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2003.01.16

정치개혁 ‘盧心林心’ 시작되나

임혁백 교수가 맡은 ‘정치개혁연구실’ 시선 집중 … ‘단순 연구’ 넘어 盧 당선자 힘 실릴 듯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1-09 15: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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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개혁 ‘盧心林心’ 시작되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회의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노무현 당선자와 인수위 관계자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개혁’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화두’로 던졌다. “정치개혁만 연구하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내에 ‘정치개혁연구실’을 두도록 한 것이다. 이 기구에 노당선자가 힘을 실어줄 것은 분명하다. 노당선자는 2003년 1월3일 정치개혁연구실장에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임명했다. 자연히 임실장이 누구냐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또한 연구실의 향후 역할에 대해서도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이광재 전 노무현 후보 기획팀장은 안희정 전 정무보좌역과 함께 ‘좌희정, 우광재’로 통하는 노당선자의 측근. 인수위 내 당선자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는 이 전 팀장은 임실장에 대해 “노당선자와는 매우 잘 통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후보 시절 노당선자 캠프에선 정치문제에 관한 한 ‘盧心林心’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한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당시 김대통령에게 정치문제 전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최장집 교수와 비교하는 시각도 있다.

    99년 여름 노당선자는 임교수와 처음 만났다. 민주당 김근태 의원이 운영하는 ‘국민정치연구회’가 주최한 강연회장에서였다. 당시 임교수는 강사였고 노당선자는 수강자였다. 노당선자는 임교수 강의를 끝까지 경청한 뒤 비서관에게 “임교수의 강의원고를 구해오라”고 지시했다. 노당선자는 나중에 임교수의 이날 강의원고를 다시 한번 정독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노당선자는 임교수 강의에 만족했다. 이날 임교수의 강의주제는 ‘한국정치의 개혁과제’. 노당선자가 2003년 1월 임교수에게 맡긴 임무와 우연하게도 일치한다.

    “대선 때 제기한 정치개혁론에 상당한 영향”

    정치개혁 ‘盧心林心’ 시작되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강연회 이후 임교수는 노당선자가 외부 교수들과 만날 때 자주 합석해왔다. 대통령선거 때도 노당선자는 바쁜 일정을 쪼개 임교수에게 수차례 자문을 구했다. 임교수는 이메일을 이용한 보고서 제출의 형태로도 노당선자에게 정치개혁에 관해 조언했다. 정치가 토론 주제인 1차 대선후보 TV합동토론을 앞두고도 노당선자는 임교수를 찾았다. 노당선자의 한 측근은 “임교수는 노당선자가 대선 때 제기한 정치개혁론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임교수는 노당선자 캠프에 ‘정치권 세대교체’를 강력하게 주문했다. 또한 ‘돈정치·계보정치·지역정치 타파 및 새로운 정치’를 선거 이슈로 삼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다음은 노당선자 한 측근의 말. “임교수가 노당선자에게 제시한 선거전략의 기조는 일종의 ‘다이내믹함’이었다. 기존 정치 틀로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없으니, 정치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라를 이끌 역동적 에너지를 창출하겠다고 호소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논리가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고 본다.”



    임채정 인수위 위원장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치개혁연구실은 말 그대로 연구하는 곳이지 무엇을 결정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연구대상도 선거구 문제 등이 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나 노당선자는 국내의 쟁쟁한 정치권 인사들, 정치학 교수들을 놔두고 굳이 스탠퍼드대학 교환교수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임교수를 불러들여 정치개혁연구실장에 앉혔다. 과거와 현재의 노당선자와 임실장 간 정황으로 봤을 때 임실장의 역할이 ‘단순 연구’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는 시각도 있다. 노당선자로부터 힘을 부여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 ‘盧心林心’ 시작되나

    최근 인수위 내 정치개혁 연구실장에 임명된 임혁백 고려대 교수.

    인수위 관계자는 “정치개혁연구실은 그동안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계 등에서 제기해온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선거법 개정,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개혁 관련법 개정에 관한 의견을 수렴해 개혁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개헌,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신설 등 권력구조 개편 문제에까지 접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임실장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 등 개헌에 적극적 입장을 보여왔다. 그는 또 한 언론 기고문에서 “권력 사유화를 막기 위해 대통령 주변 거대 조직을 해체하고 권력기구의 실권행사 과정을 공개하자. 서비스형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서비스의 질을 측정하는 정치실행지표를 개발해 매년 조사결과를 공표하자. 싸움판 정치를 막기 위해 여야 공치(共治) 기구를 가동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임실장이 이러한 자신의 지론을 이번 기회에 현실화할지도 관심거리다.

    권력구조 개편과 전반적 사회개혁까지 연계 가능성

    정치개혁 문제를 전반적 사회개혁과 연계해 다룰 경우 정치개혁연구실은 더욱 민감한 위치에 서게 된다. 임실장은 진보적 사회운동을 기존 야당세력과도 다른 정치세력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진보적 사회운동의 정치적 역할론을 강조해왔다. 다음은 ‘주간동아’가 확인한 임실장 기고문(‘창작과 비평’ 98년 가을호) 중 일부 대목.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억울하다. 진보적 사회운동은 군부정권 하에서 온건 야당세력을 제도 밖으로 끌어내어 투쟁대열에 합류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정치공간이 열리게 되었으나 곧 온건 야당세력에게 주도권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국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IMF관리 체제의 도래는 세계화라는 국제자본운동의 네트워크에 한국이 통합됐음을 의미한다. 서구의 역사와 운동을 과잉 보편화하려는 것은 식민지적 사고의 새로운 부활이며, 탈(脫)종속적 사고로 세계화와 대면해야 한다. 우리의 사회운동은 신자유주의가 강요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복지축소, 신빈곤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보편적으로 독해하여 문제해결의 전범을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1월6일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임실장은 정치개혁연구실 운영방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다크 호스’로 떠오른 정치개혁연구실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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