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2003.01.16

“영어 단어 암기, 한자 접목하면 쉬워요”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 “영어 어원은 한자 … 음과 뜻 비슷한 경우 많아”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1-09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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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단어 암기, 한자 접목하면 쉬워요”
    ”영어를 배울 때 quick은 빠르다, 이렇게 외우죠.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뿐 아니라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도 외우는 방법밖에는 도리가 없어요. 어원을 라틴어나 그리스어에서 찾지만 왜 그런 말이 생겼는지 그 뜻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자와 비교해보면 쉽게 풀려요. 그렇다면 영어 quick에 대응하는 한자는 무엇일까요? 빠를 곽( )이 있습니다. 비 우(雨) 머리에 새 추( )자를 쓰죠. 비가 오면 새가 피할 곳을 찾아 바빠진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글자예요. 우리의 ‘곽’이라는 발음이 유럽으로 건너가 ‘퀵(quick)’이 된 것이죠. 발음은 김치가 일본으로 건너가 기무치가 되는 것처럼 변합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일까요? 사례가 한둘이라면 우연의 일치지만 그 예가 수없이 많다면 우연이 아니죠. quick과 비슷한 말로 soon이 있어요. soon은 빠를 신(迅)자에서 나왔죠. 의미는 같고 음은 모음변화로 달라진 겁니다.”

    대종언어연구소 박대종 소장(39)의 풀이를 듣고 있으면 마술처럼 영어와 한자가 하나가 된다. 억지가 아닐까 의심된다면 몇 가지 더 풀이해보자. 박소장은 자신의 이름을 영문으로 표기할 때 ‘Bark’을 고집한다. 박(朴)은 나무 목(木)과 점 복(卜)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며 박의 음가는 복에서 비롯됐다. 보통 ‘朴’을 성(姓)으로만 알고 있으나 실제 ‘朴’은 나무껍질이라는 뜻. 영어 ‘bark’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개가 짖다’는 뜻 외에 나무껍질이라는 뜻이 있다.

    박소장은 발음 면에서 우리의 ‘박’과 영어 ‘바아악’ 사이에는 ‘r’라는 차이가 있는데 이것은 ‘윤활자음’이라고 설명한다. 단어의 의미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않고 단지 발음만 매끄럽게 해주는 자음이다.

    육사 재학 시절 한자 해석에 빠져

    한편 박-bark, 木-本-book의 관계도 유추해볼 수 있다. 과거에는 원래 나무껍질을 종이 삼아 책을 만들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된다. 나무껍질 ‘bark’과 책 ‘book’이 완전히 다른 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구미의 어원학에서는 어근 ‘eu-’가 그리스어계 접두어로 good, well, pleasant 등의 뜻을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 천, 따 지’식으로 암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왜 ‘eu’가 좋다는 의미일까. 박소장은 ‘eu’의 어원을 ‘즐거울 유(愉)’에서 찾는다. euphony(좋은 음조), eulogy(찬사), eugenics(우생학), euphoria(행복감), eupepsia(소화 양호), euthanasia(안락사)와 같은 단어들이 유(愉)에서 비롯됐다.

    여기서 한발 나아가 ‘eu’의 어원인 즐거울 유(愉)를 해부해보자. ‘愉’는 마음 심(心)과 통과할 유(兪)가 합쳐진 글자다. ‘兪’는 사람(人 혹은 들 入), 배(舟), 내(川)의 결합으로 사람이나 짐 따위를 실어 강 저쪽 편 목적지에 도달하게끔 배에 태워주는 형상을 나타낸다. 결국 즐거울 유(愉)는 위험이나 시험 따위를 무사히 통과하거나 어려운 일을 넘겨 즐겁고 기쁜 모습을 표현한 글자다.

