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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해적, 디스코왕 되다’

착한 양아치들의 향수 어린 동화

  •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착한 양아치들의 향수 어린 동화

착한 양아치들의 향수 어린 동화
최근 개봉됐거나 개봉 대기중인 영화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지난해 주류를 이뤘던 ‘조폭영화’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조폭영화’의 후광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약간 변주를 한 이른바 ‘양아치 영화’들과 상반기 최대 흥행작인 ‘집으로…’같은 ‘착한 영화’ 들이 선보이고 있다.

김동원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양아치영화’와 ‘착한 영화’의 특징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탄생 내력이 좀 특이하다. 감독 자신이 학창시절에 만든 동명의 단편을 장편으로 리메이크한 것이기 때문이다.

착한 양아치들의 향수 어린 동화
나는 지난 1998년 한국독립단편영화제에 출품된 26분짜리 흑백으로 된 오리지널 단편을 무척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종래의 흑백영화에, 불량식품에서 볼 수 있는 알록달록한 색소를 가미해 뻥튀기한 형국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 색조가 아주 원색적이다.

이는 물론 의도적인 것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80년대고 무대가 변두리의 디스코텍인 탓에 세련미보다는 촌스러운 소박미가 더 강조된 까닭이다.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라고 할까.



이 영화는 모순을 한데 모은 구덩이 같았던, 그때 그 시절에 대한 치기 어린 추억담이자 향수 어린 한 편의 동화다. 이 영화를 치기 어린 추억담이라고 하는 이유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똥폼’은 다 잡으면서도 악의라곤 조금도 없는 양아치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삼총사의 면면을 보자. 한 주먹 하는 터프가이 해적(이정진)은 타고난 싸움꾼이지만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폭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춤의 왕이 되기 위해 애쓴다. 사고당한 아버지를 대신해 똥리어카를 끌 만큼 효성이 지극한 ‘순딩이’ 봉팔(임창정)은 빈한한 삶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아버지가 중동에 돈 벌러 간 틈에 춤바람이 난 어머니 때문에 방황하는 성기(양동근)는 무늬만 양아치일 뿐이다. 한편 극중에서 가장 악랄한 캐릭터인 배사장(안석환)마저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다.

착한 양아치들의 향수 어린 동화
이 영화를 향수 어린 동화라고 하는 까닭은 결국 순수한 사랑의 추구라는 영원한 주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이 영화를 더없이 ‘착한 영화’로 만들어주는 핵심 요인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달동네 최고 미인이자 순수의 화신인 봉자(한채영)가 있다. 방년 17세인 봉자는 똥 퍼주는 아빠(김인문)와 대를 이어 그 일을 하는 오빠 봉팔과 함께 살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똥구덩이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백합 같은 존재라고 할까. 여기서 봉자는 이른바 ‘쉰 세대’에게는 첫사랑의 추억으로, 신세대에게는 이상적 여인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런 그녀가 속한 가정 형편은 일종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추한 것은 별개의 영역에 속한다고 믿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이러한 영화적 설정은 자칫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러한 설정 탓에 이 영화의 진정성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주는 또 한 가지 재미는 기존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 내지는 은근한 패러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장치들은 종종 70~80년대까지 소급해 올라가기 때문에 상당한 눈썰미를 갖추어야만 만끽할 수 있다.

예컨대 극중에서 큰형님으로 통하는 이대근의 경우 그 동작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용팔이 내지 협객 김두한의 그것이다. 또한 제비 캐릭터(정은표)는 80년대 대부분의 드라마에 이용된 제비 역에 대한 패러디라고나 할까. 이 점은 본격 패러디 영화를 표방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제작된 ‘재밌는 영화’가 실제로는 관객 500만 시대의 물꼬를 튼 대작 ‘쉬리’의 줄거리를 고스란히 베낀 후안무치와는 대조된다고 하겠다.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복고(향수)라는 것이 현실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현실의 밑거름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간동아 2002.06.13 338호 (p80~81)

< 김시무/ 영화평론가 > kimseem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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