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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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레이션’으로 양념한 맛 좋은 ‘사진집’

  • 입력2003-01-09 13: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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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레이션’으로 양념한 맛 좋은  ‘사진집’
    사진집 ‘러브’가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사진집은 뉴질랜드의 한 출판사가 기획한 M.I.L.K 프로젝트(Moments of Intimacy, Laughter and Kinship: 친밀감과 웃음, 가족애의 순간들)의 두 번째 결과물이다. 출판사측은 사진공모전을 열고 164개국 1만7000여명의 사진작가들이 보내온 4만여장의 사진 가운데 300장을 골라 ‘프렌드십‘ ‘러브’ ‘패밀리’ 등 3권의 사진집을 펴냈다. 이 책은 9개 언어로 번역돼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의 판매부수를 기록했으며 국내에서는 이레 출판사가 이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

    ‘러브’의 전문에서 킴 푹(베트남전쟁 때 폭격으로 화상을 입고 벌거벗은 채 울부짖으며 거리를 내달리다 AP통신 사진기자의 렌즈에 포착된 소녀)은 사진의 위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 장의 사진이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잊지 말기를. 그 어떤 폭탄보다도 강력한, 사랑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러브’에는 아름답고, 슬프고, 익살스러운 100가지 사랑의 표정들이 담겨 있다.

    그러나 오늘은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사진에 영감을 불어넣는 내레이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러브’에는 정현종 시인이 옮겨놓은 짧지만 놓치기 아까운 시어들이 군데군데 보석처럼 박혀 있다. 할머니의 발을 마사지하고 있는 수녀의 사진 아래서 테레사 수녀의 한마디를 읽을 수 있다. “유일한 치유는 사랑이다.” 이 세상 둘도 없는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의 시선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말 덕분에 감동은 배가 된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을 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 여섯 살짜리 아이에게 책 읽는 마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 힘든 일도 없다. 이가 하나도 남지 않은 할머니의 따뜻한 숨결보다 더 큰 힘은 이 세상에 없다.”

    사실 사진집에서 내레이션 읽는 재미를 처음 제공한 책은 바다출판사의 ‘블루데이 북 시리즈’다. 2001년 5월 첫 출간된 우울한 날에 읽는 책 ‘블루데이 북’에 이어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디어 맘’, 연인들을 위한 ‘미스터 킹카를 찾아서’ 등 3권이 나왔고, 1월 중 네 번째 책 ‘인생의 의미(가제)’가 나올 예정이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25만부가 판매됐다.

    저자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는 너무나 ‘인간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동물 사진에 상큼한 설명을 달아 새로운 개념의 사진 에세이집을 펴냈다. ‘디어 맘’에는 기차에 올라타는 거대한 코끼리 엉덩이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작고 연약해서 누군가에게 기대야 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니…. 지금은 상상이 되질 않아요.” 다음 사진은 바나나보다도 작은 원숭이의 모습이다. 글은 이렇게 계속된다. “하지만 분명 그런 때가 있었죠.” 이어서 어미곰에게 기대어 있는 어린 백곰이 등장한다. 다음 글귀와 함께. “그리고 내가 기댔던 건 바로 엄마였어요.”



    사진에 영감을 불어넣는 이 한 줄의 설명을 얻기 위해 출판사측은 초벌 번역을 하고 다시 시인 신현림씨에게 의뢰해 말을 덜어내고 문장에 윤기를 더했다. 시인은 설명투의 문장에서 군더더기를 싹 빼버려 경쾌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시어로 바꾸었다. ‘러브’나 ‘블루데이 북’ 시리즈는 보는 데 그치지 말고 읽어야 제 맛인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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