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3

2002.09.26

한국 꽃미남들 서글픈 ‘저팬드림’

전업서 알바까지 수천명 웃음 팔고 몸 파는 생활… 조폭에 당하고 마약에 상하고 ‘돈 모아 귀국은 별따기’

  • < 도쿄 신주쿠= 안영배 기자 > ojong@donga.com

    입력2003-06-20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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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꽃미남들 서글픈 ‘저팬드림’
    일본 도쿄의 번화가인 신주쿠 가부키초. 여성 접대부들이 나오는 룸살롱과 남성 접대부들의 일터인 호스트바(이하 호빠)가 함께 어우러져 밤의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우는 곳이다.

    9월6일 저녁 6시, 아직 유흥을 즐기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거리는 일명 ‘삐끼(거리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들로 붐볐다. 기자 일행을 보고 일본어로 말을 건네다 아니다 싶었던지 영어가 튀어나오고, 마지막에는 서툰 한국어까지 나왔다.

    집요한 삐끼들의 손짓을 물리치면서 거리를 걷다보니 붉은 글씨로 사랑 ‘애(愛)’자를 써놓은 거대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잘생긴 청년들의 얼굴 사진이 애 자를 중심으로 빼곡이 걸려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베스트 1, 2, 3이라는 숫자가 매겨진 얼굴 사진들은 그 순위에 맞게 사진 크기가 달랐다. 알고 보니 베스트 1은 그 호빠에서 여성 손님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으며 매출액 1위를 기록한 호스트란다.

    기자 일행이 일본을 방문하기 며칠 전, 일본의 민영방송 니혼TV에서 황금시간대인 저녁 9시에 ‘신주쿠의 남과 여’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해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일본 최대 호빠인 ‘아이(愛)’는 신주쿠의 유흥업소를 찾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아이’는 체인점 형식으로 운영되는 기업형 호빠다. 신주쿠의 ‘아이’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일명 ‘넘버원’이 가즈시(26)다. 그를 찾는 여성들로 ‘아이’는 매일 밤 문전성시를 이룬다. 가즈시는 굳이 전화를 걸어 애걸하지 않아도 단골 여성들이 그의 매출액을 늘려주기 위해 때가 되면 업소를 찾는다고 방송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본격적인 영업시간은 밤 11시부터지만 마감시간은 사실상 없다. 가즈시는 보통 새벽 6시까지 손님을 맞은 뒤 퇴근하는데, 어떤 때는 라면 등으로 아침 해장을 하고 바로 24시간 가라오케에 불려가 오전 11시까지 여성 손님의 시중을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받는 월급은 기본급 90만엔(약 900만원)에 매상에 따른 수당. 물론 손님들이 주는 팁은 별도다. 가즈시는 지난 8월 월급으로 200만엔을 받았는데, 올 들어 가장 적은 액수라고 했다. 한 달에 300만∼400만엔은 챙겨야 ‘넘버원’으로서 체면이 선다는 것이다.

    한국 꽃미남들 서글픈 ‘저팬드림’
    방송에는 여성 접대부도 등장했다. 일명 ‘나가요파 언니’인 이 여성은 “나도 스트레스를 풀 곳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들이 하룻밤에 쓰는 돈은 적게는 20만엔에서 많게는 80만엔. 간혹 호스트들이 독한 술을 원샷하거나 아양을 떨면 지갑에서 3만∼4만엔의 팁이 즉각 나온다고 했다. 술값도 천양지차여서 5만엔짜리 싼 와인에서부터 50만엔짜리 양주까지 있다. 이날 카메라에 잡힌 손님 중 한 명은 50만엔짜리 ‘카뮈’를 천연덕스럽게 주문했다.

    ‘금남(禁男)의 집’ 호빠의 내밀한 장면들은 일본 남성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아나운서도 “세상에 저런 곳이 있었나요”라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본의 화려한 호빠 세계를 전해 들은 국내의 ‘꽃미남’들도 일본에 대거 ‘진출’하고 있다. 실제 일본에 진출한 한국 호빠 주변에는 ‘한국에서 선수(호스트를 가리키는 은어) 전원 긴급 공수’라는 광고전단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얼마 전 경찰청 외사과는 일본 내 호스트업계 불법취업조직 일당을 적발한 결과, 일본에 진출한 한국인 호스트들이 무려 3000여명 수준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신주쿠에서 만난 한국인 호스트 강민우씨(가명·29)의 말은 이와 달랐다.

