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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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닮는다? 노! 닮아야 부부 된다”

서구 과학자들 호감도 측정 실험 통해 입증… 본능적으로 얼굴 닮은 이성에 끌려

  • < 이영완/ 동아사이언스 기자 > puset@donga.com

    입력2003-07-22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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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는 닮는다? 노! 닮아야 부부 된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한 집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생활습관을 갖다보면 어딘지 인상이 비슷해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부 과학자들은 ‘닮아진 것’이 아니라 ‘원래 닮아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이러한 결합이 보다 나은 후손을 낳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

    스코틀랜드 성 앤드류대 얼굴 인지실험실은 3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어떤 얼굴에 더 끌리는지를 알아보는 심리학 실험을 했다. 그런데 이 사진들은 참가자들의 얼굴을 토대로 해 성(性)만 바꿔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 참가자의 사진을 변형시켜 여성의 사진으로 만들고, 이렇게 만든 얼굴을 다시 여러 연령대로 만들었다. 결국 나와 닮은 이성이 다양한 연령대로 제시된 것. 학생들은 이 사실을 모르는 채 실험에 참가했다.

    올해 초 영국의 과학 대중지인 ‘뉴사이언티스트’에 발표된 실험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또래뿐만 아니라 높은 연령층까지 자신과 닮은 이성에 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로이트는 일반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했던 어린 시절에 본 부모의 모습을 닮은 이성에 끌린다고 주장한 바 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과 닮은 이성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의 부모 중 한쪽을 생각해냈다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 합성한 사진에 호감



    페렛 교수는 이미 1999년 같은 과의 펜톤 보크 교수와 함께 비슷한 연구를 한 바 있다. 당시 페렛 교수팀은 여성 52명의 사진을 컴퓨터를 이용해 남성으로 바꾼 뒤, 사진을 제공한 사람들 가운데 36명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면서 매력도를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얼굴을 변형한 사진에 높은 점수를 준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과 닮은 얼굴에 끌린다는 사실은 간단한 게임을 통해서도 입증됐다. 캐나다 맥매스터대 심리학과 박사과정의 리사 드브린느씨는 평균 연령 21세의 남녀 24명에게 16명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면서 상대를 믿지 못할 경우에는 돈을 똑같이 나누고, 믿음이 가면 상대에게 돈을 맡기고 나중에 더 큰 이익을 얻는 게임을 실시했다.

    상대를 믿지 못하면 1달러씩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 한편, 상대를 믿으면 내 1달러를 맡긴 뒤 상대도 나를 믿으면 둘 다 1달러를 더해서 2달러씩 받지만 상대가 나를 안 믿으면 내 몫까지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때 제시된 16장의 사진은 게임에 참여한 사람의 얼굴을 참가자들이 전혀 모르는 얼굴과 합성했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들끼리 합성한 것이었다.

    드브린느씨는 실험 결과 사람들은 게임의 3분의 2 이상에서 자신의 얼굴로 합성한 인물에게 신뢰를 나타냈다고 ‘영국 왕립학회보’ 7월7일자에서 밝혔다. 이때 아무도 자신이 선택한 인물이 자신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합성한 것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연구팀은 단지 낯익은 얼굴을 선호하기 때문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유명 영화배우들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함께 보여줬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을 닮은 배우자를 찾는 것은 일종의 미스터리다.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은 후손들에게 열성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유전적으로 유사한 개체간의 결합은 ‘근교약세(inbreeding depression)’라는 심각한 결함을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태어난 후손들은 유아 사망률이 높고, 발달장애, 심장의 기형, 청각 상실, 왜소증 등의 결함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영국 캠브리지대 팻 베이트슨 교수는 자신과 유전자가 완전히 다른 사람과 거의 흡사한 사람 사이에서 일종의 최적 조건을 찾는 것이 생물계의 생식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베이트슨 교수는 1980년대에 메추라기 새끼를 일부러 가슴에 점을 칠해둔 어미 새와 함께 키우면서 자라서 어떤 짝을 찾는지를 조사했었다. 그 결과 어른이 된 메추라기는 제 짝으로 어미와 비슷한 무늬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새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사 결과 이렇게 맺어진 짝들은 사람으로 치면 4촌간 정도였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메추라기는 다른 개체들에 비해 알을 낳는 시기가 더 빨랐다. 결국 자손을 많이 낳을 수 있다는 의미다. 베이트슨 교수는 인류 역사에서 4촌간의 결혼이 광범위하게 허용돼왔다며, 완전히 같은 유전자를 가진 짝을 피함으로써 후손이 치명적인 유전적 결함을 갖는 것을 막으면서도, 유전적으로 가까운 짝을 택함으로써 이미 입증된 건강한 유전자를 계속 퍼뜨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점은 면역학 연구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다. 체취는 인체 내에서 병원체와 건강한 세포를 구별하는 면역물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집단 ‘주조직적 합성복합체(MHC)’의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특정한 냄새를 선호하는 것은 특정 MHC 유전자를 선택하는 셈이다. 미국 시카고대의 마사 맥클린톡, 캐롤 오버 박사 연구팀은 올 1월 세계적인 유전학 저널인 ‘네이처 지네틱스’에 여성은 아버지와 유사한 냄새를 가진 남성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MHC 유전자를 가진 남성 6명이 이틀 동안 입은 티셔츠들을 각기 다른 상자에 넣고 미혼여성 49명에게 선호하는 냄새를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여성들이 선호한 냄새는 MHC 유전자가 자신과 비슷한 남성의 것이었다. 또 이 남성의 MHC 유전자는 여성의 아버지와 닮아 있었다.

    맥클린톡 박사는 “부모의 유전자가 완전히 다른 경우에 우수한 유전자가 자손에게 발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양극단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MHC 유전자와 비슷하되 완전히 똑같지 않은, 자신의 아버지와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배우자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여성은 배우자를 찾을 때 입장에 따라 다른 남성형을 선호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1999년 6월24일자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들은 남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 보이는 남성적인 얼굴을 선호하는 반면 지속적인 관계를 원하는 여성의 경우는 좀더 여성적인 얼굴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에 대해 여성들이 가임기에는 면역력이 강한 남성적인 얼굴을 선호하지만 자손을 키울 때는 여성에게 협조적인 여성적인 얼굴을 선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이제 나와 닮은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할까. 그 전에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면 일단 눈을 마주쳐라.” 영국 런던대학 인식신경과학연구소의 커누트 캠프 박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매력적인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 먹이나 물이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때처럼 대뇌 보상중추의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즉 뇌에 불꽃이 튄다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이라도 눈길이 딴 곳을 향하고 있으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른들이 말을 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말하라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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