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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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6·3 →유신 →386

굴곡진 역사의 현장 지킨 ‘아픔의 세대들’ … 민주화 기수에서 정치인으로 화려한 변신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1-10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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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 →6·3 →유신 →386

    1987년 집회를 마친 대학생들이 차도에 누운 채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자 흩어지고 있다.

    1970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42세의 김영삼, 44세의 김대중, 47세의 이철승이 신민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서자 가장 놀란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당시 53세였던 박대통령은 정치계를 강타한 ‘40대 기수론’을 잠재우기 위해 65세의 유진산 당수가 신민당 후보가 되도록 측면 지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1년 신민당 김대중 후보와 공화당 박정희 후보의 결승전(4·27 대선)은 박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김대중 후보가 유행시킨 ‘10년 세도 썩은 정치, 못 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는 79년 박대통령이 시해된 뒤 80년 ‘서울의 봄’으로 실현될 듯 보였으나 정권을 잡은 것은 신군부였다.

    2002년 12월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정치학자들은 비로소 3김 정치와 박정희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말한다. 어언 70대 후반에 접어든 당시 40대 기수들은 30여년 만에 이루어진 진정한 정치적 세대교체를 남다른 감회로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기나긴 3김 시대를 지나며 한국의 정치 세대들은 어떤 부침을 겪었을까.

    4·19세대, 30대 초반에 원내 진출 … 3김 벽 못 넘어

    40대 기수들을 견제하거나 혹은 추종하며 대안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세력이 4·19세대다. 이들은 193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3김과는 10여년 차이가 난다. 4·19세대의 간판스타로 국회의원 7선을 기록한 이기택 전 의원이 있다. 그 밖에 이세기·이재환·신상우·김중위·김정수 전 의원, 박관용·박명환·설송웅·김원길 의원,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 문정수 전 부산시장 등을 꼽을 수 있다.



    한광옥 최고위원은 서울대 문리대 학생회장, 김정수 전 의원은 부산대 학생회장으로 4·19를 겪었고, 설송웅 의원은 사단법인 4·19회장을 지냈다. 4·19혁명을 촉발한 4·18 고려대 시위는 이기택 당시 고려대 상대 학생위원장이 주도하고 이세기 고려대 총학생회장 대행이 ‘4·18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재환 전 의원은 선언문을 작성한 장본인.

    이들 4·19세대들은 30대 초반에 이미 원내 진출에 성공한 후 30년이 넘도록 정치 주역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으나 결국 3김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또 지난 세월 잦은 당적 변경과 현실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비난도 많이 받아오다 결정적으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 ‘386세대 돌풍’에 밀려 급격히 퇴조하고 말았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사회학)는 이들을 가리켜 ‘혁명의 성취감을 정치로 연장해서 민주화의 험난한 길을 닦거나 때로는 보수주의의 아성을 구축했던 화려한 세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어 등장한 6·3세대는 4·19 선배들에게 밀리고 386세대에게 치인 ‘어정쩡한 세대’로 불린다. 대부분 1940년대 초반에 태어나, 1964년 굴욕적인 한·일수교협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6·3시위를 통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 4·19세대가 반(反)이승만 운동의 중심이었다면 이들은 반(反)박정희 운동을 촉발했다. 이들이 원내에 진입한 것은 1980년대부터. 대표주자로 김덕룡·홍사덕·이부영·서청원·이재오·안상수·안택수·현승일·정대철·문희상·이협·김덕규 의원 등이 있다.

    현재 여야 중진 의원으로 자리잡은 6·3세대는 한때 “60년대 학번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며 정치적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2000년 총선 결과가 386세대의 등장과 4·19세대의 몰락으로 나타나자, 6·3세대가 386세대와 손잡고 약진할 것으로 예상되기도 했으나, 3김 시대의 종식과 함께 이들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7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에게는 유신세대, 민청학련 세대, 위수령 세대, 긴급조치 세대 등 다양한 이름이 따라다닌다. 이들은 69년 3선 개헌 반대투쟁, 71년 교련 반대투쟁을 벌이다 강제징집됐다. 그러나 “군복무를 마치고 나니 10월 유신이더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치적으로 가장 불행한 세대가 되고 말았다.