    “호빠 한 업소당 평균 20명(큰 업소는 40∼50명)의 선수들이 뛰고 있는데 도쿄권 내에서 신주쿠, 아카사카, 가와사키, 우에노, 니시가와구치 등 유명 지역의 호빠만 헤아려봐도 100개 는 족히 되므로 이들만 해도 3000명은 된다. 이 외에 오사카, 요코하마, 나고야 등에도 도쿄지역과 비슷한 수준으로 호빠들이 산재해 있다. 아무튼 한국의 호스티스들이 진출해 있는 곳이면 무조건 호빠도 있다고 보면 된다. 거기다가 한국 유학생들 중 일부가 아르바이트 삼아 선수로 뛰는 것을 감안해보면 그 숫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쉽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알려진 일본 호스트바. 지난해에 일본으로 건너온 김현이씨(가명·26)의 생활을 한번 들여다보자. 현이씨는 175cm의 키에 곱상하게 생긴 얼굴로 비교적 호남 형. 한국에서는 20대 초반까지만 호빠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자신의 나이 정도도 ‘어린 선수’로 통해 한국에서 20대 초반까지 뛰다 일본으로 건너오는 선수들이 많다고 했다.

    현이씨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다. 집세가 워낙 비싸 방 4개짜리 2층집을 월세 28만엔에 얻어 8명이 나누어 부담한다는 것. 생활비는 한 달에 5만엔씩 갹출하는데, 각 방마다 TV와 비디오가 설치돼 있고 한국방송까지 나와 생활에는 별로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여성 접대부들이 일하는 룸살롱이 오전 1시쯤 끝나기 때문에 그는 밤 12시에 출근해 새벽 6시에 퇴근하는 게 보통. 그가 일하는 호빠는 여성 접대부들이 일하는 룸살롱들 틈 속에 끼여 있었다. 여성 접대부들이 스트레스와 피곤에 지친 몸을 ‘빨리’ 풀도록 배려한 것으로 한국 호빠의 주고객은 거의 대부분 한국 여성들이라고 했다.

    한국 꽃미남들 서글픈 ‘저팬드림’
    또 업소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가 일하는 호빠는 출근카드로 출퇴근 체크를 하고 있었다. 일본의 호빠는 한국과 달리 폐쇄된 룸이 없고 사방이 훤히 트인 테이블이 룸 구실을 해 한국처럼 공개적으로 퇴폐적인 행위를 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현이씨는 ‘아타라시(신참)’라고 해서 선배들이 처음에는 많이 챙겨주었다고 했다. 선배들이 자신의 ‘스폰서(여성 고객)’가 오면 일부러 그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하고 젓가락에다 1만엔짜리 한 장을 꽂아 팁으로 주었다는 것.

    현이씨가 일본으로 올 때 약속받은 월급은 25만엔. 그러나 여기에는 한 달에 네 번씩 ‘도항(손님을 데려오는 것)’을 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어 이를 채우지 못하면 5만엔밖에 받을 수 없다. 반대로 도항 횟수를 다 채우고 ‘우라기(자기 매상)’도 확실히 올리면 한 달에 100만엔도 챙길 수 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런 제도가 거의 없어졌다. 고정 월급제가 없어진 대신 자기 손님이 호빠에 찾아와서 술을 팔아주면 무조건 수입의 50%를 챙겨가는 제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신주쿠에서 베스트 호스트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채수영씨(가명)는 새로운 급여 시스템으로 매달 평균 60만엔을 벌고 있고 그 밖에 손님들이 개별적으로 주는 팁도 짭짤하다고 했다. 다만 손님들이 ‘사인 빌(Sign Bill·외상)’을 할 경우 수금도 본인이 책임져야 해 가끔씩 질 나쁜 손님들이 술값을 떼먹고 달아나는 바람에 호스트들이 눈물을 삼키는 일도 종종 있다고.

    그런데 현이씨는 선배들의 경우 다들 월급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 스폰서에게 받은 선물과 돈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선배들이 많아 알아보니 잘나가는 선수는 스폰서로부터 월급까지 받고 있고 잠도 공동 숙소가 아니라 스폰서 집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최근 현이씨도 많은 노력 끝에 50대의 독신 한국 여성을 스폰서로 잡는 데 성공했다. 키 150cm에 몸무게 100kg쯤 되는 여성으로 일본 남성과 결혼해 살다 남자가 죽자 그 유산을 물려받아 돈이 무척 많은 여자였다. 선배들은 현이씨에게 운수대통이라고 축하하면서 관리에 신경을 쓰라고 충고했지만 사실 20대 나이에 50대 여성의 파트너가 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아 처음에는 무척 망설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다진 현이씨는 선배들로부터 받은 교육대로 처음에는 여자의 섹스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튕기다 보면 안달이 난 여자가 뭔가를 선물한다는 게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몇몇 선배들은 이런 수법으로 로렉스나 까르띠에 시계, 아르마니나 베르사체 옷 등 몇 백만원에서 몇 천만원짜리 고가선물을 받기도 했다. 현이씨도 값비싼 루이비통 지갑과 20만엔이 들어 있는 봉투를 받은 뒤 그 50대 여성의 섹스 요구에 응했다.

    현이씨는 이후 이 여성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서울의 30평형 아파트 한 채 값 정도의 돈을 받았으나 ‘빠찡꼬(구슬치기 노름)’로 다 날려버렸다.