    이런 식으로 박소장은 ‘dawn’은 새벽 단(但), ‘you’는 너 여(汝), 접두어인 ‘cern-’은 고를 선(選), ‘yearn’은 그리워할 연(戀)과 연결시킨다. 결론적으로 상당수의 영어 어휘는 우리말을 알파벳이라는 소리글자로 표기한 것일 뿐 의미는 같다는 설명이다. 즉 우리말이 정음(正音)이라면 중국어나 일본어, 영어는 변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박소장의 주장과는 반대로 영어가 한자와 우리말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박소장은 “한자는 자형(字形), 자음(字音), 자의(字意)가 모두 존재하지만, 서양 언어는 어원을 밝혀줄 자형이 없다”면서 “어원을 밝힐 수 없는 소리문자가 동양 언어에 영향을 주었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영어 단어 암기, 한자 접목하면 쉬워요”
    박소장은 육군사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그때 그를 괴롭힌 것은 한자의 해석이었다. 2000년 전 후한의 학자 허신이 ‘설문해자’를 통해 문자의 구성체계와 어원에 대한 기록을 남겼고 이를 토대로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글자가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 좋을 가(可)의 어원은 무엇인가. 그는 독자적인 연구 끝에 ‘可’가 입 구(口)와 ‘하~’ 하고 숨이 터져 나오는 모습을 그린 ‘ ’로 이루어져 있는 글자로 ‘가’라는 음은 ‘구’의 ‘ㄱ’ 소리와 ‘하’의 ‘아’가 합쳐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커, 좋다” 하거나 무엇에 놀랐을 때 “커, 이럴 수가” 하고 저절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바로 ‘可’라는 글자로 형상화된 것이다. 기막힌 글자가 아닌가.

    최근에 밝혀낸 것은 올 래(來)자다. 어느 누구도 ‘來’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來’자가 보리의 형상이라는 사실은 밝혀졌으나 왜 ‘오다’는 의미로 사용하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문제에 매달렸던 박소장은 문득 보리의 까끄라기(낟알 겉껍질에 붙은 수염)를 떠올리고 무릎을 쳤다. 밭일 하는 동안 옷에 붙은 까끄라기가 집까지 따라온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來’자가 ‘오다’는 의미로 굳어지면서 실제 ‘보리’를 가리키는 글자는 ‘麥’이 되었다.

    한자 해석에 ‘미친’ 박소장은 1991년 대위로 전역한 뒤 대종언어연구소(www.hanja.com)를 설립했다. 92년 발간한 책 ‘한자핵(韓字核)’은 첫 결실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앞에서 밝힌 한자의 어원해설뿐 아니라, 한자를 만든 민족은 한족(漢族)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동이족)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폈다. 이때부터 그는 ‘漢字’가 아닌 ‘韓字’와 동아시아 문자라는 의미의 ‘동방문자’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영어 어휘 70% 이상이 우리말 변음”

    이 책을 들고 한글어문학회 남광우 교수(작고)를 찾아간 그는 남교수로부터 앞으로 우리말 연구에 매진하라는 격려와 함께 어문연구를 위한 참고서적들을 건네받았다. 이후 중세·고대어를 연구하면서 그는 우리말과 영어의 연결고리를 발견했다. 95년 ‘뿌리 뽑힌 영어’는 연구 결과의 일부를 사람들에게 공개한 것이다.

    “일반인들이 영어 단어를 쉽게 배울 수 있게 해주는 학습서 개념으로 펴낸 것인데 반응이 좋았어요. 터무니없다고 하던 사람들도 자꾸 증거를 대니까 수긍을 하더군요. 더욱 놀란 것은 소위 전문가라는 분들이 제 연구를 모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뿌리 뽑힌 영어’ 이후 그는 99년부터 체계적인 연구 성과를 담아내기 위해 ‘나는 언어 정복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펴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5권이 나왔고 앞으로 15권까지 펴낼 예정이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말과 영어 간의 음운대응법칙뿐 아니라 우리말과 일본어, 일본어와 영어 간의 음운대응법칙까지 밝힘으로써 외국어 학습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영어 어휘의 70% 이상이 우리말을규칙적으로 변음해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이 음법을 이해하면 영어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 종전과는 다른 폭발적인 지력상승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박소장은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한자 학습 붐을 영어와 연계할 수 있다면 학습효과는 2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그의 연구는 우리말과 영어 어휘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앞으로는 한국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영어의 어순 정복을 연구 목표로 삼고 있다.

    한자가 우리말이라거나, 영어의 어원이 한자라는 주장은 아직 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박소장이 제시한 ‘외국어 학습법’은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에게 솔깃한 방법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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