    70년대 초·중반 학번, 유신·긴급조치 등 불행의 연속

    긴급조치1호가 선포된 1974년 4월3일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에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이 시위를 주도했고 이 4·3시위의 지도부에 이철·유인태 전 의원 등이 있었다. 이 밖에도 김근태·이해찬·장영달·이호웅·김문수 의원, 이신범 전 의원, 장기표씨 등이 이 세대로 분류된다. 이들은 1989년 위수령 선포 20주년을 맞아 ‘71동지회’를 결성하고 “4·19세대와 6·3세대가 정치지향적인 반면, 유신세대는 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며 민중지향적 성격을 갖는다”며 선배 세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이 가운데 상당수가 기성 정치권으로 편입됐다.

    민청학련 세대를 계승하면서 유신독재가 기승을 부렸던 7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은 별도로 ‘긴급조치9호(75년) 세대’라 부른다. 이들은 민청학련 세대와 80년대 386세대 사이에 낀 전형적인 ‘모래시계 세대’로 20대에 군부독재와 광주항쟁을 경험했다. 현역 의원 가운데 설훈·신계륜·김영환·김부겸·심규철 의원 등이 이 세대에 속한다.

    4·19 →6·3 →유신 →386

    ① 김대중, 유진산, 고흥문, 이철승, 김영삼(왼쪽부터).<br>②1970년 9월29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뽑힌 김대중. <br>③ 1969년 4·19 기념 강연회를 마친 후 거리침묵시위에 나선 범청년민주투쟁위원회 소속 인사들. 함석헌 옹을 중심으로 이기택(왼쪽), 이철승(오른쪽)씨의 모습이 보인다.<br>④ 1995년 7월29일 열린 4·19세대와 6·3세대의 공동 시국선언대회.<br>⑤ 여야 386세대 정치인들이 2000년 5월 17일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 및 당선자들이 이날 밤 술판을 벌여 물의를 빚었다.

    50대 대통령 시대를 맞아 과연 유신세대들이 4·19세대처럼 정치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2000년에는 서울대에서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73∼80학번들을 중심으로 ‘관악민주포럼’을 결성하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극적으로 정치권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 것은 386세대다. 60년대생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민주화 운동세력을 지칭하는 이 말은 이후 457세대, 297세대 등 많은 파생어를 낳으며 21세기 최고의 화두로 떠올랐다.

    386세대는 다시 80년대 전반부에 대학을 다닌 광주세대와 87년에서 91년 사이 여소야대 정국을 살아온 6·10세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99년 김대중 대통령이 공천 과정에서 ‘젊은 피 수혈론’을 꺼내들자, 서울대 학생회장 출신인 김민석 전 의원이 80년대 초·중반 주요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들과 학계·법조계 등 신지식인들을 규합해 ‘젊은 한국’을 창립하면서 386세대의 현실정치 참여가 본격화됐다. 15대 총선에서는 386세대가 국회 진출 문턱에서 좌절한 경우가 많았으나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임종석·송영길·김성호·이종걸·장성민·이성헌·김영춘·원희룡·오세훈 의원 등이 대거 원내에 진입했다.

    그러나 386세대가 40대에 접어들면서 급속히 기성세대화하는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국청년정책연구소 김흥규 박사는 이들에 대해 “머리는 개혁을 추구하지만 몸은 안정을 바라는 이중성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4·19세대는 이미 정계은퇴를 고려할 나이에 접어들었고, 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였던 6·3세대와 유신세대의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면 386세대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대구대 홍덕률 교수(사회학)는 2002년 ‘역사비평’ 겨울호에서 “새로운 주류집단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정치와 경제, 시민사회 영역에서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세대는 구주류에 도전했지만 여전히 구주류의 낡은 행태와 문화를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답습하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4·19세대가 몰락한 뒤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에 관계 없이 언제라도 세대교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이 바뀌어도 낡은 정치는 청산되지 않는 정치현실이 정치인의 조로현상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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