시점을 앞당기려고 공정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전경.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SK하이닉스 올해는 공급량 못 늘려
팹을 늘리면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지 않을까.“생산능력을 늘리면 고객사들이 메모리 반도체를 받으려고 기다리는 기간이 9개월에서 6개월로 줄어들긴 할 것이다. 가격도 조금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폭락 가능성은 적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사이클이 있었던 과거와 현재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과거에는 키몬다, 엘피다 등 메모리 회사가 많았다. D램 업체만 열 몇 개였다. 지금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딱 3곳만 남았다. 게다가 2022년에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가 ‘과거에는 어떻게든 생산능력을 키워 시장을 선점하려 했는데, 이제는 시장 상황을 보면서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주요 메모리 업체는 고객사들의 요구 물량을 고려해 생산량을 신중히 조절하는 기조를 보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수요 측면에서도 가격 급락이 어려운 구조적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는 메모리 수요의 50~60%가 스마트폰, PC, 자동차 등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수요였다. 현재는 데이터센터용 수요가 50%로 가장 많고 앞으로 7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B2C 수요는 경기가 나빠지고 금리가 오르면 크게 떨어졌다. 사람들이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반면 데이터센터용은 B2B(기업 간 거래) 수요라서 금리가 오르더라도 줄어들기 어렵다. 기업은 경기가 나쁘다는 이유로 자사 경쟁력을 좌우하는 AI 투자를 쉽게 관둘 수 없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요를 이끄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금액은 얼마나 되나.
“2023년 기준 상위 5개 하이퍼 스케일러가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한 자본적 지출(CAPEX)이 연간 1000억 달러(약 146조 원)였다. 2029년에는 5000억~6000억 달러(약 730조~876조7800억 원)가 될 전망이다. 한 하이퍼 스케일러가 연간 150조 원 이상 투자한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과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 미래에 당연히 따라올 기술적 변화에 필요한 근간을 구축하는 인프라 투자이기 때문이다. 전력망이나 인터넷망을 설치하는 비용을 과하다고 얘기하지 않는 것과 같다.”
AI 투자가 과하다는 ‘AI 버블론’도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3가지 근거가 있다. 먼저 메타와 구글의 AI CAPEX가 그들의 영업이익과 이익잉여금을 합친 것의 30%도 안 된다. 아마존은 거의 100% 투자하고 있지만 이는 아마존의 핵심 사업 모델이 AI 클라우드 서비스라서 그렇다.
하이퍼 스케일러 5곳이 2029년 AI 데이터센터에 투자한다는 5000억 달러는 현재 전 세계 상위 200개 기업 영업이익 합계액의 2%밖에 안 된다. 5000억 달러에 감가상각 5년을 적용해 감가상각비를 1000억 달러로 잡고 계산한 결과다. AI 도입이 기업 경쟁력에서 너무나 중요한 지표가 된 상황이라 기업들은 영업이익의 2%를 AI 관련 투자에 쓰기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직원들에게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AI 도구 구독료를 내줘야 하고, 자체 AI를 개발한 뒤 이를 위한 AI용 서버도 빌려 써야 하니 말이다. 전체 기업의 IT(정보기술) 관련 비용 대비 하이퍼 스케일러의 투자 금액을 따져봐도 7~10%로 낮은 수준이다. 사람들은 하이퍼 스케일러가 돈을 못 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해다. AI 투자가 본격화되면서 하이퍼 스케일러의 사업 성과도 점차 가시화되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1월 9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에서 분주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동아DB
글로벌 AI 투자 버블 아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CES 2026’에서 스토리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당장은 엔비디아 GPU에 HBM이나 D램이 많이 붙어야 한다. 다만 황 CEO가 그리는 미래에는 낸드플래시가 많이 필요하니 메모리 회사들이 낸드플래시 투자를 많이 했으면 하는 의도를 가지고 선제적으로 얘기한 것 같다. HBM이 너무 비싼 상황이라 AI가 바로 답을 주는 데 필요한 데이터는 HBM에 저장하고, 조금 느리게 끌어와도 되는 데이터는 낸드플래시에 저장하자고 생각한 것 같다. 일반 낸드플래시는 속도가 너무 느려 HBF(고대역폭 낸드플래시)를 만들어 일부 데이터를 저장하고 또 일부는 SSD에 넣자는 구상이다.”
HBF 시장 전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F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 황 CEO가 그리는 구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HBF가 양산될지, AI 모델과 연산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가 불분명한 상황이라 시장 규모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안녕하세요. 임경진 기자입니다. 부지런히 듣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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