    일본에서 3∼4년간 착실히 자기관리를 하면서 선수 생활을 하면 집 한 채 값 정도는 벌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노름과 마약에 빠지면 무일푼으로 호빠 생활이 끝난다는 게 현이씨의 얘기였다.

    한국 꽃미남들 서글픈 ‘저팬드림’
    일본 호빠에서 성공하려면 손님들을 즐겁게 하는 ‘말빨’과 비상한 두뇌가 필요충분조건이다. 즉 ‘화면(외모)’보다는 ‘아타마(머리)’가 좋아야 여성들의 인기를 끌 수 있다. 그러나 선수로서 성공 비율은 10%도 채 안 된다는 게 호빠업계의 추정이다. 그만큼 이국에서 버텨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신주쿠에서 ‘부초’(선수들을 관리하는 직책)를 하는 이모씨는 일본에서는 마약을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호스트와 호스티스들 사이에 마약이 퍼져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우리 바에서는 철저하게 선수들의 마약을 금지하고 있다. 만약 발각되면 가게에서 내쫓아버린다. 그러잖아도 선수들에겐 불법체류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는데 거기에다 마약을 하다 걸리면 바마저 운영하기 힘들게 된다.”

    선수들은 노름과 마약의 유혹 외에 불법체류자라는 꼬리 때문에 늘 주위를 살피는 긴장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이민국 직원한테 붙잡히면 1주일간 감호소 생활을 하다 한국으로 추방되지만, 일본 경찰에게 걸리면 최저 1개월에서 3개월까지 감방 생활을 피할 수 없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5년 이내에는 일본 재입국이 불가능하다.

    한국 호빠 역시 거의 대부분이 불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빠로 등록할 경우 세금이 비싸다는 현실적 이유 외에도 불법체류자 고용 자체가 영업정지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인이 운영하는 호빠는 대로변에 당당히 간판을 세우고 영업하지만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빠는 여성 접대부를 고용하고 있는 단란주점의 영업이 끝나면 그 가게를 빌려 운영하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 많다. 신주쿠의 부초인 이씨의 가게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룸살롱의 영업이 끝난 뒤 이 가게를 빌려 영업하고 있다.

    또 일본의 호빠들은 야쿠자 조직과 연계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쿠자의 텃세가 심한 오사카에서 선수로 일하다 지난해 신주쿠로 옮겨온 김민수씨(가명·32)의 말.

    “일본은 동네마다 야쿠자 사무실이 있는데, 업소를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야쿠자에게 일정액을 상납한다. 업소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야쿠자 조직에 바치는 보호비는 한 달에 10만엔 선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건너온 건달들이 일본 야쿠자 조직의 말단으로 들어간 뒤 한국인 호빠와 룸살롱들을 관리하면서 지나치게 착취한다는 점이다. 오사카에서 ‘청기’라는 이름을 쓰는 한국인 깡패는 한국인 호빠의 보호비로 무려 50만엔을 받고, 또 선수에게 일수를 강요한다. 무조건 5만엔의 선이자를 떼고 20만엔을 ‘마마(마담)’에게 주면서 25만엔의 일수를 고이율로 쓰라고 강요하는 식이다. 단 하루라도 일수를 찍지 못하면 벌금이 3만엔이니 강도나 다름없다. 그러나 선수들은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고 주먹이 무서워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는 차라리 한국인 여성 접대부들이 형편이 훨씬 낫다.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아저씨(일본 야쿠자)’들이 있는 경우 조직의 말단 서열에 있는 한국인 깡패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 또 ‘아저씨’가 있는 호스티스를 스폰서로 뒀다가 야쿠자에게 걸려 초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야쿠자가 뒤에 있는 여자 스폰서는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절대 손대지 말라는 불문율이 선수들 사이에 퍼져 있다.

    마지막으로 신주쿠의 부초 이씨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소개소(일본 호빠 알선 취업조직)들의 사탕발림에 절대 넘어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카드 연체로 급전이 필요한 대학생 등 젊은 남성들이 일본 호빠에서 일하면 최소 월 300만∼400만원의 수입이 보장된다는 꾐에 넘어가 비싼 소개료를 주고 와서는 불법체류자에 거지 신세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아무런 인맥 없이 일본에 처음 건너온 젊은이들이 철저한 능력급제로 바뀐 호빠에서 손님을 만드는 게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빠에서 쫓겨난 뒤 한국식당이나 빠찡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생계를 꾸려나가거나 심지어 땡전 한푼 없이 길거리에 버려진 담배 꽁초를 주워 피며 지내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다. 결국 이들은 낯선 이국 땅을 전전하다 텅 빈 호주머니와 망가진 몸을 이끌고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한국에서는 ‘남녀 사원모집. 일본취업 남/녀 쭛쭛명, 신장 174cm 이상, 외모에 자신 있는 분 연락 바람’과 같은 광고가 생활정보지에 버젓이 실리고 있고, 인터넷에서는 일본에 진출하려는 예비 한국선수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 현지 취재 결과 분명한 것은 일본 호빠에서 돈을 번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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